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절묘한 조화, 포르쉐 카이엔 E-하이브리드

입력 2020년08월24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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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항 성능 및 정숙성에 초점 맞춰
 -다양한 하이브리드 모드 눈길


 흔히 포르쉐 하면 빠르고 우렁찬 소리와 함께 짜릿한 차를 만드는 회사로 생각한다. 반면 전동화는 조용하고 차분하며 효율 위주의 능력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이 둘의 조합이 과연 이뤄질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카이엔 E-하이브리드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수긍보다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사실 포르쉐는 카이엔뿐 아니라 파나메라에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해 판매 중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순수 전기차 타이칸을 선보이고 하반기 국내 출격을 대기 중이다. 포르쉐와 하이브리드는 과연 어울리는 조합일까? 회사는 왜 전동화 제품에 집중하고 있는 걸까? 단순히 친환경만을 바라보기에는 손해 보는 것도 꽤 있을 것 같아 복잡한 심경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유를 낱낱이 확인해 보기 위해 장거리 여정을 떠났다.

 ▲성능
 카이엔 E-하이브리드는 PHEV 방식을 가진 SUV다. 시동을 걸면 여느 하이브리드차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등장을 알린다. 계기판에 "레디"라는 문구가 뜨지 않으면 시동이 걸렸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 거칠고 강한 숨소리를 토해내는 차들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초기 가속페달 감각도 마찬가지다. 스르륵 미끄러져 나가면서 꾸준히 속도를 올린다. 운전석에서 보는 시야만 높아졌을 뿐 잘 세팅된 대형 세단을 타는 것처럼 부드럽다. 일상 주행에서는 이보다 다루기 편하고 부담 없는 포르쉐를 만나기도 힘들 듯하다.

 운전 모드는 트랙보다 도심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기능들로 촘촘히 나눠져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순수 전기로만 주행이 가능한 E-파워다. 기름 한 방울 사용하지 않고 약 44㎞까지 주행 가능하다. 이 외에 하이브리드 모드는 크게 3종류로 분류된다. 하이브리드 오토는 모터 및 엔진 주행을 뜻하며 현재 주행 패턴 및 상황에 맞게 자동 전환한다. 쉽게 말해 일반차의 컴포트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연료 효율성에 중점을 둔 모드로 하이브리드 선택 시 기본 설정된다. E-홀드는 현재 배터리 잔량을 유지시켜 주며 E-차지는 주행 중 배터리 완전 충전을 위해 회생제동과 시스템이 적극 개입한다.

 신경 쓰지 않고 내연기관 차와 동일한 주행을 원하면 하이브리드 오토가 제격이다. 가속과 감속 시 안정적이고 매끄러운 반응이 일품이다. E-차지는 고속 크루징에서 빛을 발휘하고 E-홀드는 꼭 필요한 구간에서 활용하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현재 내 차가 어떤 모드로 얼마만큼 전동화 파워트레인에 기대고 있는지는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각 모드 변화가 극적이기 때문에 잘만 활용하면 한층 풍부하게 차를 다룰 수 있는 유용한 기능이다.

 하이브리드 포르쉐가 주는 안락한 주행감각에는 에어서스펜션이 큰 역할을 했다. 정확한 명칭은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이다. 오프로드 주행까지 고려한 덕분에 높낮이 폭이 상당한 게 특징이며 서스펜션에 맞춰 최적의 댐핑값도 구현했다. 능력 좋은 에어서스펜션은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연출하고 도로 위 결함도 잘 걸러내 편안한 드라이빙을 일궈낸다. 적어도 하이브리드 모드 만큼은 렉서스 계열의 차를 경험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하이브리드 카이엔이 포르쉐 DNA를 완전히 덜어낸 차는 아니다. 스티어링 휠 한쪽에 붙은 주행 다이얼을 스포츠로 돌리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차는 엔진회전수를 500rpm 이상 껑충 올리면서 달릴 채비를 마친다. 스로틀 반응이 한결 가볍고 민첩하다. 또 배터리는 부스트를 위한 최소량만 유지한다. 차는 지체 없이 앞으로 달려나가고 시원스러운 가속감을 제공한다. 포르쉐가 주는 매력을 오롯이 경험하기 위해서는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선택하면 된다. 소리가 커지고 포르쉐 특유의 강한 펀치력을 아낌없이 전달한다.

 제원표상 수치만 봐도 이 차는 웬만한 고성능 SUV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동력계는 6기통 3.0ℓ 가솔린 터보와 전기모터 조합으로 최고 462마력, 최대 71.4㎏.m의 성능을 낸다. 8단 팁트로닉S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 데 5.0초이며 안전제한을  최고시속은 253㎞(순수 전기모드 시 135㎞/h)다.

 높은 숫자와 합을 맞춰 요란한 천둥소리를 내거나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성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느덧 도로 위에서 가장 앞서 달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순식간에 속도 바늘을 맨 끝으로 올리고 rpm은 레드존 가까이 위치해 흥분을 부추긴다. 특히 전기모터 출력만 136마력에 이르기에 소리 없이 강하게 치고 나가는 맛이 일품이다. 달리기 좋아하는 포르쉐가 전기 힘에 집착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코너에서는 다른 포르쉐 대비 한계가 쉽게 드러난다. 지능화 된 핸들링 시스템과 균형감을 높여주는 포르쉐 스테빌리티 매니지먼트, 리어 액슬 스티어링 등을 달았지만 기본적인 덩치와 2.5t이 넘어가는 무게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무엇보다 제동력이 무척 아쉽다. 앞 6피스톤, 뒤 4피스톤으로 이뤄진 고성능 브레이크 시스템인데 색깔처럼 살짝 설익은 모습이다.

 이질감이 큰 회생제동 기능이 전체적인 브레이크의 능력을 떨어트리는 모양새다. 답력이 일정하지 않고 가다 서다가 반복되는 정체 구간에서도 출렁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내 차로 다룬다면 오랜 시간 적응 기간이 필요할 듯하다. 제동력은 향후 조금 더 자연스러운 세팅을 기대해 봐야겠다. 

 ▲디자인
 겉모습은 신형 카이엔과 별반 다르지 않다. 큼직한 헤드라이트와 LED로 수놓은 램프 속 구성, 바짝 치켜 올린 범퍼, 사각 테두리 안에서 한껏 입 벌린 공기흡입구가 대표적이다. 옆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습이다. 160만원짜리 화이트 메탈릭 덕분에 더 아름답고 순수해 보인다. 이와 함께 연두색 브레이크 캘리퍼는 친환경차 이미지를 강조하고 살이 얇은 21인치 휠과 맞물려 세련미를 키웠다. 팬더에는 필기체로 e-하이브리드 배지를 붙여 차의 성격을 강조한다.

 뒤는 가로로 길게 뻗은 블랙 테두리와 얇은 테일램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트렁크 가운데에 붙은 포르쉐 레터링은 커버 안쪽에 들어가 있는 형태를 띤다. 이 외에 오른쪽에는 연료 주입구가 있고 왼쪽에는 전기를 충전할 수 있는 포트가 마련돼 있다. 또 연두색 카이엔 필기체를 제외하면 전체적인 뒷태는 기존 카이엔과 동일하다. 총 4개의 원형 배기구를 감싸는 120만원짜리 은색 머플러 팁 정도가 차이점이다.

 실내는 최신 포르쉐 패밀리-룩을 따른다. 5개의 화려한 원형 계기판은 절반 이상을 디지털로 채웠고 12.3인치 와이드 터치 스크린도 최신 흐름에 맞춰 깔끔하다. 포르쉐 문양을 새긴 감각적인 디자인의 변속레버를 비롯해 주변에는 다양한 버튼들이 놓여 있다. 물리와 터치가 적절히 섞여있어 사용하기 한결 편하다. 두툼한 가죽 스티어링 휠은 손에 쥐는 맛이 좋다. 

 여기에 240만원짜리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추가해 비어있는 버튼 없이 빼곡한 모습이다. 210만원을 추가하면 헤드업디스플레이도 넣을 수 있는데 강력 추천이다. 다양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고 선명하게 앞쪽 유리에 비춘다. 

 각 패널을 두른 가죽과 색감이 훌륭하고 맞물리는 곳이나 스티치 마감이 정교하다. 여러 조각으로 나뉜 가죽 시트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푹신한 미국산 SUV와 정 반대 감각으로 탄탄하면서 몸을 정확히 잡아준다(무려 18가지 방향 조절이 된다). 2열도 같은 감동을 받는다. 차의 세그먼트 성격상 공간에 대한 불만이 없고 루프를 포함 창의 크기도 넓어 개방감이 좋다. 좌우 독립식 공조장치와 USB포트, 소켓, 전동 블라인드 등 합리적인 편의품목도 두루 갖췄다. 트렁크는 기본 645ℓ이며 2열을 접으면 최대 1,605ℓ까지 늘어난다.

 ▲총평
 포르쉐가 전동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명확했다. 전기 파워트레인은 기존 포르쉐에서 누릴 수 없었던 2%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뿐 아니라 차의 가치와 방향을 더 또렷하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정숙성을 앞세워 여유롭게 차를 몰 수 있다. 반대로 뻥 뚫린 도로나 서킷을 만나면 성격을 정 반대로 돌려 누구보다 빠르고 당당하게 질주도 가능하다. 

 다재다능한 능력을 소화하면서 포르쉐 소비층 확장을 위한 선봉장으로 카이엔 E-하이브리드가 있다. 친환경차하면 떠오르는 효율과는 거리가 멀지만 ℓ당 ㎞ 숫자 이면에는 만족스러운 주행 감성과 색다른 운전의 즐거움이 있다. 기존 내연기관 포르쉐와 순수 전기차 라인업으로 재편될 브랜드의 새로운 제품군 사이 가교 역할을 하기에도 손색없다. 

 그만큼 카이엔 E-하이브리드는 미래 포르쉐의 청신호를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는 유익한 차다. 가격은 1억1,630만원이며 여러가지 편의 및 안전 품목을 추가하면 1억6,510만원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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