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작은 차이 큰 기쁨, 지프 그랜드 체로키 리미티드X

입력 2019년10월28일 00시00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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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판 요소 빛나는 감각적인 액세서리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이 주는 풍부한 힘 돋보여


 지프는 오래전부터 정통 SUV 만들기에 특화된 자동차 회사다. 뿌리는 물론 브랜드를 대표하는 라인업도 전부 험로 주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보니 매니아들한테는 더없이 좋은 차이지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판매 실적도 떨어졌다. 지프는 정통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소비층을 공략할 회심의 한방을 생각했다. 세련된 디자인과 미국차 특유의 푹신함, 정숙성을 실현시킬 SUV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1992년 그랜드 체로키를 내놨다.

 지프의 도심형 플래그십 SUV는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북미는 물론 중국과 아시아 시장에서도 꾸준한 판매를 올렸다. 올해 상반기 기준 세계 누적 판매대수는 600만대를 넘어섰다. 랭글러 다음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랜드 체로키는 해를 거듭할수록 큰 변화보다는 꼭 필요한 부분만 고쳐 상품성을 높였다. 그리고 지루함을 덜기 위해 꾸준히 에디션을 내놨다. 이번에 만난 리미티드 X도 특별함을 강조한 한정판 제품이다. 

 ▲디자인&스타일
 지프 매니아가 아니면 일반 그랜드 체로키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강한 존재감 만큼은 차를 잘 모르는 사람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올블랙으로 꾸민 겉모습에서 다크나이트의 느낌이 강하게 들어온다. 세븐 슬롯 그릴 테두리와 앞뒤 램프 베젤은 전부 저 광택 진회색으로 마감했다. 

 사이드미러 커버와 측면 몰딩, 루프레일에는 광택이 도는 블랙 컬러로 마감해 고급감을 높였다. 보닛에는 깊은 골짜기가 형성돼 있다. 엔진열을 밖으로 빠르게 내보내는 덕트가 큼직하게 뚫려있는데 고성능 트림인 SRT에 사용하던 것과 같다.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운전석에 앉아있으면 엄청난 고성능 차를 모는 것 같은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이 외에도 듀얼 블랙 머플러와 20인치 휠, 곳곳에 붙인 리미티드 X 배지는 에디션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킬링 포인트다.

 실내는 무난하다. 에디션이라고 호들갑 떨지 않았다. 블랙톤으로 깔 맞춤을 했고 도어 손잡이와 스티어링 휠 일부에 티타늄 베젤을 입힌 게 전부다. 7인치 디지털 화면과 아날로그 바늘이 섞인 계기판은 조화가 뛰어나다. 8.4인치 센터페시아 모니터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크게 흠잡을 곳은 없다.

 다만 버튼류의 배치나 전체적인 구성은 살짝 올드한 느낌이다. 크롬 도금을 감싼 형태나 변속레버 주변 공간 활용도 요즘 차와 비교하면 아쉽다. 통풍 시트나 휴대폰 무선 충전 패드, 서라운드 뷰 모니터 등 최신 편의 품목이 빠진 점은 라이벌 대비 단점으로 지적할 부분이다.

 공간은 불만이 나오지 않는다. 넉넉한 2열은 성인 남자 세 명이 타도 충분하고 푹신한 시트 덕분에 안락한 감각이 전해진다. 등받이 각도도 조절 가능하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에 한층 여유롭다. 6:4 폴딩이 가능한 2열을 접으면 트렁크는 최대 1,689ℓ까지 늘어난다. 양옆에는 소켓과 옷걸이, 전동 트렁크 버튼을 가지런히 배치해 쓰임새가 높다.

 ▲성능
 리미티드 X는 V6 3.6ℓ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35.4㎏·m를 낸다.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 대세인 요즘 보기 드문 귀한 엔진이다. 가속감은 부드럽다. 차분하게 속도를 높이고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간다. 터보렉이 없다 보니 급가속을 전개해도 굼뜨거나 답답하지 않다. SUV보다는 잘 세팅된 미국 세단을 모는 것 같다. 그만큼 스티어링 휠에 붙은 지프 배지가 더욱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프 하면 블럭타이어로 도로를 짓이기며 우당탕탕 달리는 차라고만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대배기량 엔진의 성능을 오롯이 체험할 수 있다. 계기판에 체커기 불이 들어오면서 차는 달릴 준비를 마친다. 가속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육중한 덩치를 이끌고 빠르게 튀어나간다. 엔진 회전수는 시원스럽게 레드존 가까이 올라간다. 훅 하고 순간 이동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높은 시트 포지션과 커다란 몸짓 때문에 스포츠카와는 또 다른 스릴을 경험하게 된다. 8단 자동변속기의 반응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강한 엔진이 아쉬움을 한 번에 집어삼킨다. 일당백 역할을 해내는 엔진 덕분에 운전이 즐겁고 짜릿하다. 직진 가속감은 유럽산 차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강한 매력을 지녔다.

 도로 위를 군림하듯 질주하던 다크나이트도 코너 앞에서는 자세를 낮춘다. 운전자도 자연스럽게 브레이크 페달에 힘이 실린다. 서스펜션이 무르고 핸들링이 예리하지 않아서 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파트타임 네바퀴굴림 방식을 지원하지만 기본적인 성향은 언더스티어가 강하다. 게다가 무게 중심이 높고 앞쪽으로 치우쳐져 있어 빠른 코너 진입과 탈출은 버겁다. 물론 이 차를 가지고 와인딩 실력을 겨룰 운전자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듯하다.

 오히려 아쉬운 부분은 장거리 고속 주행에서 나타났다. 에어서스펜션과 운전 편의를 돕는 능동형 크루즈 컨트롤이 빠져있다. 긴 시간 운전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는 한 번쯤 필요한 기능들인데 없다는 게 다소 서운하다. 플래그십 제품임을 감안하고 장거리 크루징 주행에 강점을 보이는 차의 특성상 구성에서 조금 더 신경을 써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프의 핵심 기능인 험로 탈출 능력은 그랜드 체로키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주행 환경에 따라 5가지(오토, 모래, 머드, 눈, 락)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셀렉 터레인 지형 설정 시스템은 다양한 환경에서 안정감 있게 주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여기에 4륜 로우 모드와 저속 크루즈컨트롤 기능도 마련해 험로 주행 시 차의 활용 가능성을 넓혔다. 고급진 겉모습 때문에 랭글러처럼 본격 험로를 달리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지만 기능의 존재 만으로도 든든하고 믿음이 간다. 

 ▲총평
 그랜드 체로키 리미티드 X는 과하지 않은 이상적인 한정판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또 지프의 고정관념을 버리기에도 충분했다. 또 자연흡기 대배기량 엔진의 넉넉한 힘을 바탕으로 중후하게 질주하는 미국차의 정수를 보여준다. 6,000만원 초반에 형성된 가격은 이 차의 가장 큰 메리트다.

 라이벌과 비교해 충분한 가격 경쟁력을 갖췄고 앞서 말한 구성의 아쉬움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지프의 정체성을 간직하면서 존재감을 나타내는 강한 인상과 우람한 덩치, 세련미를 모두 느끼고 싶다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리미티드 X는 소소한 변화로 큰 가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플래그십 SUV다. 가격은 6,290만원.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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