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브랜드마다 갖고 있는 엔트리 제품은 각자 다른 정체성을 지니지만 공통된 임무를 가지고 태어난다. 바로 진입장벽을 낮춰 브랜드 세력을 확장하는 것. XE 역시 재규어가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개발한 컴팩트 세단으로, 첫 SUV인 F-페이스와 함께 기대주로 꼽힌다.
실제 유럽에선 XE 덕분에 재규어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6만7,134대를 내보내 역대 최다 판매를 기록했으며, 전년(3만9,383대)보다 70.5% 성장했다. 이 가운데 XE는 2만4,461대로 36.4%를 차지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3,798대를 등록한 재규어 가운데 41.2%(1,568대)가 XE였다. 최근에는 AWD 트림을 더하면서 라인업을 확장, 성장 가속화를 노렸다.
▲스타일
XJ에서 시작된 브랜드 디자인 정체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전면부는 "J"블레이드 헤드램프가 재규어 특유의 그물형 그릴을 향해 매섭게 파고들었다. 범퍼 아래를 두르다가 헤드램프를 지나는 선은 자연스럽게 측면 캐릭터라인으로 이어지고 트렁크 리드로 다시 모인다.
측면은 컴팩트 세단이지만 차체를 낮춤과 동시에 롱 노즈 숏 데크의 후륜구동 세단 비례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우아한 이미지와 함께 가만히 있어도 달리는 듯한 힘이 느껴진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 한 설계 덕분에 재규어 중 가장 낮은 0.26Cd의 공기저항계수를 뽑아냈다. BMW 3시리즈, 벤츠 C클래스보다 창 높이가 낮은 점도 역동성을 반영한 요소다. 펜더의 액세서리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선과 도어 아래의 곡선은 허전함을 덜어낸다.
후면부 테일램프는 크기에 비해 상당히 크다. 평범하지 않은 비율 때문에 다소 혼란스러운 인상이다. F-타입과 닮은 LED 형태도 묘한 표정을 연출한다. 범퍼 아래는 듀얼 머플러를 왼쪽으로 뽑아냈다.
실내는 모험을 하지 않은 정적인 구성이다. 그러나 시트가 크지 않은 데다 포지션이 낮아서 버킷 시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쿠페를 탄 것 같다. 스티어링 휠은 직경, 림 두께가 모두 작아 게임을 하는 듯한 조작이 가능하지만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스티어링 휠이 작은 만큼 그 안으로 보이는 계기판 역시 작다. 그럼에도 정보는 알기 쉽게 표시한다.
널찍한 센터페시아는 잘 정돈된 구성 때문에 독일차를 연상케 한다. 고광택 패널로 덮어 고급감을 강조했지만 버튼을 누르는 촉감은 아쉽다. 재규어 전매특허인 다이얼식 변속 레버를 심었으며, 운전 재미를 위해 스티어링 휠에 패들 시프터를 마련했다. 기본 적용한 인컨트롤 터치 프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USB를 연결해야 사용 가능하다. 메르디안 음향 시스템은 음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풍부한 음질을 발휘한다.
뒷좌석은 레그룸이 좁은 탓에 컴팩트 세단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적재공간은 455ℓ를 기본 제공한다. 4:2:4 비율의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830ℓ까지 늘어난다.
▲성능
엔진은 4기통 2.0ℓ 디젤 형식의 인제니움이다. 재규어가 야심차게 준비한 핵심 동력계로 최고 180마력, 최대 43.9㎏·m의 힘을 낸다. 낮은 회전수에서도 충분한 토크를 제공해 효율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특히 8단 자동변속기와 조합이 매끄럽다. 반면 소음, 진동은 제대로 걸러지지 못해 실내에 유입되는 정도가 조금 큰 편이다. 주행모드는 에코, 노멀, 다이내믹, 윈터 등 네 가지를 지원하며 기어 레버 뒤에 자리한 버튼으로 선택한다. 표시 효율은 복합 ℓ당 13.8㎞, 도심 11.9㎞/ℓ, 고속도로 17.1㎞/ℓ다.
핸들링은 가솔린 엔진보다 앞이 무거울 법한 데도 무게배분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급하게 코너링을 가해도 차체 앞뒤가 일관되게 움직이며 절대 노면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이 바닥에 붙는 느낌이다. 멀티 링크를 한 단계 진화시킨 인테그랄 링크 서스펜션을 뒷바퀴에 장착한 점도 한 몫 한다. 복합적인 구조를 지녀 노면 완충 효과를 높임과 동시에 세련된 몸놀림에 일조한다. 재규어에 처음 쓰인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의 즉각적인 반응도 힘을 보탠다.
4륜구동 시스템인 인텔리전트 AWD는 평소 뒷바퀴를 주로 굴리다가 주행 상황에 따라 앞바퀴에도 동력을 나눈다. 사계절 동안 다양한 노면 조건을 보이는 국내에 최적화된 셈이다. 실제 마찰력이 적은 곳에서도 무리없이 지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완성도를 높여온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SPC)과 함께 주행안정성을 극대화한다.
▲총평
스포츠 세단 이미지에 안정성을 더했다. 이미 인제니움 엔진과 알루미늄을 활용한 견고한 차체, ASPC 등으로 기본기를 인정받았던 터라 AWD의 의미가 적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수입차 시장이 성장하면서 고효율의 디젤과 높은 주행안정성의 4륜구동을 조합한 제품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XE AWD 역시 이런 흐름에 편승하기 위한 제품이다. 뒷바퀴에 강한 힘을 부여하는 "재규어"라는 브랜드와 4륜구동 제품 특성상 판매대수는 적지만 선택지를 넓힘으로써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또다른 접근법인 셈이다.
XE 20d AWD 포트폴리오 가격은 6,060만원.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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