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강하고 아름다운 GT카, 페라리 로마

입력 2021년12월26일 00시00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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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담 없이 다루는 데일리 페라리
 -강력한 성능과 주행 감각은 그대로

 페라리는 차명으로 지명을 자주 사용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정신적 고향인 "모데나"를 비롯해 생산 거점인 "마라넬로", 항구도시 "포르토피노", 심지어 "이탈리아"라는 국가 이름까지 차명으로 쓸 정도다. 각각의 제품은 지명과 어울리는 분위기를 풍기며 상징적인 요소로 페라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최근에는 방향을 살짝 바꿔 F8 트리뷰토, 812 GTS, SF90 스트라달레 등 고유의 네이밍 정립에 조금 더 집중하는 모양새지만 도시 이름을 차명으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출시한 입문형 페라리, "로마"가 대표적이다.

 로마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제품의 모양과 기술적 변화보다 이름에 먼저 시선이 쏠렸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도시 이름을 왜 차에 사용 했는지 무척 궁금했다.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시승차를 받아 테스트에 나섰고 이보다 완벽한 차명은 없을 정도로 깊은 감동을 안겨줬다.

 디자인&스타일
 로마의 겉모습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페라리의 편견을 잊게 만든다. 즉 낮은 차체와 공격적인 형상, 과격한 인상을 지닌 슈퍼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로마는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을 지닌 GT카의 성격이 강하다. 헤드램프는 가로로 날렵하게 눈꼬리를 찢어 존재감을 나타낸다. 이와 함께 프론트 미드십 타입에 걸맞은 긴 보닛이 눈에 들어온다. 

 굵은 캐릭터 라인과 한껏 부풀린 형상이 차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릴은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 있으며 차체 컬러와 맞춘 사각 패턴이 사뭇 새롭다. 1950년대 페라리 250 GT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모난 곳 없이 완만하게 처리한 범퍼와도 잘 어울리며 전통과 현대를 적절히 조율한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옆은 볼수록 매혹적이다. 풍만한 펜더와 매끄러운 도어, 완만하게 내려앉은 지붕선이 조화를 이뤄 품격을 나타낸다. 큼직한 공기 구멍이나 굵은 캐릭터 라인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을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살이 얇은 20인치 블랙 휠과 노란색 브레이크 캘리퍼, 대형 디스크는 순백색 차체와 어우러져 멋을 더한다. 공기 역학을 고려한 히든 타입 도어와 훈장과도 같은 배지, 작은 방향지시등도 적절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낸다.

 뒤는 반전 매력을 뽐낸다. 페라리 라인업에서 볼 수 없던 테일램프만 봐도 알 수 있다. 빛은 원형이 아닌 가로 형태로 얇게 들어오며 트렁크 끝 단에 위치해 독특한 인상을 자아낸다. 절개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C필러와 둥근 유리창, 일체형 스포일러 등 시선을 훔치는 요소도 가득하다. 무엇보다 통 카본으로 감싼 범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굵은 4개의 배기구와 날카로운 디퓨저는 차의 변함없는 가치와 성격까지 짐작할 수 있다.

 실내는 듀얼-콕핏 구조가 기본이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대칭 형식으로 철저히 분리시켰다. 여기에 높은 센터페시아 디자인으로 앉았을 때 안락한 느낌마저 든다. 디지털 요소도 대거 들어갔다. 10인치가 넘는 커브드 계기판은 각종 정보를 또렷하게 전달한다. 아날로그 바늘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며 각종 기능은 화려한 그래픽으로 구현된다. 심지어 애플 카플레이도 계기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세로 형태 센터페시아 모니터도 마찬가지다. 물리적 버튼은 변속레버가 전부이며 나머지는 전부 터치로만 조작할 수 있다. 심지어 조수석 대시보드 앞에도 가로로 긴 화면을 탑재해 지루함을 덜었다. 운전석 계기판 못지 않게 다양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스티어링 휠의 구성은 전통적인 페라리와 맥을 같이한다. 

 크고 긴 패들시프트와 방향지시등은 물론 램프 및 와이퍼, 주행모드를 조정할 수 있는 마네티노 스위치도 익숙한 위치에 붙어있다. 한 가지 특징은 시동 버튼이 터치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왼쪽 사이드미러 조절 버튼도 터치로 이뤄진다. 변하는 시대에 합승하기 위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소재는 훌륭하다. 질 좋은 가죽을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에 덮었고 탄소섬유 패널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천장에는 알칸타라로 도배를 했다. 패널이 맞물리는 부분에는 금속 소재를 사용해 화려함을 나타냈고 직접 수 놓은 자수와 스티치는 정교함의 끝을 보여준다. 하염없이 보고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우수한 퀄리티를 가졌다.

 GT카 성격에 맞춰 실용적인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센터터널 아래에는 휴대폰 무선충전 패드가 있다. 뿐만 아니라 깊은 컵홀더와 제법 크기가 큰 센터콘솔, 글러브박스도 장거리 투어러에 적합한 모습이다. 2+2 시트 구조답게 2열도 있지만 공간이 좁아 단거리 이동에 적합하다. 시트를 폴딩해서 트렁크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 편이 더 좋겠다.

 성능
 파워트레인은 4년 연속 올해의 엔진상을 수상한 V형 8기통 3.9ℓ 터보 엔진과 8단 듀얼클러치 조합이다. 최고 620마력, 최대 77.5㎏·m를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 데 3.4초, 200㎞/h까지 9.3초면 충분하다. 안전 제한을 건 최고시속은 310㎞다. 

 시동을 켜면 우렁찬 소리를 내지르며 출발 준비를 마친다. 하지만 이후 단수를 바꿔 차분히 속도를 올리는데 생각보다 얌전했다. 엔진은 제법 칼칼한 소리를 냈지만 이를 제외하면 주변 차들과 잘 어울려 여유롭게 달린다. 컴포트 모드에서는 묵직한 가속 페달 덕분에 신경질적으로 튀어나가는 느낌도 덜하다. 스로틀을 적게 열고 정속주행을 하면 일반 세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행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고속 구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웅웅"거리는 배기음이 귓가를 간지럽히는 상황에서 만족도는 상당했다. 특히 노면을 의연하게 걸러내는 서스펜션은 거친 반응이 거의 없으며 하체 세팅도 부드럽다고 생각할 정도로 차분하다. 다른 라인업과 다르게 시야도 넓고 시트포지션도 높다. 여기에 크고 여유로운 가죽 시트까지 더해져 편안한 주행을 가능케 한다. 

 차의 본성을 깨우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마네티노 스위치를 한 단계 올려 스포츠 모드에 두면 된다. 한층 높아진 사운드를 비롯해 엔진도 적극적인 반응한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시원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는데 강한 사운드와 함께 속도는 비현실적으로 올라가고 주변 사물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몰입감은 역대급이다. 게임 속 부스트를 사용하는 것처럼 빨려 들어가는 환상마저 든다. 이성의 끈을 잡기 위해 엄청난 집중을 해야 할 정도다. 나긋했던 컴포트 모드에서 로마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진정한 페라리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극과 극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일등 공신은 변속기다. 페라리 로마에 장착된 신형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이전 7단 변속기 대비 크기도 작아지고 무게도 6 가벼워졌다. 연비와 배기가스 배출이 감소한 것 뿐 아니라 더 빠르고 부드러운 변속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도로에서는 빠르게 반응하고 특히 도심 주행이나 출발 및 정지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기어에 맞춰 토크 전달을 유연하게 하는 페라리의 컨트롤 소프트웨어인 가변 부스트 매니지먼트도 새롭게 들어갔다. 조금의 끊김이나 지연 현상 없이도 매우 민첩하게 단수를 오르내린다. 참고로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오일 배스 형식이며 클러치 모듈의 경우 이전 7단 변속기에 적용됐던 것과 비교해 크기는 20% 축소됐고 토크는 35% 증가했다. 더 강력해진 ECU와 엔진 관리 소프트웨어의 향상된 조합으로 빠르고 부드러우면서 일관성 있는 변속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운전모드, 패들시프트 사용 여부에 따라서 성격은 럭셔리 GT카가 되기도 하고 하드코어 슈퍼카가 되기도 한다. 정속주행을 이어나갈 때는 8단 1,500rpm 부근에서 숨을 고른다. 

 효율은 저절로 높아지며 기름을 가득 넣은 상태에서 주행 가능거리는 660㎞를 훌쩍 넘긴다. 대배기량 중형 세단급의 효율을 고성능 스포츠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매뉴얼 모드에서 역동적인 주행을 이어나갈 때는 7,000rpm 부근에서 좀처럼 바늘이 떨어질 생각을 안하며 엔진이 가진 능력을 200% 끌어올린다. 

 신의 한 수인 변속기 외에 속도를 올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안정성도 크게 개선됐다. 에어로다이내믹에 각별히 신경 쓴 결과인데 실제 페라리는 로마를 만들면서 아름다운 디자인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공기 역학에 집중했다고 밝힌 바 있다. 

 페라리 공기역학 부서와 스타일링 센터는 긴밀한 협업을 통해 스포츠 모델의 다운포스를 가능하게 하는 첨단 기술과 디자인 콘셉트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주행 속도 및 가속도에 따라 활성화되는 가변형 리어 스포일러 적용은 차의 뛰어난 성능 구현에 필요한 다운포스를 보장한다. 다양한 공기역학 시스템은 시속 250㎞에서 포르토피노 대비 95㎏ 증가한 다운포스를 생성한다. 

 소리는 변함없이 매혹적이다. 주행영역과 상관없이 어느 위치에서든 독특한 음을 전한다. 저속에서는 "둥둥" 거리는 공명음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후 고속으로 갈수록 포효하는 소리가 서킷을 가득 울리며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또 최적의 그립력을 발휘하는 타이어와 바닥을 무자비하게 찍어내려 차를 세우는 브레이크 시스템도 깊은 감동을 준다.

 레이스 모드에서는 서스펜션 감쇠력과 댐핑의 반응이 극명하게 달라진다. 꼬리뼈 끝으로 도로 위 굴곡을 온전히 전달하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전달한다. 예민한 스티어링 휠 반응과 날카로운 핸들링이 어우러져 고속에서도 정확한 코너링을 구현한다. 조금 더 적극적인 운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지만 겨울철 일반 도로에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름답게 레이스 트랙에서 사용하는 걸 추천한다.  

 총평
 시승을 마치고 난 뒤 페라리가 차명으로 "로마"를 선택한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옛 로마 제국의 웅장하되 역동적인 도시의 피가 흐르고 때로는 낭만과 우아함도 갖고 있다. 또 감성을 충족시키고 유행을 선도하는 로망도 로마라는 도시와 닮았다. 모든 게 어우러져 팔색조 매력을 뽐내는 게 페라리 로마다. 

 부담 없고 쉬운 운전은 데일리 페라리로 손색없으며 풍부한 성능을 바탕으로 장거리 투어러에 적합한 GT카의 역할도 수행한다. 또 하드코어한 자세로 서킷을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페라리 고유의 피도 언제나 끓고 있다. 태생은 새 페라리 팬을 흡수할 입문형 라인업에 속하지만 역할은 그 어느 페라리보다 다방면이고 뛰어나다. 

 그만큼 브랜드의 희망찬 미래와 도약의 의지가 로마를 통해 투영된다. 지금 계약하면 2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높은 소비자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로마는 페라리 부흥기를 이끌 주자로 분명하다. 가격은 3억원 초반부터 시작한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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