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전기차 편견 지우는 높은 주행가능거리
-안정적인 움직임과 민첩한 감각 인상적
소형 전기차는 대부분 도심에서 움직인다. 출퇴근이나 단거리 위주 이동 시 사용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주행거리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도 영향을 끼친다. 실제 환경부로부터 인증 받은 대다수의 소형 전기차가 획기적인 주행거리를 갖고 있지 않아서 사람들의 두려움을 키운다. 과연 해당 세그먼트의 전기차는 단순 시티카 용도가 전부일까? 르노 조에는 이 같은 물음에 당당히 아니라고 대답한다. 미리 겁먹을 필요 없으며 걱정하는 대부분의 우려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유 있는 자신감을 살펴보기 위해 조에를 타고 서울에서 안동까지 약 400㎞ 구간을 직접 달렸다.
참고로 르노 조에는 54.5㎾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국내 효율 시험 기준으로 완충 시 309㎞를 달릴 수 있다. 반면 유럽(WLTP) 기준은 395㎞에 달한다. 이 외에 50㎾급 DC 급속충전기를 이용하면 30분 충전으로 약 150㎞를 주행할 수 있다. 또 전기차에서 발생하는 열을 재활용하는 히트 펌프 기술과 배터리 히팅 시스템이 적용돼 저온 주행 환경에서도 236㎞의 우수한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유럽과 국내 주행거리 측정 방식이 다르다 해도 차이가 86㎞에 이르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양재에서 차를 받자마자 바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전원을 넣으니 98% 충전 상태에 주행 가능거리는 304㎞로 표시된다. 안동 하회마을까지 거리는 약 250㎞, 단순 계산으로는 한참 부족한 수치이지만 WLTP 숫자를 믿기로 하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주행 모드는 노멀에 두고 에어컨은 최대 1단으로 제한했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이용했으며 제한속도에 앞뒤로 10㎞/h까지 오차범위를 두고 운전했다.
여느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조에는 조용하면서도 경쾌하게 움직였다. 100㎾급 최신 R245모터는 최고 136마력, 최대 25.0㎏·m의 토크를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50㎞/h까지 3.6초 만에 도달하며 시내에서도 시원한 가속감을 자랑하는 게 특징이다. 제원표 숫자만 보면 전혀 부족하지 않은 실력이다. 차분하고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며 언제든지 원하는 영역에 차를 올려 놓는다. 초반부터 강하게 치고 나가는 미국산 전기차와 선을 긋는 항목이다. 부담 없이 누구나 운전대를 잡아도 조에가 주는 깔끔한 가속감을 느낄 수 있다.
고속 안정성도 수준급이다. 체급을 잊을 정도로 믿음을 심어준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해 낮은 무게 중심과 이상적인 무게 배분이 한 몫 했다. 이 결과는 코너에서 배가 된다. 오랜 시간 프랑스 돌길에서 다져온 서스펜션과 유럽식 핸들링이 조화를 이뤄 깔끔하고 정확도 높은 코너링을 제공한다. 진중하게 자세를 낮춰 최적의 와인딩 실력을 구현하는데 오히려 작은 사이즈의 무난한 타이어 세팅이 아쉬울 정도다. 그만큼 조에는 굽이치는 길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단순 시티카의 용도를 잊게 만들었다.
반대로 내리막 구간에서는 "B-모드"를 활용했다. 변속레버를 아래쪽으로 한번 내리면 바로 활성화 된다. 해당 모드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엔진 브레이크와 유사한 감속이 이뤄진다. 생각보다 강하게 잡아주면서 에너지를 회수, 효율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다. 잘 활용하면 원 페달 드라이빙도 가능하다. 이질감이 적고 자연스러운 감속을 유도해 제법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B-모드를 통해 주행가능 거리가 다시 오르는 것을 보면 뿌듯함도 밀려온다.
일반 국도 주행에서는 가속페달 발 끝에 얼마만큼 힘을 주느냐에 따라 효율이 결정됐다. 계기판 속 그래프는 파워와 차징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운전자에게 끊임없는 피드백을 전달한다. 미세한 스로틀 반응에 적극 개입하는 바늘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에코 드라이빙을 하게 된다. 그만큼 효율적으로 배터리를 관리할 수 있고 안동까지 갈 수 있겠다는 희망도 가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안동 하회마을에 도착했을 때 총 주행한 거리는 270.4㎞였다. 이후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가능거리는 132㎞. 1회 충전으로 402㎞를 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국내 기준은 물론 WLTP와 비교해도 7㎞를 더 움직이는 셈이다. 심지어 트립컴퓨터 상 평균 에너지 소비량은 무려 7.8㎞/㎾h에 달했다. 배터리 용량으로 환산하면 420㎞를 훌쩍 넘는다. 조에는 예상보다 월등한 능력을 앞세워 깊은 감동을 줬다.
만족스러운 테스트 결과를 받아보니 비로소 디자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에의 겉모습은 듬직하다. 소형 해치백 같지 않은 크기를 지닌 게 특징이다. 실제로 길이와 너비, 높이는 현대차 소형 SUV 베뉴와 비슷하다. 여기에 한껏 부풀린 범퍼와 펜더가 차를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인 형상은 동글동글하다. 라운딩으로 처리한 부분이 많아서다. 날카롭고 반듯한 캐릭터라인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램프를 크게 감싸는 주간주행등은 또렷한 인상을 연출한다. 르노의 로장주 엠블럼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존재를 더한다. 참고로 르노 조에의 모든 트림에 "LED 퓨어 비전" 헤드램프와 LED 안개등이 기본이다. 앞 범퍼에는 그릴과 안개등 주변에 크롬을 더해 고급감을 높였다.
옆은 독특한 형상의 C필러가 특징이다. 도어가 지붕 위까지 말아 들어가 있어 신선한 느낌이다. 안쪽으로 숨겨 놓은 히든타입 2열 도어캐치도 독특하다. 입체감을 더하고 에어로다이내믹에도 이점을 보인다. 뒤는 마름모꼴 테일램프에 시선이 쏠린다. 안쪽 LED 구성을 고급스럽게 꾸몄고 다이내믹 턴 시그널 방식의 방향지시등도 넣었다. 이 외에 둥근 범퍼와 트렁크는 전체적인 조에의 디자인 흐름을 맞춘 모습이다.
실내는 르노삼성 XM3, 르노 캡처를 통해 봐 왔던 익숙한 모습이다. 세로형태 센터페시아와 각종 버튼의 모습도 동일하다. 상품성 개선 제품답게 10.25인치 TFT 클러스터와 센터페시아에 "이지 커넥트"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적용된 터치방식 9.3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를 넣었다. 디지털 요소를 강화한 핵심 기능이다. 그만큼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시인성도 뛰어나다. 이와 함께 프리미엄 보스 오디오 시스템과 전자식 변속기,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오토홀드 포함), 휴대폰 무선 충전 패드 등 젊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기능도 아낌없이 챙겼다.
2열은 무난하다. 특히 시트포지션이 높아 위에서 내려다보는 맛이 있다. 가운데 턱이 낮아서 불편을 덜 수 있고 두 개의 USB 단자를 마련해 편의를 강화했다. 트렁크는 바닥면이 깊고 양쪽에 침범하는 공간이 없어 물건을 반듯하게 넣을 수 있다. 폴딩 시트도 지원하기 때문에 적극 활용한다면 부피가 큰 짐도 수납할 수 있을 듯하다.
르노 조에는 소형 전기차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가볍게 지운다. 큼직한 차체와 넓은 실내공간, 실내외를 꾸미는 각종 섬세한 기술이 인상적이다. 기능이 부족하거나 저렴한 구석은 없으며 알찬 편의 및 안전 기능으로 사용하는 내내 만족을 전달한다.
여기에 전기 파워트레인이 주는 깔끔한 주행 감각과 유럽식 핸들링, 고속 안정성은 소형 세그먼트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결정적으로 효율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400㎞를 거뜬히 넘기며 스트레스 없는 여행에 동반자가 된다. 그만큼 도심에서만 타기 아까운 차이며 전천후 매력을 뽐내기에도 조에만한 전기차가 없을 듯하다.
조에는 3개의 트림으로 출시되며 가격은 젠(ZEN) 3,995만원, 인텐스 에코(INTENS ECO) 4,245만원, 인텐스(INTENS) 4,395만원이다. 국고 보조금 736만원과 지자체별 추가 보조금 적용 시 서울시 기준으로 최저 2,809만원, 제주도는 2,759만원에 구매가 가능하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