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트카 수준의 화려한 디자인, 섬세한 마감
-V8 5.0ℓ 자연흡기 엔진의 강력한 성능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 파워트레인은 대체 불가능한 미래 동력원이 됐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수단이자 100년 이상 지켜온 내연기관을 대체할 유일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거스를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기존 엔진이 주는 감각에 익숙한 자동차 마니아들은 내심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완성차 회사들은 지금도 꾸준히 기념비적인 고성능 차를 선보이고 있다. 점점 사라져 가는 것들을 위한 헌정이라고 생각할 만큼 공을 들이고 강한 성능을 발휘하는 게 특징. 렉서스도 흐름에 동참하며 건재한 위상을 드러내는 중이다. 그리고 핵심에는 아름다운 디자인과 V8 엔진을 얹은 LC500 컨버터블이 있다. 다시 한 번 스포츠카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신상 오픈카를 직접 만났다.
외관은 한 눈에 봐도 아름답다. 신선한 구성이 가득하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훔친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스핀들 그릴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화살촉 모양의 주간주행등, 길게 내려오는 방향지시등까지 전부 독창적이다. 특히 완만하게 누운 삼각 헤드램프와 뒤로 이어진 펜더는 이 차를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다. 일반적인 자동차 펜더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며 보닛과 평평하게 이어져 특별한 감각을 드러낸다.
실제로 LC 개발자들은 몇 년 전 본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구현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앞쪽 펜더라고 답한 바 있다. 디자이너 관점에서 볼 때 완벽한 비율을 위해 펜더 높이를 극단적으로 낮춰야 했다는 얘기다.
반면 엔지니어는 주행에 도움을 주는 부품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져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결국 서스펜션 각을 틀어 눕히고 엔진 안쪽으로 배치한 결과 아름다운 디자인을 연출할 수 있게 됐다. 컨셉트카의 느낌을 양산차에서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옆은 LC 쿠페의 독창적인 외관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컨버터블 특유의 개방감을 강조하는 소프트탑 루프가 특징이다. 루프는 토너 커버 안에 격납하는 방식이며 극단적인 속도 변화 없이 3단계로 리듬감 있게 개폐된다. 시속 50㎞/h 이하의 속도에서 약 15초만에 열고 닫을 수 있고 팜 레스트 안쪽에 마련된 오픈 스위치로 조작할 수 있다. 이 외에 뒤쪽 공기를 완만하게 흘려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에어커튼과 접이식 도어, 날렵한 사이드미러도 세련미를 키운다. 21인치 휠도 압권이다. 블랙과 반무광 크롬을 적절히 섞었고 꽃잎 모양으로 화려하고 우아한 오픈카의 자태를 더한다.
뒤는 미래지향적인 모습이다. 클리어 타입의 테일램프 덕분인데 안쪽으로 깊은 공간감을 연출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낸다. 이와 함께 극단적으로 높은 범퍼는 깊은 굴곡을 줬고 작은 렉서스 로고와 레터링이 대비를 이뤄 특별함을 연출한다. 다소 심심한 배기구와 디퓨저를 보고 있으면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고성능 차 보다는 럭셔리에 초점을 맞춘 오픈카의 개념을 분명히 한다.
실내는 고급스러운 차의 성격을 배로 느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부분이 가죽이며 시트는 탑승자 어깨부분의 퀼팅, 구멍의 크기가 다른 3종의 천공법을 통해 그라데이션 패턴을 표현했다. 곳곳에는 스웨이드와 금속 소재를 적절히 섞었고 패널을 구분짓는 스티치는 섬세하고 정교하게 꿰맸다. 각 버튼을 누르고 돌릴 때 드는 촉감도 훌륭하다. 부드럽고 차분하게 조작되며 차를 다루는 순간마다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심지어 루프 개방 시 헤드 레스트 후면에서 렉서스 로고 등이 보이게 디테일도 추가했다.
디지털 계기판은 필요에 따라 원형 클러스터를 옆으로 옮길 수 있어 보는 맛을 더한다. 여기에 선명한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큼직, 와이드 센터페시아 모니터, 통풍시트, 마크레빈슨 오디오 등 기본 편의 품목도 만족스럽다. 다만 화면의 경우 터치가 지원되지 않아서 살짝 아쉽다. 변속 레버 옆에 마련한 각종 버튼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이 외에 완만한 곡선으로 내려오는 격벽을 통해 조수석과 구분을 지었고 송풍구를 포함해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색다른 실내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오픈카 전용 편의 기술도 눈 여겨 볼 만하다. 각도 조절이 가능한 앞좌석의 넥 히터, 루프 개폐 상태에 따라 냉난방 장치를 제어하는 오픈 에어 컨트롤은 사용하는 내내 편리했다. 이와 함께 오픈탑 주행에서도 효과적인 노이즈 캔슬링을 지원하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등 다양한 편의 기능을 장착했다.
수납은 다소 부족하다. 제 역할을 하는 컵홀더는 한 개 뿐이며 콘솔박스와 글러브박스, 도어 안쪽 수납도 큰 편은 아니다. 2열도 비슷한데 탑승공간의 역할 보다는 가방이나 필요한 짐을 넣는 용도로 쓰는 걸 추천한다. 트렁크는 톱을 열고 닫는 것과 별개로 일정한 공간을 제공한다. 옆으로는 제법 넓지만 높이가 낮아 적극적인 활용은 한계를 보인다.
LC 500 컨버터블은 V8 5.0ℓ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얹어 최고 477마력, 최대 55.1㎏·m의 힘을 발휘한다. 다이렉트 시프트 10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해 일정한 변속 간격으로 주행이 가능하며 뒷바퀴굴림이 기본이다. 시동을 켜면 강한 소리를 토해내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만큼 무시무시한 엔진이 들어있는 차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린다.
스로틀을 활짝 열면 본성을 밝히며 맹렬히 질주한다. 순간 몰입감이 뛰어나고 특유의 펀치력으로 긴장감을 키운다. 자연흡기 특징을 쉽게 경험할 수 있는데 어느 순간에서든지 속 시원하게 튀어 나가며 운전자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스릴과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고 그만큼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가속감이다.
여기에는 귓가에 퍼지는 사운드가 한 몫 한다. 3,000rpm 부근까지는 그르렁 거리는 소리로 긴장감을 높이고 그 이후부터는 폭발음과 함께 가속 페달을 부추긴다. 특히 7,000rpm까지 치솟으며 레드존을 향할 때는 클라이맥스가 터지며 흥분을 끌어올린다. 스포티한 엔진음을 즐길 수 있는 사운드 제너레이터의 역량도 크지만 기본적인 8기통 대배기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 만으로도 충분하다. 배기음보다는 엔진음에 집중하며 역동적인 드라이빙에 풍성함을 더한다.
전후륜의 멀티링크 서스펜션에 장착된 전자 제어 가변 서스펜션은 운전자의 조작 및 노면 상태에 따라 최적화된 주행성능을 제공한다. 주행 모드에 따라 차이가 큰데 컴포트에서는 한 없이 차분하고 부드럽다. 반면 스포츠 플러스에서는 민감하고 도로 위 굴곡을 세밀하게 읽어 운전자에게 전달한다. 덕분에 과감한 코너 진입과 탈출이 가능하며 가속페달에 욕심을 부리게 된다. 물론 무리한 속도 경쟁은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
앞 245㎜, 뒤 275㎜ 사이즈의 브리지스톤 타이어가 최대한 접지력을 확보하지만 균형감에 있어서는 비슷한 가격대의 독일산 스포츠카 보다는 살짝 부족하다. 시트포지션도 높은 편이고 후륜의 특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꽁무니도 살짝 흐른다. 그만큼 차와 도로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최적의 스로틀을 맞춰야 하는 숙제가 있다. 단점은 아니다. 모든 걸 알아서 다 해주는 요즘 스포츠카보다는 훨씬 많은 교감을 필요로 하고 운전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변속기다. 10단 자동변속기는 역할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민첩함이 다소 떨어지는데 다운시프트보다 업시프트에서 현상은 두드러진다. 두툼하게 통으로 깎은 멋진 패들시프트가 민망할 정도다. 단수를 촘촘히 나눈 것도 의문이다. 뒤쪽은 대부분 항속 기어 성격이 강해 역동적인 주행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RC-F에 들어간 8단 자동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그만큼 기어비를 앞으로 촘촘히 당기고 보다 빠른 반응을 보여줄 수 있게 소프트웨어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격렬한 주행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 톱을 열었다. 차는 성격을 180도 바꿔 낭만 가득한 GT카의 모습으로 바꿨다. 늦여름의 햇살과 제법 시원해진 바람이 반갑다. 여유로운 주행에는 안전 기능의 역할이 컸다. 예방 기술 패키지인 렉서스 세이프티 시스템 플러스(LSS+) 및 후측방 경고 시스템(RCTA)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안전을 보장한다. 이 외에 충돌 사고 시 탑승자의 피해를 최소화 시켜주는 액티브 롤 바도 탑재해 심리적 안정감도 제공한다.
렉서스 LC500 컨버터블은 라이벌이 없는 독보적인 위치에서 소유 가치를 높인다. 무엇보다도 조용하고 실용적인 전기 파워트레인 차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연기관 문화의 산물로 남을 것 같은 희소성도 갖고 있다. 막바지로 접어든 대배기량 시대에서 렉서스가 다듬은 새 오픈카는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소중한 차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개소세 인하분을 반영한 LC500 컨버터블의 가격은 1억7,800만원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