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3열 좌석 구조·고급스러운 디자인 강조
-짚의 오프로드 기본기와 레벨2 자율주행·연결성도 챙겨
짚 그랜드 체로키가 11년 만에 세대 교체를 이뤘다. 신형 그랜드 체로키는 덩치와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물론 오프로드를 비롯한 다양한 주행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실력도 빼놓지 않았다. 국내에는 3열 좌석을 더한 그랜드 체로키 L이 발을 디뎠다. 보다 큰 제품을 선호하는 시장 요구에 부응한 것. 첫 3열 제품인데다 오랜만에 신차 효과를 노리는 만큼 소비자들에게 보여줄 게 많아 보인다.
▲화려한 디자인과 상품성
그랜드 체로키 L의 디자인은 지금까지 본 짚 중 가장 화려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기교가 느껴진다. 외관은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전통과 첨단 이미지를 버무렸다. 전면부는 짚 특유의 7슬롯 그릴이 여전하지만 헤드램프에 LED를 적극 활용해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후드 끝 부분은 그릴 아래쪽으로 갈수록 뒤쪽으로 꺾이는 샤크 노즈 스타일을 반영해 역동적인 조형성을 지닌다. 그랜드 체로키 L은 서밋 리저브와 오버랜드 두 트림으로 구성된다. 시승차는 상위 트림인 서밋 리저브로 그릴, 범퍼, 알로이 휠 디자인 등을 차별화했다. 서밋 리저브 그릴은 크롬 도트 패턴을 적용했으며 범퍼는 기다란 크롬 가니쉬를 덧대 플래그십 면모가 느껴진다.
측면은 정직한 2박스 차체가 사다리꼴 모양의 휠하우스와 함께 짚 라인업임을 암시한다. 간결한 면 처리와 캐릭터라인, 그리고 DLO를 따라 길게 뻗은 크롬 장식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후면부는 전반적으로 수평선을 강조해 차가 넓어 보이도록 했다. 전면부처럼 얇은 테일램프를 끼워 넣었으며 머플러 팁은 장식이 아닌 제 역할을 해낸다.
실내는 전반적인 완성도가 높아 짚, 아니 미국차가 아닌 것 같다. 가죽, 우드, 고광택 패널 등의 여러 소재를 필요한 곳마다 적절히 배치했고 모난 구석 없이 잘 짜여져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고급스러워졌다는 건 예전보다 격을 높였다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 중앙에는 직사각형에 둘러싸인 짚 로고가 박혀 있다. 원형이었던 과거에 비해 단정해 보인다.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10.25인치 디지털 계기판을 짚의 대시 보드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센터페시아의 송풍구에서 흘러내리는 듯한 고광택 패널은 10.1인치 디스플레이 기반의 U커넥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담고 있다. 새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여유를 갖고 조작해야 한다. 하드웨어 처리 속도가 빠르지 않아 답답함을 주는 순간이 종종 있다. 반면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무선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무기다. 그동안 자동차에서 볼 수 없었던 19 스피커 기반의 매킨토시 음향 시스템은 생소하다. 그러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엠비언트 라이트 등 주변 기기와의 조화는 다른 브랜드보다 더 진득하다.
2열 좌석은 2명이 독립식으로 앉는 구조다. 그 가운데엔 별도의 콘솔박스를 마련해 편의성을 높였다. 이렇게 좌석을 구성하면 운전자가 거울이나 카메라로 뒷좌석을 살필 때 중앙에 시야가 트여 소통이 원활해진다. 오버랜드 트림은 2열에 3명이 앉는 벤치형 좌석을 장착한다.
2명이 앉을 수 있는 3열 좌석은 여느 SUV의 3열보다 여유로운 편이다. 차체 길이가 5.2m를 넘겼으니 그럴 만도 하다. 승하차를 위해 2열 좌석을 눕혀야 하지만 시트가 움직이는 범위가 큰 덕분에 타고 내리기 어렵지 않다. 각 좌석마다 USB 포트를 넉넉히 준비한 점도 돋보인다. 적재공간은 기본 490ℓ, 3열 좌석을 접으면 1,328ℓ, 2열까지 접으면 2,390ℓ로 쓸 수 있다.
▲바랜 엔진과 신상 플랫폼의 만남
엔진은 V6 3.6ℓ 가솔린 자연흡기 방식으로, 최고 286마력, 최대 35.1㎏·m의 토크를 발휘한다. 한때 크라이슬러 주력으로 자리했던 펜타스타 엔진이다. 등장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건재하다고 알리는 듯 우렁차고 거칠다. 어쩌면 그랜드 체로키에겐 순수 전기차 시대 이전의 마지막 엔진일지 모른다. 그러나 무게가 2.3t이 넘는 데다가 초반 토크가 약한 가솔린 자연흡기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진다. 엔진음은 실제 주행 속도보다 오버하는 듯한 느낌이다.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한 결과 효율은 복합 7.7 ㎞/ℓ(도심 6.7㎞/ℓ, 고속 9.4㎞/ℓ)를 확보했다.
새 플랫폼은 그랜드 체로키 L이 온로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엔진 마운트를 개선해 진동을 줄였다. 하지만 오래된 엔진을 소화하기 쉽지 않은 탓에 발끝에서 전해지는 떨림이 남아있다. 그러나 속도가 붙을수록 잔진동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승차감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인 쿼드라 리프트 에어 서스펜션은 지상고를 5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가장 낮게 할 경우 차체는 왜건처럼 보일만큼 낮게 깔려있다. 그러나 가장 높게 하면 어지간한 오프로드는 다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풍채가 나타난다. 고속 주행 시엔 자동으로 차체를 낮춰 주행 안정성을 높이기도 한다.
짚의 자랑 중 하나인 쿼드라-트랙 II 4×4 시스템은 기어비를 2.72:1까지 쓸 수 있다. 크롤비는 44.1:1을 지원한다. 온로드 중심의 시승 동안 경험하지 못했지만 셀렉-터레인과 함께 오프로드 기본기가 탄탄한 만큼 기대가 크다. 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차선을 인식하는 능력이 아쉽다. 노면이 지저분한 곳에서는 오인식으로 인한 경고를 울리기도 했다. 다른 차들의 ADAS에 비해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뗄 수 있는 시간도 매우 짧다.
▲짚의 새로운 10년
그랜드 체로키 L은 차를 이루는 모든 요소를 통해 브랜드의 방향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고급스러움, 세련미, 연결성, 개인화 등 짚으로서 새 차를 보면 낯선 부분이 많다. 하지만 경쟁차들과 놓고 본다면 신선함은 그리 강렬하지 않다. 대형 SUV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여러 제품들의 상품성도 상향 표준화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랜드 체로키 L은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제 색깔을 조금 지운 느낌이다.
그랜드 체로키 L의 가격은 오버랜드 7,980만원, 서밋 리저브 8,980만원.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