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7월23일. 신문 지면에 신차 출시 소식이 등장했다. 이른바 1세대 그랜저의 등장이다. 당시 기사를 보면 국산 고급 대형승용차에선 처음으로 앞바퀴 굴림이고, 일본 미쓰비시자동차공업의 기술제휴로 개발됐다고 소개돼 있다. 배기량은 2,000㏄, 컴퓨터연료분사엔진 등 20여 항목의 첨단 장치와 국산 대형차 가운데 가장 크다는 점이 강조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격은 특별소비세, 방위세, 부가세를 모두 포함해 1,690만원으로 소개됐다.
1,690만원 가격은 그 즈음 고급승용차의 강자였던 대우자동차 슈퍼살롱(1,650만원)을 겨냥한 전략이었다. 그랜저보다 4개월 먼저 등장한 슈퍼살롱은 6개월 동안 1,857대가 판매됐을 만큼 고급차의 강자로 인식됐는데, 이 시장에 현대차가 그랜저로 맞불을 피워 성공을 거두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실제 그랜저는 7월 공개돼 불과 3개월 만에 1,300대의 예약을 받았다. 1986년 1~12월 국내 자동차 내수 판매가 28만2,000대였고, 고급차가 연간 1만5,000대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으니 그랜저를 포함해 고급차의 약진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물론 고급차 인기가 높았던 데는 1987년 수입차 시장 전면 개방을 앞두고 국산 고급차 사용 분위기가 조성되고, 효율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름 값이 떨어진 점이 주효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기름 값이 하향 안정세로 접어들면 고급차 수요가 먼저 늘어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셈이다.
국내 고급차 시장에서 재미를 보던 현대차는 그랜저에 배기량 2,400㏄ 엔진을 추가한 "그랜저 2.4"를 1987년 6월 출시했다. 국산차로는 가장 배기량이 크다는 점을 앞세워 가격을 2,500만원으로 책정했다. 한 마디로 그랜저를 국산 최고급차로 내세운다는 의지였고, 4단 자동변속기와 헤드램프 자동조절장치, 그리고 리모컨 오디오시스템 등을 넣어 그해 7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비록 벤츠와 BMW를 비롯한 수입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시장이 개방돼 최고급 이미지를 갖춰야 할 필요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고급차는 특히 톱스타를 겨냥한 마케팅도 치열했다. 실제 당시 신차 경쟁의 비하인드 이야기가 있는데, 당대 톱스타 여배우들이 신차 구입 경쟁을 벌였다는 소식이다. 황신혜 씨가 그랜저, 허윤정 씨는 로열프린스, 그리고 김희애 씨는 로열슈퍼살롱을 탔다고 한다. 전인화 씨도 이에 질세라 스텔라 아펙스를 구입했다는 후일담도 있을 만큼 기업의 자존심이 대단했다.
그리고 1987년 말, 현대차는 1988년형 그랜저를 내놓으며 2.0 가격은 1,790만원, 2.4 가격은 2,550만원으로 정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그랜저를 확실하게 고급차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 하에 대기업 및 중소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판매 활동을 강화했고, 동시에 미쓰비시로부터 V6 3.0ℓ 엔진 기술을 도입해 그랜저 3.0ℓ 시대 준비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수입차의 영향 탓이다.
당시 상공부에 따르면 본격적인 수입차 자유화 조치에 따른 시행은 1988년 4월부터다. 그러자 불과 두달 만에 226대의 고급차가 수입됐다. 그랜저와 슈퍼살롱 등 대형차의 국내 수요가 연간 2만대가 되지 않던 시대에 1%를 넘는 비중이었다. 수입국별로는 서독이 139대로 가장 많았고, 미국 61대, 스웨덴 51대, 프랑스 7대, 이탈리아 4대 등이었다. 대기업 계열 상사들이 수입차 사업에 앞다퉈 진출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시장 방어가 필요했고, 현대차는 대응책으로 그랜저를 최고급차로 육성하되 그랜저를 넘는 또 다른 대형 승용차 개발을 기획했다.
<다음에 계속>
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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