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vs 포드, "크루즈" 이름 두고 치열 공방
흔히 자동차의 정속주행 기능을 영어로 "크루즈 컨트롤(Cruise Control)", "스피드 컨트롤(speed control)" 또는 "오토 크루즈(Auto cruise)" 등으로 부른다. "크루즈(cruise)"라는 단어 자체가 일정한 속도로 순항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러 이동 수단 가운데 정속을 오랜 시간 유지하는 대표적인 것이 선박이라는 점에서 유람선을 "크루즈"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엔진이 탑재된 이동 수단을 움직일 때 인간의 개입 없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1788년 제임스와트는 증기기관이 일정하게 작동되도록 엔진을 제어하는 기능을 넣었는데 이를 "거버너(governor)"라 불렀다. 그리고 이런 거버너 기능이 자동차에 처음 사용된 때는 1900년 초반 영국에 설립된 "윌슨 필처(Wilson-Pilcher)" 자동차다. 아일랜드 출신의 엔지니어이자 발명가, 그리고 영국 해군항공대 소령이었던 월터 고든 윌슨이 고안했는데 레버로 엔진 작동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1908년 미국 피어리스자동차는 스티어링 휠 아래에 별도 엔진 흡입구를 만들어 속도를 유지했고 해당 기능을 "플라이볼 거버너(Flyball governor)"라고 명명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부 사용되는 제어 기능을 자동차에선 "거버너"라 부르는 게 적지 않다.
-기술 진화에 따른 기술 작명도 분쟁 대상
-소비자 익숙한 용어, 브랜드 선점으로 확대될 듯
그러나 기술 개발에 따른 새로운 기능은 늘 색다른 작명을 요구했다. 1948년 미국의 시각 장애인이자 발명가였던 랄프 티토(Ralph Teetor)는 "스피도스탯(Speedostat)"이라는 상표명을 사용했다. 지금은 엔진 피스톤 관련 부품으로 유명한 독일 말레(Mahle)에 편입된 미국의 자동차 부품기업 "퍼펙트써클(Perfect Circle)"의 CEO이기도 했던 티토는 현대적 개념의 크루즈 기능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시각 장애가 있어 언제나 다른 사람 운전에 의존했던 탓에 운전자가 수시로 속도를 높이고 줄일 때마다 불편함을 겪었고 그 이유로 정속 주행 장치 개발에 나서 1950년 특허를 획득했다. 이후 크라이슬러는 1958년 스피도스탯 기능을 최고급 차종인 임페리얼에 적용하면서 운전을 기계가 대신한다는 점을 들어 "오토 파일럿(Auto Pilot)"으로 명명했다. 랄프 티토의 스피도스탯 기능을 사용했지만 이름은 달리 불렀고 캐딜락 또한 비슷한 기능을 적용하면서 크라이슬러 오토 파일럿보다 우월한 개념으로 "크루즈 컨트롤(Cruise Control)"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후 1965년 아메리카자동차는 정속 주행 기능의 가격을 낮추며 "크루즈 커맨드(Cruise-Command)"라를 용어로 대중화에 나섰다. 원하는 속도에 도달했을 때 버튼만 누르면 속도가 유지되는 방식으로 진화했고 이를 계기로 1968년 미시건 소재 GM 산하 기업에서 일하던 다니엘 애런 위스너는 전자식 정속 주행 기능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동차는 기술 자체가 치열한 경쟁 요소라는 점에서 저마다 기술 차별화를 작명으로 내세웠던 셈이다.
그러던 중 1973년 석유파동은 정속 주행 기능의 확장을 견인했다. 기름 값이 치솟자 정속 주행의 효율 장점이 부각되며 소비자들이 앞다퉈 찾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등장 초반 수백 달러에 육박했던 옵션 가격은 60달러 수준으로 내려왔고 1980년대 이후부터는 점차 글로벌 모든 자동차 기업이 정속 주행 기능을 탑재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우리나라 또한 대부분의 자동차회사가 정속 주행 기능을 확대 적용하는 추세다.
그런데 마찰의 조짐은 정속 주행 기능의 진화에서 비롯됐다. 지능이 높아져 단순히 속도만 유지했던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 앞차와 간격이 자동 조절되는 것은 물론 멈추고 출발하는 것도 지체없이 뒤따르는 지능형이 완성됐다. 또한 차선을 파악해 조향을 제어하며 추월도 가능한 수준으로 고도화됐다. 한 마디로 자동차의 움직임이 모두 통제되고 제어되자 "크루즈"는 더 이상 정속 주행이 아닌 자율주행 개념으로 바뀌어갔고 결국 용어 자체가 일종의 브랜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GM과 포드가 맞붙었다. GM의 자율주행 기업 "크루즈"가 포드를 상대로 "블루 크루즈(Blue Cruise)"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며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포드는 GM의 소송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크루즈 컨트롤"은 이미 모든 소비자가 인지한 대중적인 용어이며 사용 기간도 이미 수십 년에 달할 정도로 오래된 만큼 GM의 주장은 제고할 가치조차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반면 GM은 "크루즈 컨트롤"이라는 기술 용어는 오래됐지만 자율주행 기능을 "슈퍼 크루즈"로 명명한 것은 GM이 처음인 만큼 포드의 블루 크루즈는 상표권 침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게다가 마케팅 측면에서 이미 "슈퍼 크루즈"를 내세워 인지도를 높였던 만큼 포드의 "블루 크루즈"는 GM 마케팅에 편승한 행위여서 기업의 도덕성과 직결된 문제로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상표권 분쟁 같지만 이를 바라보는 자동차업계의 관심은 뜨겁다. 자율주행 기능이 많아지면서 통합제어가 불가피하고 이때 사용 가능한 새로운 상표명은 대부분 기존 기능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어서다. 테슬라의 "오토 파일럿"도 1950년대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에서 시작된 용어임을 감안하면 본격적인 기술 상표 전쟁의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하는 셈이다. 그 중에서 "크루즈(Cruise)"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을 뿐이며 그만큼 앞으로 기술 작명이 쉽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크루즈" 다음의 분쟁 단어는 무엇이 될까? 기술 개발 만큼이나 기술 작명도 쉽지 않은 시대다.
권용주(자동차 칼럼니스트, 국민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