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그십 세단을 나타내는 기준은 다양하다. 긴 차체가 될 수 있고 고급 편의 및 안전 품목을 먼저 생각하거나 2열에서 화려함을 최우선으로 둘 수도 있다. 반면 움직이기 시작할 때는 대부분 승차감을 1순위로 꼽는다. 안락하고 부드럽게 뻗어나가는 감각은 플래그십 세단이 갖춰야 할 절대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규어 XJ 시리즈의 승차감과 주행 감각은 어떨까? 다임러 6와 XJ 50을 번갈아 시승하며 세월의 차이와 공통 분모를 모두 찾아봤다. 단순한 승차감 외에 기대 이상의 실력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먼저 운전석에 올라탄 차는 다임러 6다. 이 차는 직렬 6기통 4.0ℓ에 비해 출력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출시된 지 24살의 차령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감동적이다. 물론 오랜 시간 관리가 잘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지만 전체적인 차 상태나 주행 완성도는 대단히 훌륭했다.
요즘 판매 중인 차들과도 확실히 선을 긋는다. 기본적인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에 서스펜션과 스프링 등의 기본 부품만 가득할 뿐 복잡한 전자 장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원초적인 가속감과 제동, 승차감인데 부족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차를 구성하는 필수 장치들의 합이 뛰어나서 만족스러운 주행 실력을 뽐냈다.
2열 승차감은 낯설다. 푹신한 쇼파시트를 바탕으로 물렁거리는 느낌이 크다. 연속된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는 제법 심하게 출렁거린다. 차의 움직임에 맞춰 몸도 위아래로 들썩이지만 불쾌함보다 왠지 모를 편안한 마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상하게 멀미도 나지 않는다. 마치 탄력 좋은 스프링 침대에 몸을 맡긴 기분이다. 속도를 줄이고 도심 속에서 주행을 이어나갈 때는 한 없이 편안하다. 90년대 플래그십 세단은 진정한 쇼퍼드리븐이 분명해 보인다.
스티어링 휠 반응은 무던하다. 회전 반경도 크고 스포티함과는 거리가 멀다. 긴 차체를 앞세워 여유롭게 영국 도심을 누볐을 생각을 하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클래식카에게 많은 걸 요구하면 안된다. 다임러 6는 대한민국 땅에서 현역으로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했다.
▲젊은 재규어 XJ의 신선함 24년의 세월을 빠르게 감아 가장 최신 시리즈인 XJ 50에 앉았다. 시동 버튼을 누르니 차는 경쾌하게 등장을 알린다. 동력계는 V6 3.0ℓ 터보 디젤과 8단 자동변속기 조합이다. 최고 300마력, 최대토크는 71.4㎏·m를 발휘하며 구동방식은 뒷바퀴굴림이 기본이다.
디젤차임에도 차분한 엔진 반응과 정숙성이 돋보였다. 디젤차 특유의 미세한 소리는 어쩔 수 없지만 이를 제외하면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없다. 주행 중에서는 일반 자연흡기 가솔린 차를 모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2열에 앉아 이동하면 디젤차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쉽지 않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강한 펀치력과 함께 순식간에 속도가 올라간다. 70이 넘는 토크의 힘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데 체감 속도는 훨씬 빠르다. 뒤에서 채찍질하며 차를 밀어 붙이는 것 같다. 긴 차체를 가진 플래그십 세단 성격은 단번에 사라진다.
변속기는 정확하게 위치를 찾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독일차처럼 직결감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오히려 부드러운 패턴이 차와 더 어울린다.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더블위시본 타입이다. 엄청난 전자장비가 개입해 흔들림을 줄여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세팅이 훌륭해 좌석에서 고른 승차감을 제공한다.
요즘 흐름에 따라 안전장비도 넉넉히 넣었다. 먼저 스테레오 카메라는 운전자가 차선을 이탈하면 스티어링 휠을 통한 햅틱 경고로 이를 알려준다. 또 차선 이탈 경고 시스템 및 카운터 스티어링을 통해 차선 이탈을 방지해주는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을 지원한다. 이 외에도 장거리 레이더 센서를 사용해 앞차와 사전 지정된 차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큐 어시스트, 차선 변경 시 뒤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차를 인지하고 경고해주는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 등이 있다.
새롭게 적용된 운전자 상태 모니터링은 스티어링, 가속, 제동 조작, 차선 이탈 등 운전자의 패턴을 인지하고, 졸음 운전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휴식을 취하도록 계기판에 시각적 경고를 표시한다. 기능을 숙지하고 잘 활용하면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운전이 가능하다.
쇼퍼드리븐 차답게 1열보다 2열의 만족이 더 좋다. 안락한 시트와 차분한 승차감은 탑승자에게 고급스러운 감각을 전달한다. 알루미늄 차체 강성도 기대 이상이다. 그 결과 차가 좌우로 흔들려도 2열에서 크게 진동을 느끼기 힘들다. 개별 모니터와 테이블, 독서등은 덤이다. 조작은 대부분 물리적인 버튼으로 구성했다. 테블릿 PC형태나 화면 속에서 여러 번 찾아 들어가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버튼들로 보다 쉽게 2열 활용이 가능하다.
▲총평 다임러6와 XJ50을 번갈아 타보면서 세월의 흔적, 그리고 기술 발전을 살펴볼 수 있었다. 긴 시간이 흐른 만큼 두 차의 감각은 확연히 달랐다. 다임러 6가 오로지 승차감에 초점을 뒀다면 XJ50은 주행과 안전 등 다양한 부분에서 합을 맞춰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두 차 모두 지향점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탑승자를 위한 최적의 구성과 배려가 주행에도 고스란히 묻어있다. 이는 세월과 파워트레인 등 차가 가진 상황을 단번에 뛰어넘는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이동을 돕고 탑승자 모두에게 특별한 차를 타고 있다는 마음가짐도 심어준다.
이는 곧 내 차에 대한 자부심으로 돌아온다. 이렇듯 재규어 XJ는 플래그십 세단이 가져야 할 기본에 충실한 채 자신만의 헤리티지를 다져왔다. 늘어나는 라이벌과 이에 따른 혼란의 시대에서 본질이 더욱 빛나는 법을 알고 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롱런 할 수 있던 비결이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재규어 XJ 50의 가격은 1억5,09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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