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vs 국민 생활" 정면 충돌 불가피
국민들이 생활 불편을 감내할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이나마 환경 정책을 후퇴시킬 것인가. 최근 디젤 발목을 잡은 요소수 대란이 해결되지 못할 경우를 상정해 벌어지는 논란의 핵심이다.
2일 완성차 및 요소수 공급 업체 등에 따르면 이번 요소수 부족은 단기간 해결 자체가 쉽지 않은 사안이다. 정부가 요소 수출을 제한한 중국을 상대로 협상을 벌이지만 중국 또한 요소 가격 폭등으로 중국 내 농민들의 부담을 줄여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요소 수입선을 중국 이외 지역으로 돌리고 있지만 중국 수입 물량이 60%를 넘는 데다 요소수 부족은 한국 뿐 아니라 디젤차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을 강화한 대부분 국가도 겪고 있어 대체가 쉽지 않다.
이와 관련, 국내 요소수 제조사 관계자는 "현재 재고가 한 달 물량 정도 밖에 없는데 정부가 중국과 협상에 나섰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중국도 요소 부족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농민들의 생산 부담이 큰 것이고 한국은 디젤차 운행자의 걱정이 많은 것인데 중국 정부가 농민 부담을 높일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양국 정부 입장을 바꿔 볼 때 중국이 요소 수출을 다시 늘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미다.
따라서 완성차 기업들의 대비도 시작됐다. 규정상 출고용 디젤차에 요소수를 일정량은 채워야 하는 탓이다. 하지만 출고 이후는 제조사 책임이 아니어서 최소 물량 확보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한달 후에는 출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요소 공급이 중단될 경우 당장 국민 모두가 생활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점이다. 요소수 부족에 따른 물류 대란이 일어나면 배출 규제가 없는 군용 화물차를 투입한다는 복안이 수립 중이지만 아침마다 생활쓰레기 및 음식물, 기타 가정용 폐기물 등을 수거하는 특수차의 운행도 중단되는 탓이다. 오물수거용 트럭도 대부분 질소산화물 배출규제 대상이어서 요소수가 필요한 정화장치를 부착하고 있어서다. 또한 군용차로 대형 물류는 어느 정도 해결해도 이들을 다시 가정 곳곳에 실어 나를 택배가 멈출 수밖에 없어 물류 대란이 아니라 물류 자체가 아예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결국 "환경 vs 산업"이 충돌하고 정치적 판단에 따라 요소수 대란이 해결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환경부의 고시 변경을 통해 배출가스 기준이 완화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내 장관 고시로 규정된 제작차 배출가스 기준을 과거 수준으로 완화하는 방법이 선택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환경부로선 정책 후퇴여서 가장 기피하는 방안이지만 요소수 부족은 전 국민의 생활 불편을 초래하기에 정치적 결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쉽게 보면 환경부가 대기오염 정책을 고수하면 또 다른 환경 사업인 오물 정화 사업을 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지는 형국이다. 하지만 질소산화물 저감은 글로벌 환경 정책 흐름이라는 점에서 한국만 고시를 변경해 배출 기준을 완화하면 친환경을 외면했다는 국제적 비판에도 직면할 수 있어 환경부도 부담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요소수 부족에 따른 불편은 국민 모두가 받는다는 점에서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는 게 관련 업계의 목소리다. 실제 환경부가 디젤차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을 2013년 이전 기준으로 되돌리면 제조사는 소프트웨어 변경 등을 통해 질소산화물 저감장치 작동을 멈춰 요소수를 사용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소프트웨어 변경이 제조사 수익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불가피하다면 정부 명령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요소수가 없어 국민 모두가 불편함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요소수 사용을 배제하는 배출가스 저감장치 작동을 멈출 것인가를 결정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며 "판단은 정부의 몫이지만 국민적 여론도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요소수 부족은 최근 서유럽 일부 국가에서도 시작됐다. 특히 이탈리아는 요소수 최대 제조업체가 생산 물량을 대폭 줄이면서 디젤 화물차의 운행 중단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