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제조로 다품종 소량 생산 가능
영국 내 EV 스타트업 어라이벌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선 현대차그룹이 어라이벌의 전동 플랫폼 기술을 높이 평가, 투자에 참여하며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생산 방식이 화제다. 전통 방식인 컨베이어 벨트로 구축된 분업화 배제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제품 생산 방식은 이른바 "마이크로 팩토리"로 불리는 맞춤형 생산이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어라이벌이 추진하는 생산 방식은 컨베이어 벨트의 움직임에 따라 사람이 배치돼 조립되는 과정이 아니라 작업대 한 곳에서 완성차 한 대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때 필요한 부품은 소형 물류 로봇이 작업 로봇과 통신을 주고받으며 건네준다. 작업대는 360도 회전이 가능한 만큼 하나의 작업대의 위아래를 모두 활용해 두 대를 동시에 생산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은 생산 비용의 절감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일단 근로자 숫자가 적고 소비자 주문에 따른 맞춤형 전기차의 생산도 어렵지 않다. 굳이 옵션별로 구분해 일정량을 미리 생산할 필요도 없다. 어라이벌은 마이크로 공장 설립에 600억원 정도를 예상하는데 일반적인 완성차 조립공장 설립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에 비하면 엄청나게 적은 비용이다.
물론 "마이크로"라는 단어처럼 공장의 생산량은 많지 않다. 대신 이들은 시장이 있는 곳에 공장을 설립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공장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철저하게 현지 생산, 현지 판매에 임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동화 플랫폼에 기반한 전기차여서 부품 수가 적은 데다 부품도 가급적 현지 생산, 현지 조달로 충당한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어라이벌은 개발에 주력하고 생산은 소규모 최적화, 판매는 시장만 바라보고 간다는 것이다.
마이크로 공장이 가능한 배경은 전동화 플랫폼의 단순화가 꼽힌다. 이른바 스케이트 플랫폼 위에 필요한 공간 모듈을 얹으면 되는데 대부분 로봇이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해 비용의 최소화를 이뤄낸다. 게다가 자동차 생산에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금속 도색 과정이 없는 점도 마이크로 공장 설립을 추진한 배경이다. 도색이 필요한 금속을 색상이 들어간 플라스틱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생산에서 도색 과정에 적지 않은 비용과 시설이 필요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색상 플라스틱 사용이 공간 활용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마이크로 팩토리 계획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선 물류기업 UPS에 공급할 밴 생산 마이크로 공장이 구축되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선 버스를 생산키로 했다. 물론 생산 차종은 필요에 따라 서로 교차될 수도 있으며 글로벌 곳곳에 소규모 공장이 다양한 수요에 대응할 수도 있다. 실제 어라이벌에 제품 생산을 맡긴 우버는 나라마다 필요한 차종의 기능이 다를 수 있어 오히려 선호한다.
어라이벌과 유사하지만 EV 스타트업 카누(Canoo)는 마이크로 팩토리 앞에 "메가(Mega)"라는 단어를 붙였다. 일반적인 대규모 완성차 공장보다 작되 어라이벌이 내세운 마이크로 공장보다 규모가 큰 것을 의미한다. 이외 이스라엘에 소재한 리오토모티브는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을 미쓰비시 등 대형 자동차 제조사에 공급하고 부품기업 마그나는 리오토모티브 및 전기 스포츠카 제조사 피스커와 손잡고 EV를 개발한다. 역시 플랫폼은 스케이트보드 방식이다.
이처럼 신생 EV 스타트업에게 제조 방식의 혁신은 상용화로 가는 지름길로 통한다. 대부분의 전기차 개발기업이 생산 시설 구축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 방식에 기반한 생산 시설 투자비의 대폭 절감은 상용화 이후 수익 실현 시점을 앞당기는 요소여서 도입 경쟁이 치열한 형국이다.
물론 생산 방식의 혁신이 이뤄지는 만큼 사람의 역할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반면 사람이 기계처럼 컨베이어 벨트에서 무한 반복 작업하는 것도 사라져 인간으로서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120년 전 헨리 포드가 구축한 컨베이어 벨트의 대량 생산 방식이 인간의 창의성 등이 아닌 단순 노동에 기반한 혁신이었다면 어라이벌의 마이크로 팩토리는 창의적 인간에 기반한 기계의 작동에 기반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