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650마력, 0→100㎞/h 가속시간 3.3초
-낮은 무게중심과 정교한 움직임 인상적
속도 경쟁은 자동차 회사의 숙명과도 같은 존재다. 본질에 충실하며 기술력을 키워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누구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년에 여러 번 뉘르부르크링 신기록이 바뀌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포르쉐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실력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모터스포츠로 역사를 다져온 포르쉐는 매번 새로운 도전을 진행하며 한계를 넘고 있다. 초고성능 SUV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카이엔 터보 GT도 그 중 하나다. 포르쉐 새 스포츠카는 뉘르부르크링을 7분38초만에 주파하며 SUV 랩타임 1위 타이틀도 차지한 상황.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9일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린 포르쉐 GT 미디어 트랙 익스피리언스에 참가했다. 그리고 직접 카이엔 터보 GT를 트랙에서 몰면서 차가 가진 능력을 경험했다. 결과는 놀라웠고 비현실적인 감각과 중독성 짙은 매력을 안긴 채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카이엔 터보 GT의 핵심은 단연 파워트레인이다. V8 4.0ℓ 바이터보 엔진은 카이엔 터보 쿠페보다 92마력 높은 최고출력 650마력을 발휘한다. 최대토크는 이전 보다 8.1㎏∙m 증가한 86.7㎏∙m이며 정지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데 0.6초 단축된 단 3.3초가 소요된다. 최고속도는 14㎞/h 증가한 300㎞/h에 달한다.
무시무시한 숫자를 기억한 뒤 운전석에 올라탔다. SUV답게 올려다보는 느낌이 강하다. 시야가 넓고 높다는 뜻이다. 이후 서킷에 차를 올려서는 일반 모드로 한 바퀴를 경험한 뒤 점차 강도를 높여 주행했다. 첫인상은 소리였다.
시동을 켜면 우렁찬 사운드로 주변을 압도하고 주행 중에도 차는 시종일관 거친 소리를 내며 운전자를 위협한다. 날카로운 엔진음과 굵은 배기음이 조화를 이뤄 흥분을 부추긴다. 성화에 못 이겨 스로틀을 열면 차는 굉음을 내지르며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중앙에 놓인 테일 파이프는 스포츠 배기 시스템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리어 사일런서를 포함한 배기 시스템은 가볍고 열에 강한 티타늄으로 제작된 게 특징이며 센터 사일런서를 생략해 무게도 더욱 가벼워졌다(약 18㎏ 줄어들었다). 여기에 카이엔 터보 GT 고유의 음색을 내기 위한 세팅을 진행했고 엔진회전수에 맞춰 독특한 톤을 설정해 중독성 강한 소리를 전달한다.
공격적인 성격은 스포츠 모드에서 두드러진다. 가속 페달에 살짝만 발을 올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침없이 튀어나간다. 풍부한 출력과 강력한 토크를 바탕으로 순식간에 원하는 속도에 차를 올려놓고 계기판 속 바늘은 두 배씩 점프하는 것 같다.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몸이 시트 안으로 파묻힌다. 주변 사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가고 전방 시야가 급격히 좁아지는 기이한 현상도 경험하게 된다.
실제로 포르쉐는 새 차를 만들면서 동력계와 합을 맞추는 대부분의 부품을 광범위하게 바꿨다. 먼저 크랭크축은 드라이브 샤프트, 피스톤, 타이밍 체인 구동 등 엔진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개선해 효율을 높였다.
터보차저는 기존 카이엔 터보 대비 0.1바, 최고출력 1.6바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극대화했다. 컴프레셔 역시 기존 대비 크기를 10% 키워 연소실에 들어가는 압축비를 더 줄일 수 있었다. 이 같은 구성 요소는 출력이 증가하면서도 더 높아진 최대 부하와 한계점을 만들어냈고 서킷에서 진가를 낼 수 있게 도와준다.
엔진과 합을 맞추는 8단 팁트로닉 S 변속기는 반응이 환상적이다. 손보다 빠른 반응으로 단수를 오르내리며 정확한 속도와 진입 시기에 맞춰서 최적의 변속을 구사한다. 매뉴얼 모드에서는 레드존 가까이 붙여 성능을 극적으로 끌어 올리며 더 빠르고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한다. 퍼포먼스에 최적화된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존하는 가장 지능화된 변속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예리하고 똑똑하다.
코너에서는 이 차가 SUV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우선 무게 중심이 상당히 낮다. 카이엔 터보 쿠페에 비해 최대 17mm 낮은 차고와 바닥에 붙어 달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트포지션이 한 몫 한다. 이에 기반해 패시브 섀시 요소와 액티브 제어 시스템은 핸들링 및 성능에 맞춰 재설계 및 최적화해 완벽한 상호 작용을 보장한다. 세그먼트의 한계를 파악하고 뜯어 고쳐 잘 달릴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바꿔 놓은 것이다.
좌우가 급변하는 물리적 한계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완벽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에는 하체 세팅 역할이 컸다. 3 챔버 에어 서스펜션의 강성은 최대 15% 증가했으며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는 댐퍼 특성을 더 단단하게 조였다.
파워 스티어링 플러스 및 리어 액슬 스티어링도 전부 조정 적용했다. 좌우 롤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브랜드 핵심 기술인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 액티브 롤 스태빌라이제이션 시스템은 이제 지능적인 소프트웨어 작동으로 더 정교하다.
결과적으로 카이엔 터보 GT는 고속 코너링 구간에서도 더 정확한 턴-인 동작을 보여주며 롤 스태빌리티와 접지력도 크게 높아졌다. 포르쉐 토크 백터링 시스템은 지지력을 높여 각 바퀴에 활동 영역을 키우고 최적화된 프런트 액슬은 속도에 맞춰 칼 같은 핸들링을 제공한다. 깊게 코너를 들어갔다 강하게 빠져나와도 불안한 자세를 보이지 않으며 깔끔하고 세련된 동작으로 운전 실력을 키운다. 박스터, 911과 같은 본격 스포츠카와 겨뤄도 손색없는 실력이다.
접지력은 낮고 넓은 스포츠카의 감각과 동일하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는데 프런트 휠은 터보 쿠페에 비해 1인치 더 넓고 캠버는 0.45도 늘어났다. 또 터보 GT를 위해 특별 개발된 22인치 피렐리 P 제로 코르사 퍼포먼스 타이어는 접지 면적을 더 증가시킨다. 구성의 차이가 뛰어난 결과로 증명되며 끈적한 접지력을 바탕으로 도로를 움켜쥐며 달린다.
짧지만 강력했던 기억을 간직한 채 트랙 주행을 마치고 차를 살펴봤다. 독특한 컬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새로운 아틱 그레이 컬러를 옵션으로 제공하며 카이엔 터보 GT만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스포일러 립이 적용된 전용 프런트 에이프런과 더 넓어진 측면 쿨링 에어 인테이크도 모든 공기를 빨아들일 것처럼 큼직하다.
옆은 네오다임 컬러의 22 인치 GT 디자인 휠이 특징이다. 금색 빛이 고급감을 키운다. 윤곽이 뚜렷한 카본 루프, 블랙 컬러의 휠 아치도 디자인을 완성도를 높인다. 뒤는 확장 가능한 리어 스포일러 립을 적용했다. 터보 보다 25㎜ 더 넓어져 최고속도에서 다운포스를 최대 40㎏까지 증가시킨다. 카본으로 제작된 디퓨저 패널과 엄청난 열기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티타늄 배기구는 차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무지막지한 성격에 비하면 실내는 수수하다. 곳곳에 두른 알칸타라 소재만 눈에 들어올 정도다. 이 외에 8방향 조절 가능한 프런트 스포츠 시트가 기본으로 제공하며 헤드레스트의 터보GT 레터링은 오너의 자부심을 더한다. 다기능 스포츠 스티어링 휠에는 12시 방향에 옐로우 컬러 포인트가 적용된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PCM 6.0이 처음으로 들어갔다. 애플 뮤직과 애플 팟캐스트를 유기적으로 통합시켰고 안드로이드 오토가 가능해졌다.
카이엔 터보 GT는 고성능 SUV의 기준을 새로 세운다. 단순히 출력 경쟁에만 집중한 나머지 전반적인 균형감을 해치는 그저 그런 차들과는 선을 긋는다. 포르쉐 새 SUV는 빠르게 달릴 뿐만 아니라 폭발적인 성능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게 모든 주행 영역에서 타협점을 찾는다.
직선은 물론 굽이치는 연속 코너, 고속 대회전 구간 등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언제 어느 상황이 와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가장 빠르게 통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축지법을 쓰는 것처럼 육중한 덩치를 잊게 만들며 운전을 하는 순간에는 날렵한 스포츠카를 모는 기분이다. 차에서 내려 무거운 캠핑 장비나 짐을 내릴 때 비로소 SUV임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카이엔 터보 GT는 납작한 스포츠카와 겨룰 수 있는 진정한 고성능 SUV 이자 브랜드 역사상 가장 놀라운 자동차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만큼 트랙 위에서 특별한 GT 레터링이 붙은 카이엔 쿠페를 보면 조용히 몸을 낮추고 뒤태 감상에 집중하는 편이 낫겠다. 섣불리 덤볐다가는 감쪽같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마법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편 카이엔 터보 GT는 연내 국내 출시할 예정이며 가격은 2억3,410만 원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