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XJ 50주년과 다임러 6 비교 시승
-24년 차이를 잊게 하는 헤리티지 돋보여 재규어 플래그십 세단 XJ가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52년이 됐다. 반세기 역사상 한 브랜드의 기함으로 살아왔다는 건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이자 자산이다. 최고급을 향한 럭셔리 소비층에게 한결같은 매력과 가치를 전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XJ는 재규어에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역사의 산증인이자 브랜드 그 자체이다.
해마다 빠르게 바뀌는 소비 트렌드와 기술의 진화, 이를 바탕으로 늘어나는 선택지 속에서 XJ는 어떻게 오랜 세월을 지킬 수 있었을까? 궁금증을 파헤쳐 보기 위해 현재 판매 중인 XJ 50주년에디션과 3세대 XJ 최상위 트림인 다임러 6를 한자리에 불렀다. 두 차는 24살의 터울이 있지만 직접 살펴보고 시승하면서 나이 차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공통점을 찾아보면서 재규어가 말하는 헤리티지를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플래그십이 갖춰야 할 존재감 두 차를 살펴보기 전에 XJ의 역사를 간단히 훑어본다. 1968년 시리즈 1의 등장으로 시작된 재규어 XJ는 역사를 거치며 8세대까지 진화했다. 탄생 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재규어 XJ는 세계 유일의 대량생산 12기통 4도어 승용차였고 최고속도가 225㎞/h에 이르는 당대 최고속 4인승 승용차이기도 했다.
이후 스탠다드 및 롱휠베이스는 물론 2도어와 4도어 등 다양한 제품이 이어졌다. 1975년에는 시리즈 2에 처음으로 2도어 쿠페가 나왔고 1986년부터 8년간 생산된 XJ40에서는 기념비적인 "J"자형 게이트를 갖춘 기어 레버와 셀프 레벨링 서스펜션을 처음 선보였다.
2003년부터는 알루미늄 모노코크 차를 도입해 무게를 40%까지 줄이는 혁신을 거친다. 이후 현재의 XJ에는 사륜구동 시스템과 가상 계기판 등의 최신 전장기술이 추가됐다. 이 외에도 이안 칼럼이 그린 매끈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은 플래그십 세단 시장에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함께 전 세계의 유명 인사와 정치인은 물론 영국 왕실의 사랑을 꾸준히 받으며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장유유서의 정신을 되새기며 3세대 XJ인 다임러 6를 먼저 살펴봤다. 이 차는 1996년 인치케이프코리아를 통해 공식 수입된 후 1인 소유로 지금까지 도로를 누비고 있다. 국내 출시 가격은 1억원이 훌쩍 넘는다. 이와 함께 단 3대만 주인을 찾았을 정도로 호화로운 플래그십 세단이다. 5.1m에 이르는 길이만 봐도 차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늘씬하게 뻗은 보닛과 트렁크, 각을 세운 유리창 때문에 차가 더 길어 보인다. 앞은 촘촘히 세로줄로 세긴 크롬 그릴과 다임러 로고, XJ의 상징과도 같은 4개의 원형 헤드램프가 눈에 들어온다. 옆은 두툼한 타이어와 단정한 알로이 휠이 차분한 느낌을 구현하고 크롬 사이드미러와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앞뒤 펜더를 출발과 끝점으로 길게 이어진 코치라인은 정통성을 부여하는 중요 포인트다.
뒤는 크기가 작은 테일램프와 사각 범퍼, 트렁크에 붙은 다임러 6 배지가 품위를 더한다. 듀얼 배기구를 적용한 점도 신선하다. 주유구 위치도 요즘 차들과 다르게 트렁크 위쪽에 붙어있으며 자석 형식으로 캡을 보관할 수 있는 센스도 챙겼다.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출고 당시의 초록색 부산 번호판도 특별해 보인다.
시간을 빠르게 돌려 현재의 XJ50과 마주했다. 5m가 넘는 길이는 여전하지만 차는 몰라보게 커졌다. 안전과 존재감을 더하기 위해 부풀린 펜더, 보닛, 트렁크가 대표적이다. 단정한 그릴과 날렵한 헤드램프는 어느덧 브랜드를 상징하는 패밀리-룩으로 자리 잡았다. PPL차를 급하게 공수하느라 로고를 가려놓았지만 멀리서 봐도 단번에 재규어임을 알아차린다.
옆은 세련된 디자인의 20인치 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앞바퀴 뒤에 붙은 장식과 우아한 캐릭터라인도 만족스럽다. 뒤는 C필러로 내려오는 쿠페형 라인이 아름다운 여인의 목선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세로 형태의 테일램프까지 이어지며 통일감을 부여한다. 트렁크에는 커다란 재규어 레터링과 XJ50 배지가 빛을 낸다.
시승차는 빛의 각도에 따라서 깊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산토리니 블랙 컬러를 둘렀다. 이 외에도 XJ50에는 후지 화이트, 르와르 블루, 로젤로 레드 등 돋보이는 컬러를 선택할 수 있다.
▲섬세한 장인 정신과 고집이 만들어낸 결과 다시 다임러 6로 넘어와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차들에서는 볼 수 없던 낯선 생김새와 감성이 전해진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대가 흘러도 값비싼 차였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핵심은 우드 베니어다. 스티어링 휠은 물론 계기판과 송풍구, 센터페시아 주변에는 다 천연 우드를 둘렀다.
좌우 대칭으로 나무결을 짜 맞추었고 도어와 조수석에서 바라보는 대시보드에는 금색 띠를 둘러 호화스러운 영국차를 구현했다. 우드 베니어를 다루는 기술과 마감, 패널사이 단차를 보고 있으면 지금의 벤틀리가 한 수 배워야 할 정도다.
속도계를 포함한 6개의 바늘 계기판을 비롯해 각종 버튼의 퀄리티는 지금 출고한 차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상태가 좋다. 스티어링 휠 뒤에는 별도의 조작 판이 붙어있다. 왼쪽에는 등화장치를 조절할 수 있는 버튼이며 오른쪽에는 크루즈 컨트롤 및 트립컴퓨터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능이 모여있다.
또 방향지시등과 같은 칼럼식 레버는 아주 얇게 디자인돼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카세트 플레이어와 열선시트, 도어 언락버튼 등 당대 고급 편의품목도 빠짐없이 넣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사용하던 "J"자형 게이트를 갖춘 기어 레버와 깔끔하게 마감한 센터터널도 감탄사를 불러일으킨다.
2열은 광활하다. 긴 차체를 바탕으로 넉넉한 공간을 확보했다. 경계선이 없는 소파형 시트부터 두툼한 양털 카매트, 전용 송풍구와 시거잭, 열선 버튼, 수동식 선블라인드, 하만카돈 스피커 등 하나하나 재규어 플래그십의 정성이 묻어있다.
영국차의 필수품인 재떨이는 크롬으로 만들었는데 반자동으로 열리는 구동방식이 단가를 맞추기 위한 지금의 모습보다 훨씬 고급스럽다. 트렁크는 외관 디자인의 이점을 많이 본 모습이다. 네모 반듯하게 열리며 입구가 낮고 평평해 손쉽게 짐을 넣을 수 있다. 이안칼럼 싸인이 담긴 사용설명서는 덤이다.
XJ50의 실내는 현대적인 장비와 클래식한 구성의 조화가 특징이다. 풀 디지털 계기판과 재규어 인컨트롤 터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요즘 흐름을 따른다. 반면 버튼이 많은 공조장치와 큼직한 송풍구는 모던한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눌러볼게 많이 없다는 게 다소 아쉽지만 풍부한 소재로 위안을 달래본다. 투톤 가죽은 대시보드와 도어 전체에 덮어 아늑함을 연출한다. 다이아몬드형 퀼트 패턴이 들어간 시트에는 재규어 리퍼가 새겨진 헤드레스트가 달려있다. 센터콘솔을 비롯해 곳곳에는 XJ50 로고를 음각, 양각으로 새겨 가치를 더했다.
도어 하부 플레이트에는 전용 불이 들어오는 XJ50 배지를 달았고 광택 처리한 메탈 페달은 XJ50의 스포티한 성능을 보여준다. 특히 각 기능을 구분 짓는 경계선은 전부 크롬 도금으로 처리했는데 평상시는 물론 야간에도 무드등에 반사돼 화려함을 더한다. 또 실내 공기 센서를 기본 품목으로 적용해 쾌적한 실내 공간을 제공하고 메르디안 사운드 시스템이 주는 소리도 압도적이다. 이렇듯 XJ50은 시각과 촉각, 후각과 청각 등 감성 품질을 극대화한 플래그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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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은 쇼퍼드리븐카의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롱휠베이스 특징을 살려 1미터가 넘는 레그룸을 제공하며 세 가지 모드의 마사지 기능이 포함된 두 개의 전동 조절식 시트가 개별 장착됐다. 각 시트에는 두 가지 메모리 세팅과 등받이 조절이 가능해 장시간 주행 시 피로를 줄여준다. 상석의 경우 버튼 하나만으로 조수석 시트를 앞으로 밀어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바닥에는 고정식 발 받침대도 준비했다.
깔끔하게 수납 가능한 리어 시트 엔터테인먼트와 가죽으로 마감된 비즈니스 테이블도 마음에 든다. 특히 1열 헤드레스트 뒷면에 10.2인치 고해상도 스크린을 통해 별도 엔터테인먼트를 감상할 수 있다. 16:9 비율의 스크린은 외장 미디어 플레이어나 디지털 TV 튜너 등 다양한 소스를 USB, HDMI 및 MHL로 연결 가능하다. 화장거울과 2열 전용 선루프도 마련했다. 뒤와 옆 유리창은 전동 블라인드가 있어 빛을 차단해 주고 마사지 시트와 개별 독립 공조장치는 전부 기본이다.
▲공통점으로 알아보는 재규어 헤리티지 XJ50과 다임러 6의 나이차는 무려 24년이다. 하지만 긴 세월의 흔적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두 차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외관은 보닛 가운데를 흐르는 진한 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앞뒤에 적극적으로 두른 크롬 도금과 세로 형태의 테일램프, 늘씬하면서도 당당한 자세가 같다.
실내는 차의 태생을 알리는 코벤트리 플레이트가 동일하게 붙어있다. 이와 함께 부드러운 곡선을 사용해 랩 어라운드 대시보드(XJ50), 센터페시아(다임러 6)를 감싼 점도 동일하다. 2열에서 조수석 시트를 옮길 수 있는 버튼은 물론 폭넓은 우드패널, 천정에 붙은 가죽 손잡이, 비즈니스 테이블 마련한 점도 수십 년의 나이차를 잊게 할 정도로 닮았다.
XJ는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은 자세와 공통점을 가진 채 헤리티지의 의미를 되새긴다. 내 차로 맞이하는 소비자는 시대와 상관없이 재규어만의 가치와 영국 플래그십 세단이 보여줄 수 있는 기품을 경험할 수 있다. 미래지향적인 모습과 최신 눈요깃거리로 무장한 라이벌과는 가는 방향부터 다르다.
XJ는 모름지기 플래그십이라면 시간이 갈수록 진한 매력이 우러나오고 손때가 묻을수록 품격을 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한 장소에 세워진 두 차를 보면서 브랜드의 발전과 정통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XJ50과 다임러 6의 주행 감각은 어떨까. 과연 이 부분에서도 공통점을 찾고 재규어의 방향까지 알 수 있을까. 각 차의 시동을 걸고 복잡한 서울을 빠져 나와 교외로 향했다(2편에서 계속).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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