[시승]응답하라 1996, 재규어 X300 다임러6

입력 2016년10월16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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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桑田碧海(상전벽해)".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1996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20년의 세월을 견딘 차가 있다. 한국 수입차 역사에 있어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전신이었던 인치케이프코리아를 통해 들어왔던 재규어 말이다. 그리고 재규어는 이후 볼보코리아, PAG코리아, 재규어코리아로 수입사가 바뀌었다. 하지만 1996년 인치케이프를 통해 들어온 재규어 다임러6는 여전히 건재하다. 코드명 X300 XJ기반의 최상위 트림, 기통수에 따라 다임러6와 더블식스(12기통)로 나뉘었던 그 차 말이다. 


 현행 XJ인 X351의 최상위 트림은 "오토바이오그라피"다. "다임러"라는 트림명을 현재는 사용하지 않지만 아직도 그 이름에서 오는 우아함은 예나 지금이나 건재하다. 재규어 마니아 사이에선 오히려 지금의 XJ보다 과거 디자인(시리즈1,2,3, XJ40, X300, X350등)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호불호는 나뉜다. 

 과거 국내에서 재규어는 잔고장 많고 부품가격이 비싼 존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 시승한 1996년 다임러6는 주행거리가 짧아 잔고장이 그리 많지 않았다. 또한 부품가격은 이전에 비하면 오히려 약간(?) 내려갔다. 

 시승차는 1996년 "다임러6"이며, 재규어에서 생산한 1,330대(Daimler6 LWB) 중 1대이고, 약 5만6,000㎞를 주행했다. 2015년 11월 재규어 판매사인 천일오토모빌의 성수서비스센터 이전 개소식에 맞춰 시행된 이벤트에 당첨돼 올해 전반적인 리프레쉬 정비를 시작하게 됐다. 언제나 그랬듯 최양렬 어드바이저와 백명기, 이금규 테크니션의 주도 하에 정비계획이 수립됐고, 계획부터 완료까지 무려 12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 물론 그 사이 간간히 운행은 했다.
 

 ▲디자인

 XJ의 디자인은 우아하다. 물론 이런 디자인을 외면한 사람도 많았지만 디자인만은 포기할 수 없는 차다. 그 한 가지가 재규어 오너들의 소유욕을 자극했고, 오랜 시간 유지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전면부의 긴 후드라인과 헤드램프부터 트렁크리드까지 이어지는 벨트라인은 실제 동물 재규어가 박차고 나가는 모습과 사뭇 흡사하다. 또한 다임러 트림은 재규어의 상징과도 같은 동물 재규어 모양의 후드리퍼가 없다. 단지 라디에이터 그릴 상부에 다임러의 첫글자 D가 조용히 다임러라는 것을 알려준다.
 
 시승차는 롱버전이라 더욱 낮고 길게 느껴진다. 후면부는 앙증맞을 정도로 트렁크후면의 높이가 낮다. 또한 연료탱크가 트렁크 안쪽에 내장돼 트렁크 공간도 큰 편이 아니다. 더군다나 주유구는 C필러 뒤, 트렁크 윗면에 있다. 주유할 때는 항상 헝겊을 받쳐 주유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지금이야 20인치 넘는 휠이 대부분이지만 당시만 해도 16인치 휠은 멋의 상징이었다.



 실내는 가죽과 우드로 무장하고 있다. 다임러 트림은 실내 우드에 금색 테두리가 들어간다. 시트는 양가죽이 사용됐고, 시트백 테이블과 양모 카메트가 기본이다. 그래서 깔끔한 수트와 가죽밑창이 달린 구두를 신어야 예의일 듯하다. 다임러도 모델에 따라 숏바디와 롱바디, 4인승과 5인승으로 나뉜다. 4인승은 2인승 분리형 후석시트가 기본이고, 전동조절이 가능하다. 시승차는 5인승으로 앞좌석 위주의 사양으로 구성된다. 운전석과 동승석 3인 메모리시트와 전동접이식 백미러, 정속주행장치, TCS(트렉션컨트롤시스템), 앞유리 열선 등 지금과 비교하면 초라함이지만 당시는 그야말로 최첨단의 상징이었다.  
 

 운전석은 상당히 좁다. 시트 위치를 맞추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외부 디자인을 고려하다보니 실내공간 활용성은 거의 암울한 수준이다. 뒷좌석은 긴 차체에 의해 발을 편하게 뻗을 수 있는 자세가 나온다. 대신 좌석 형태가 벤치형 시트라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는 자세다. 뒷좌석에는 컵홀더가 없고 도어에 재떨이가 있다. 지금도 쇼퍼드리븐 차의 뒷좌석엔 항상 멋들어진 재떨이가 위치한다. 금연을 하는 추세에 견주어 보면 아이러니하다. 예나 지금이나 뒷좌석 이용자 중에는 애연가가 많은 듯하다.  

 ▲성능
 1990년대 故조경철 박사께서 "재규어 XJ의 엔진과 승차감은 비단결 같다"고 월간 자동차생활을 통해 언급했다. 아마도 재규어의 부드러운 엔진과 우아한 승차감을 위한 서스펜션을 강조하신 듯하다.
 

 엔진은 직렬 6기통 4.0ℓ다. 최고 241마력, 최대 38.4㎏·m의 성능을 발휘한다. 지금은 2.0ℓ 터보엔진의 출력이다. 하지만 그 시절 동급의 독일 쇼퍼 드리븐과 비교해 성능은 으뜸이다. 시내도로에서 낮은 엔진회전수에서 높은 토크가 발생해 가속페달에 발만 얹어도 편안하고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하다. 오히려 급가속은 그 느낌을 반감시킨다.

 서스펜션은 4륜 더블위시본이다. 더불어 전자장비가 없다. 순수 서스펜션의 지오메트리와 쇽업소버의 댐핑계수, 스프링 상수만을 가지고 우아한 주행감각을 만들어 낸다. 오히려 단순하다. 재규어에서 추구하는 승차감과 핸들링을 기계적인 지오메트리만으로 세팅한 셈이다. 다시 말해 의도된 설계 제한범위를 벗어나면 차의 승차감과 핸들링이 별로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다임러는 빨리 가더라도 적정 속도 내에서 우아함을 유지하도록 설계됐고, 그런 이미지를 브랜드가 잘 보여준 차다. 다임러를 타고 도로에서 급차선변경과 급정거, 급가속을 하면 주위의 차들이 탑승자와 운전자를 한번 보게 된다. 그런 부담을 주는 차가 바로 다임러다.

 ▲AS 및 정비
 20년이 지난 클래식카라는 점에서 유지에 대한 소감도 적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시장에서 수입차를 20년 동안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초창기 재규어 소유에서 가장 힘든 것은 애프터서비스였다. 1998년경 부산에 있던 조그마한 정식센터가 없어지고 보증기간 동안 서울까지 오가는 불편을 감수했다. 게다가 문제점에 대해 소통이 안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좋아졌다. 부품도 자유자재로 구할 수 있고, 센터와 소통도 잘된다. 더욱이 어드바이저와 테크니션들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20년 이상 한 차종을 소유하며 꾸준한 유지관리를 하려면 정확한 매뉴얼과 업데이트된 정비기술, 같은 부품이라도 개선된 부품을 사용하는 것이 수명을 연장하고 정비 후 발생되는 보증부분에서도 유리하다. 

 이번 정비는 오일누유, 에어컨과 관련된 부품들과 하체의 충격흡수관련 부품인 부싱들 위주로 교체를 했다. 오랜 세월에 부싱관련 부품은 거의 수명을 다했다. 거기에 모든 XJ(X300)에 발생하는 시계의 액정깨짐현상으로 시계모듈을 교체한 것이 이번 리프레쉬 정비의 전부다.

 ▲총평
 과거 대한민국에서 재규어를 운행하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다. 오너의 열정과 정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 오래 소유할 수 없는 차종이다. 현재의 다임러는 1인 오너로, 40년 100만㎞를 목표로 계속 운행 중이다. 이제 그 반을 왔다. 지금의 다임러를 올드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적다. 20년은 영타이머의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에는 다양한 자동차 문화가 있다. 이 가운데 올드카를 향한 분야에 상당한 내공을 가진 고수도 많다. 필자는 지금이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올드카는 60년 이상이 돼야 진정 올드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20년은 정비하며 타다 보면 도달하는 시기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의 다임러는 할아버지에서 아들, 손자, 그 이후 세대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부터 20년 후인 미래에 오래된 내연기관 자동차를 탈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박재용(이화여대 연구교수, 자동차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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