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이후 17년 만에 부활한 정통 스포츠카
-중독성 강한 성능과 원초적인 반응 인상적 수프라는 토요타를 대표하는 정통 스포츠카다. 셀리카의 상급 제품으로 1978년 태어났다. 당시 일본에서 "셀리카 XX"라는 이름으로 팔리다가 3세대부터 차명을 수프라로 통일해 4세대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시선을 끄는 디자인과 강력한 성능, 유럽차와 다른 일본 스포츠카만의 날카로운 감각을 더해 수많은 마니아들을 만들어내면서 세계적으로 스포츠카 부흥을 일으킨 차종이다. 그러나 실용성을 더한 고성능 신차들이 속속 등장하고 핫해치와 같은 새로운 장르가 생겨나면서 수프라의 인기는 식어갔다. 여기에 강화한 배출가스 규제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결국 2002년 단종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수프라의 부활은 2018년 극적으로 이뤄졌다. 운전의 본질과 즐거움을 향한 브랜드 철학을 지키고 싶었던 토요타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대신 투자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BMW와 기술 협업으로 만들었다. 국내에는 올해 1월 신고식을 치렀다. 새 차의 정확한 이름은 "GR 수프라"다. 운전이 주는 최상의 즐거움을 컨셉트로 개발한 정통 스포츠카다. "GR"은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법인인 "토요타 가주레이싱(GAZOO Racing)"을 의미한다.
새 차에서 수프라의 가치가 희석되지는 않았을까. 많은 부분을 공유한 BMW Z4와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노란색 수프라를 직접 탔다.
▲디자인&상품성 5세대 수프라는 길이 4,380㎜, 너비 1,855㎜, 높이 1,305㎜이며 휠베이스는 2,470㎜다. 이란성 쌍둥이인 Z4와 차이가 거의 없고 비슷한 형태의 스포츠카인 포르쉐 박스터와 비교하면 살짝 큰 정도다. 물론 이런 수치는 큰 의미가 없다. 기술은 협업해도 각 브랜드의 특성에 따라 세부적인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새 차는 첫인상만으로 주변 시선을 압도하고 기를 누르기에 충분하다. 외관은 토요타의 클래식 스포츠카 2000GT의 실루엣을 이어받아 앞이 길고 뒤가 짧은 "롱 노즈 숏 데크" 스타일이다. 상어코처럼 툭 튀어나온 범퍼와 거대한 공기흡입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엄청난 크기의 헤드 램프는 요즘 차와 다른 느낌이면서도 수프라의 정통성을 잘 계승했다.
측면은 스포츠카가 보여줄 수 있는 멋진 자태를 뽐낸다. 특히 도어 아래에서 뒤쪽 펜더까지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은 완만하게 내려앉은 지붕선과 조화를 이뤄 볼륨감을 극대화한다. 한껏 부풀린 펜더 덕분에 뒤는 넓고 풍만하다. 치켜올린 트렁크 끝과 눈꼬리가 내려앉은 테일 램프, 곳곳에 붙은 배지도 존재감을 더하는 요소다.
앞뒤에 붙은 스플리터와 디퓨저는 크기가 상당하다. 흉내만 낸 게 아닌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두툼하고 날카롭게 마련했다. 또 공기흐름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실내 탑승자 헤드룸을 확보한 더블버블 루프도 포인트다. 얇은 스포크의 19인치 휠과 100㎜ 직경의 대구경 배기파이프, F1 경주차에서 볼법한 사다리꼴 제동등은 기능과 멋을 동시에 잡았다.
긴 도어를 열고 들어간 실내는 좁고 불편하지만 제품 성격을 생각하면 단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BMW와 손잡고 만든 차라는 사실은 실내 버튼에도 드러나 있다. 도어 손잡이부터 스티어링 휠, 센터페시아 모니터 구성, 변속레버 및 공조장치를 포함한 각종 버튼까지 전부 BMW와 같다. 굳이 다른 부분을 꼽자면 타코미터가 중앙에 위치한 디지털 계기판과 스포츠 시트 정도다.
천장이 낮고 옆창의 면적이 작아 전체적인 실내는 어둡다. 그 탓에 정면을 바라보는 모니터도 조금 어두워 보인다. 어깨를 돌려야 할 정도로 뒤에 있는 컵홀더는 기능적인 관점에서 단점이다. 안쪽에 위치한 휴대폰 무선 충전패드 등의 전체적인 버튼 구성과 쓰임새는 평범하다. 그러나 역동적인 주행을 할 때 가장 많이 볼 계기판과 1.8인치 풀 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만족스럽다. 전방충돌경고장치, 차선이탈경고기능,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및 어댑티브 하이빔 시스템 등 다양한 안전기능도 갖췄다.
공간은 무난하다. 필요한 부분에 알차게 수납함을 마련했고 글로브 박스도 제법 크다. 트렁크는 해치 형태로 활짝 열린다. 굵직한 롤 바와 커다란 우퍼가 있지만 그럼에도 꽤 만족할만한 공간을 확보했다. 실내와 분리할 수 있는 격벽도 갖춰 트렁크 본연의 역할을 하기에 문제없다.
▲성능
기다란 보닛 안에는 최고 340마력, 최대 51.0㎏·m의 힘을 내는 직렬 6기통 3.0ℓ 트윈 스크롤 터보 엔진이 들어 있다.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시간은 4.3초이며, 안전제한을 건 최고시속은 250㎞다. 효율은 ℓ당 복합 9.7㎞를 실현했다. BMW Z4 M40i와 같은 엔진으로, 출력은 50마력 정도 낮지만 반대로 가속성능은 수프라가 더 빠르다. 쿠페와 오픈톱, 공기역학, 동력계 및 다양한 세팅이 다른 데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새 차의 강력한 성능은 가속 페달에 조금만 힘을 줘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무지막지한 성능을 순식간에 뒷바퀴로 전달하고 차는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간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몸은 시트 안쪽으로 파묻힌다. 노면 상태가 고르지 못하면 뒤가 살짝 흔들릴 정도로 파워를 지녔다. 순간 긴장감이 흐르지만 아주 잠깐이다. 잔상이 남을 틈이 없다. 가속이 뛰어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앞만 보며 질주해야 한다. 넘치는 힘만큼은 어느 누구도 반박할 여지가 없다.
8단 자동변속기는 기대 이상의 실력으로 동력계의 성능을 200% 끌어올린다. 상황에 맞춰 날카롭고 정직하게 변속을 이어나간다. 일반 모드에서 정속주행 때 순간 스로틀을 열면 엔진회전계 바늘이 점프하며 레드존에 들어갈 정도다. 하물며 스포츠 모드에서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운전자 의도에 맞춰 빠르고 정직하게 단수를 찾아들어간다. 속도를 줄일 때 다운시프트를 전개하는 과정도 적극적이다. 듀얼클러치 변속기처럼 절도있게 맞물려 힘을 전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성능을 낭비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유연하면서도 탄탄한 기어비를 앞세워 힘을 온전히 땅에 전달한다.
굽이치는 고갯길에서는 라이벌과 다른 수프라만의 강점이 두드러진다. 바로 드라이빙 컨트롤과 피드백, 이 과정에서 오는 운전재미다. 우선 BMW의 탄탄한 섀시가 빛을 발한다. 높은 강성을 바탕으로 온전히 자세를 유지한다. 덕분에 앞머리를 코너 깊숙히 넣기에도 수월하다. 짧은 휠베이스와 50대50의 이상적인 무게 배분은 깔끔한 반원을 그리기에 충분하고, 탈출 시 뒤꽁무니도 운전자 의도대로 곧잘 따라온다.
극단적으로 낮은 시트 포지션과 무게중심은 코너를 통과할 때마다 감탄사를 낳게 만든다. 엉덩이가 땅에 붙어 있는 것같고 마치 카트에 앉아 오밀조밀한 서킷을 질주하는 착각도 든다. 코너 시작 전 긴장감을 유도하는 굉음의 배기음과 코너 탈출 후 내지르는 엔진음의 조화도 쉼 없이 운전자의 흥분을 부추긴다. 와인딩에서 드러낸 매끄러운 주행성은 사납게 내달리는 직선로와 또 다른 매력이자 행복이다.
그 만큼 수프라는 즐거움과 두려움, 재미와 스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차가 주는 피드백을 터득하면서 운전실력을 키울 수 있는 진짜 스포츠카이지만 자칫 욕심이 과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수많은 전자장비로 운전자 실수를 감쪽같이 숨기는 요즘 차와 성격 자체가 다르다. 길들이는 과정과 불편함은 누군가에겐 단점일 수도 있다. 반면 혹독한 적응기간을 끝내면 어떤 차보다 다루기 쉬울 수도 있다.
애프터마켓 튜닝을 통해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새하얀 도화지에 마음껏 색칠하고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차다. 색칠과정에서 샘솟는 아이디어와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총평
토요타는 수프라를 세계시장에 내놓으면서 라이벌로 포르쉐 718 카이맨을 지목했다. 또 많은 부분을 공유한 Z4 M40i와도 경쟁이 불가피하다. 크기와 시장이 겹치면서도 성격은 두 차종과 정반대를 향한다. 수프라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완벽한 차는 아니지만 몰아보면 그냥 모든 점에서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츠카는 이런 자세와 성격을 지녀야 하고 운전자에게 적당한 긴장감과 짜릿함을 동시에 안겨줘야 한다고 말이다. 게다가 BMW 및 포르쉐 대비 저렴한 차값과 유지비는 분명 장점이다. 무엇보다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매혹적인 디자인은 이 차를 구입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개별소비세 인하분을 반영한 수프라의 판매가격은 7,237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