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규격, 엔진배기량 200㏄ 늘고 길이 너비 각 100㎜ 확대
-1,000㏄ 엔진 한계로 성능은 제자리
-가격은 편의 안전품목 강화로 급상승
국산 경차는 1991년 최초로 등장했다. 당시 정부가 자동차산업 진흥과 에너지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국민차 보급을 추진하면서다. 자동차관리법상에서 경차는 "가벼울 경(輕)" 자를 차용해 차체 크기와 배기량이 작은 차를 의미한다. 그러나 보통은 "경제적인 차"를 뜻하는 경차(經車)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률 용어가 어떻든 경차는 "작고 경제적인 차"로서 오랜 세월 국민들의 가장 작은 신발이 돼왔다. 그러다 한동안 잠잠했던 경차 시장이 최근 20여년 만에 신차를 내놓은 현대차 캐스퍼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트렌드와 신차 효과가 맞물리며 어느때보다 활기찬 분위기다. 캐스퍼로 재조명받기 시작한 국산 경차 30년의 발자취를 짚어 본다.
▲경차 규격
최초의 국산 경차는 과거 대우차(현 쉐보레)가 만든 티코다. 정부가 국민차 참여 기업을 모집했지만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현대차와 기아차는 경차 진출을 포기했다. 당초 경차 규격은 길이 3,500㎜, 너비 1,500㎜, 높이 2,000㎜ 이하, 엔진배기량 800㏄ 이하였다. 이를 만족하는 티코의 크기는 길이 3,340㎜, 너비 1,400㎜, 높이 1,395㎜, 휠베이스 2,335㎜에 불과했다. 엔진은 직렬 3기통 796㏄ 엔진을 장착해 수동 4단, 수동 5단, 자동 3단 등의 변속기와 맞물렸다.
티코의 예상 밖 선전에 현대차는 1997년 아토스를, 기아차는 아토스의 수출형을 기반으로 한 비스토를 내세워 경쟁에 가담했다. 차체가 길이 3,495㎜, 1,495㎜, 높이 1,615㎜, 휠베이스 2,380㎜로, 티코보다 155㎜ 길고, 95㎜ 넓었으며, 220㎜ 높았다. 휠베이스 역시 45㎜ 길어 전반적으로 티코보다 거주성이 높았다. 그러자 대우차는 1998년 티코를 단종하고 후속인 마티즈로 맞대응했다. 길이 3,495㎜, 너비 1,495㎜, 높이 1,485㎜, 휠베이스 2,340㎜로, 티코보다 155㎜ 길고, 너비는 95㎜, 높이는 90㎜, 휠베이스가 5㎜ 늘었다. 경쟁차인 아토스가 껑충한 높이로 혹평을 받았던 것과 비교해 전체적인 비율에서 호평을 받았다.
3파전으로 불붙은 경차 시장은 1998년 국내 전체 승용차 판매에서 무려 35%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확대됐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경차 혜택 축소로 시장이 얼어붙자 현대차는 2002년 아토스를, 기아차는 2003년 비스토를 단종했다. 기아차는 2004년 모닝을 내놨지만 당시 경차 규격을 넘어서는 배기량 및 크기로 경차 분류에 포함되지 못했다. 모닝은 길이 3,495㎜, 높이 1,480㎜, 휠베이스 2,370㎜였지만 너비가 1,500㎜를 초과하는 1,595㎜였다. 엔진도 800cc를 넘는 1.0ℓ 입실론 MPI를 장착했다.
기아차는 안전을 이유로 정부에 경차 배기량 확대를 요구했다. 반면 대우차는 경차 목적이 에너지 절감에 있다는 점을 들어 800cc 유지를 고수했다. 정부는 IMF 이후 급격히 줄어든 경차 시장 활성화를 위해 기아차의 편을 들었다. 2008년부터 경차 규격은 현 수준인 길이 3,600㎜, 너비 1,600㎜, 높이 2,000㎜ 이하, 엔진 배기량 1,000cc 이하로 확대됐다. 이 기준에 따라 기아 모닝은 경차로 편입됐다.
2021년 현재 판매 중인 경차는 대부분 규격을 꽉 채워 차체를 극대화했다. 길이와 너비는 각각 3,595㎜, 1,595㎜로 맞추고 높이나 휠베이스에서 차별화를 뒀다. 모닝은 높이가 1,485㎜, 휠베이스 2,400㎜이며, 레이는 높이 1,700㎜, 휠베이스 2,520㎜로 경차 중 가장 넓다. 스파크 역시 모닝과 길이, 너비, 높이가 같고 휠베이스만 2,395㎜로 약간 짧다. 가장 최근 출시된 현대차 캐스퍼는 높이가 1,575㎜로 모닝보다 90㎜ 높다. 초창기 티코와 비교하자면 길이는 255㎜, 너비 195㎜, 높이 180㎜, 휠베이스 65㎜가 늘어난 셈이다.
▲성능
국산 경차는 엔진 배기량에 따라 편의상 1세대와 2세대로 구분한다. 엔진 배기량 800cc 이하의 1세대 경차는 티코와 아토스, 비스토, 마티즈(1, 2세대) 등이 속한다. 티코는 3기통 796㏄ 엔진을 장착해 최고 41마력, 최대 6.0㎏·m의 힘을 발휘했다. 796㏄ 엔진의 1세대 마티즈에 들어서 최고출력이 52마력을 넘어섰고 최대 7.3㎏·m 토크를 냈다. 아토스와 비스토는 같은 차체와 동력계를 얹었는데, 798㏄ 가솔린 엔진으로 최고 51~55마력, 최대 7.0~7.4㎏·m를 기록했다.
엔진배기량이 1,000cc 이하로 개정된 2008년 이후 성능도 한층 개선됐다. 이때 경차 라인업은 3세대 마티즈와 쉐보레 스파크, 기아차 모닝과 레이 등으로 구성된다. 3세대 마티즈는 1.0ℓ 가솔린 기준 최고 70마력, 최대 9.4㎏·m 토크로 성능이 향상됐다. 쉐보레 스파크의 최고출력은 70~75마력, 최대토크는 9.4~9.7㎏·m에 달했다. 1세대 모닝은 999cc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61마력, 최대토크 8.8㎏·m에서 2세대 최고 82마력, 최대 9.6㎏·m까지 올랐다. 3세대 반짝 등장한 터보 엔진은 최고 100마력, 최대 17.5㎏·m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경차의 성능은 크게 변화가 없다. 기아차 레이도 998cc 엔진을 얹어 최고 78마력, 최대 9.5㎏·m 힘을 내며, 캐스퍼 역시 1.0ℓ 가솔린 에닌이 최고 76마력, 최대 9.5㎏·m의 성능을 발휘한다. 모닝에 장착했던 1.0ℓ 터보 엔진을 살려 최고 100마력, 최대 17.5㎏·m의 힘을 더했다.
공차 중량은 30년 새 크게 늘었다. 각종 편의 안전 품목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티코의 공차 중량은 620~650㎏에 불과했다. 마티즈 1세대는 795㎏였지만 3세대부터 900㎏를 넘었다. 기아차 모닝도 865㎏에서 시작해 현재는 995㎏까지 늘었다. 기아차 레이는 기본 중량이 1,030㎏ 이상이다.
▲가격
국내 첫 경차인 티코의 판매가격은 1991년 290만원이었다. 정부가 "작고 실용적이면서도 저렴하게 보급할 수 있는 국민차"를 내세우면서 "200만원대" 가격 책정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소형 승용차인 현대차 엑셀 5도어의 400만~500만원보다 한참 낮은 가격이었는데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대우차는 편의 사양을 크게 덜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2,000원이었다.
1997년 등장한 현대차 아토스 가격은 498만~527만원이었다. 티코보다 큰 차체와 편의 품목을 내세워 견고한 이미지와 안전도를 강조했다. 2002년 단종 전 아토스는 463만~862만원에 판매됐다. 기아차 비스토는 520만~550만원에 등장했다. 이후 2000년 터보 엔진을 장착한 비스터 터보를 통해 가격을 630만~648만원까지 높였다.
티코 후속으로 등장한 대우 마티즈는 상품성을 보강하며 가격을 올렸다. 1999년 475만~880만원에 판매됐다. 2005년 2세대를 내놓으면서 기본 가격을 612만원으로 높였고 최고트림은 885만원에 달했다. 2010년 3세대부터 1,000만원대를 넘기 시작했는데 810만~1,226만원의 가격대를 보였다. 2015년 등장한 쉐보레 더 넥스트 스파크는 시작가격이 1,199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2004년 기아차가 처음 선보인 1세대 모닝 가격은 746만~1,030만원이었다. 2008년 이후 본격적인 경차로 인정받은 이후엔 가격이 더 올랐다. 2011년 2세대는 830만~1,378만원에 판매됐고, 2017년엔 최고트림이 1,500만원을 넘었다.
경차 고급화 시기에 출시된 기아차 레이는 기본 트림이 1,000만원 이상에서 시작했다. 2012년 첫 출시 가격이 1,135만~1,625만원에 달했다. 완전변경 없이 2018년 부분변경을 거쳐 진화한 레이는 시작 가격을 더 올려 1,315만원부터 선택 가능했다. 2021년 시판 중인 레이는 1,355만원~1,580만원이다.
가장 최근 등장한 현대차 캐스퍼는 가격대가 1,385만~1,870만원이며, 풀옵션을 기준으로는 2,062만원에 달한다. 경차 2,000만원 시대를 달성한 셈이다. 30년 전 티코와 비교하면 적게는 4배에서 최대 7배까지 상승했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