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자동차산업은 빠르게 바뀌는 흐름 속에서 미래를 도약하는 밑거름의 해였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며 친환경 경쟁은 치열해졌고 애플카, 전동킥보드 등 새로운 모빌리티의 등장도 활발했다. 반면 추락하는 디젤에 요소수 부족은 부채질을 했고 반도체는 공급의 발목을 잡았다. 이와 함께 쌍용차는 새로운 주인 찾기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안전속도 5030 시행으로 교통 흐름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반면 소비자에게 즐거운 소식도 있었다. 19년 만에 현대차가 경차를 선보였고 신차 주기가 상대적으로 긴 상용차도 올해 대거 쏟아져 모처럼 활기를 나타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로 취소됐던 서울모빌리티쇼가 다시 부활해 볼 거리를 제공했다.
①애플이 자동차를 만든다고?
미국 가전회사 애플이 자동차를 만든다는 소식에 연초부터 업계가 들썩였다. 특히 국내 현대차그룹과 손잡고 개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관련 주식이 급등하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현대차가 애플과 협업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발표하며 막을 내렸다.
사실 애플의 자동차 사업 진출은 오래 전부터 예고됐다. 테슬라의 급성장을 바라보면서 아이폰을 비롯한 일부 가전만으로는 지속 성장 동력이 약하다고 판단한 탓이다. 즉 미래 먹거리를 자율 주행 및 친환경차로 보고 후발주자를 자처했다. 이를 위해 기존 자동차회사와 협력을 원했지만 줄줄이 퇴짜를 놓았다. 닛산이 먼저 협상을 벌였지만 별 진전을 보이지 못했고 폭스바게그룹 또한 "애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협력 제안을 거절했다. 애플카의 협력 대상 제조사로 유력했던 현대차그룹 역시 "다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 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나 초기 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며 "애플과 자율주행차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공시했다.
거절 배경엔 애플의 협업 방식이 꼽힌다. 애플이 개발 및 판매 전반에 이르는 과정을 주도하는 반면 완성차 업체엔 사실상 제조 하청 역할만 제안했기 때문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시너지 효과는커녕 하도급업체 이미지가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 사안이어서 굳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또 이미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한 만큼 애플과의 기술 제휴가 의미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막연한 기대 심리보다 냉철하게 시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럼에도 애플의 자동차 개발 작전인 "타이탄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는 중이다.
②본격 경쟁의 서막 알린 전기차 시대
2021년은 BEV의 변곡점으로 불러야 될 만큼 전기차 보급이 활발했다. 세그먼트 불문하고 다양한 전기차가 대거 등장한 것. 국산차의 경우 현대 아이오닉 5가 포문을 열었다. 테슬라의 직접적인 대항마라는 평가와 함께 넓은 공간 활용과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실제 반응도 뜨거웠다. 사전 계약 하루 만에 2만3,760대를 기록하며 신기록을 세웠다.
뒤이어 기아에서는 EV6가 등장했다. 아이오닉5와 같은 E-GMP 플랫폼을 사용하지만 보다 역동적인 주행 감각과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차별화 했다. 이 외에 하반기에는 제네시스 GV60, G80과 GV70의 전기차 버전이 등장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입 전기차도 예외는 아니다. 먼저 벤츠가 내 놓은 입문형 전기차 EQA가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구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브랜드 가치와 함께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SUV라는 점, 그리고 장거리 주행 능력과 가격이 소비자 시선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사전 계약만 수 천대를 달성하며 전기차 예비 오너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4분기에는 영원한 라이벌 BMW가 반격에 나섰다. 플래그십 전기 SUV iX와 전기 스포츠 세단 i4, X3 기반의 중형 전기 SUV iX3를 동시에 선보였다. 아우디는 e-트론 라인업을 넓혔고 포르쉐는 타이칸의 본격적인 판매와 아웃도어에 적합한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를 출시하는 등 시장을 넓혔다.
③전동킥보드 관련 법 난립
빠르게 확장 중인 전동킥보드 시장과 이에 따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올해는 다양한 전동킥보드 관련 법이 등장했다. 하지만 실효성에선 의문이 따른다.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이 비슷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고 실제 단속과 처벌 방법에 대한 지침이 없어 혼란이 예상되는 법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개인형 이동 수단 또한 유상 운송 수단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운전을 직접 한다는 점에서 렌터카와 같은 대여사업이지만 대부분 단거리를 이동한다는 점에선 도심의 교통 분산 역할로 봐야 하는 게 맞다는 것. 따라서 도시별로 자격을 갖춘 사업자를 선정,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할 수 있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여기에 전동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 수단의 난립은 오히려 도시 교통의 흐름을 복잡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허가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용자를 위한 해당 업체들과 관련 관계부처 사이의 보다 현실적인 대안 및 규제가 필요하다.
④떠오르는 격전지, 상용차 신차 대거 등장
올해는 대중 승용뿐 아니라 대형 상용차 시장에서도 경쟁이 치열했다. 먼저 올 봄에는 만트럭버스코리아가 "뉴 만(MAN) TG" 시리즈 3종을 출시했다. 새 차는 20년 만에 풀체인지 된 핵심 제품군이며 총 16개 트림을 동시에 선보여 공격적인 판매 의지를 드러냈다. 구체적으로는 대형 트랙터인 TGX 6개, 중대형 트럭인 TGM 6개, 중소형 트럭인 TGL 4개로 나뉘며 한국 소비자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이어 이베코코리아가 대형 상용차 라인업 정비 후 처음으로 플래그십 "이베코 에스-웨이"를 선보였다. 새 차는 3년간 10만 시간의 디지털 시뮬레이션과 400만㎞에 달하는 실주행 테스트를 거쳐 성능과 경제성, 내구성 등 모든 면에서 완성도를 높인 트랙터 제품이다. 공기역학 성능을 고려해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과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실내, 다양한 첨단 운전자 안전지원 시스템을 탑재해 상품성을 높였다. 출력에 따라 선택지를 늘리고 각 제품별 효율도 크게 개선해 주목을 받았다.
볼보트럭코리아는 8년 만에 선보이는 신형 FH16, FH, FM, FMX를 출시했다. 약 1조3,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개발했으며 볼보의 핵심 가치인 안전과 환경, 운전자 편의성에 초점을 맞췄다. 구체적으로는 운전자 편의성 측면에서 넓어진 전면 유리를 통해 가시성을 약 10% 높였다. 여기에 디지털 계기판과 측면 디스플레이, 볼보 커넥트도 준비했다. 기존 FH캡에만 적용되던 가죽시트를 전 차종에 적용했으며 캡 실내 공간은 더 넓어지고 조작 편의성을 개선했다.
다임러트럭코리아는 2016년 메르세데스-벤츠 아록스 카고를 출시한 이후 5년 만에 뉴 아록스 카고 3종을 국내에 등장시켰다. 새 차는 5세대 트랙터 뉴 악트로스와 뉴 아록스 덤프에 이어 대형 트럭 라인업의 세대 교체를 완성했으며 업계 최초로 모든 대형 트럭 라인업에 미러캠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다양한 첨단 안전 시스템은 이전 대비 안전성을 크게 강화했고 경사로 밀림 방지, 오토 홀드 등 도심 운전에서도 피로와 스트레스를 줄여 주는 기능도 대거 들어갔다.
⑤디젤 지고 하이브리드 뜨고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디젤차 판매대수가 하이브리드보다 적은 것도 화제였다. 전기차 등 전체 친환경차 판매와 비교하면 디젤차 실적은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및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내수시장서 판매된 완성차는 총 12만5,296대였다. 이중 디젤차는 2만307대, 하이브리드는 2만413대,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 등 전체 친환경차는 3만4,220대였다. 배출가스 규제 강화, 완성차 회사들의 소극적인 디젤 신차 출시 등이 맞물리며 디젤차 하락이 가속화 됐다.
반면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 비중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7%P와 3.1%P 씩 증가해 긍정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전기차와 수소차 판매 비중도 지난해 2.9% 수준과 비교하면 올해 6.8%까지 치솟았다. 일부 유럽 및 중국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판매비중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이 디젤 신차 출시를 꺼리고 있는 반면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 친환경차는 신차 라인업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소비자 선택지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점점 강화되는 배출가스 규제와 대기오염 문제에 민감한 소비자 흐름을 볼 때 디젤의 판매 및 점유율은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⑥과속은 절대 금물! 안전속도 5030 시행
제한속도를 낮춰 교통 사고를 줄이자는 취지를 담은 "안전속도 5030" 정책이 관련 법 시행 후 2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지난 4월17일부로 전면 시행됐다. 안전속도 5030은 시속 60㎞였던 도심 간선도로의 제한속도를 50㎞로 낮추고 주택가 이면도로 등은 시속 30㎞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제도 적응에 여전히 애를 먹고 있지만 실제 교통사고 감소율이 나타나면서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시행 100일간의 성과를 국토부 차원에서 발표했다. 안전속도 5030 적용 대상 지역 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20년 317명에서 277명으로 12.6% 감소했다. 또 보행자 사망자 역시 2020년 167명에서 2021년 139명으로 16.7% 줄었다. 이는 안전속도 5030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의 사망사고 감소폭 보다 2.7배 큰 수치다.
제한속도를 낮추는 게 사고 발생 시 충돌속도 저하로 이어져 보행자 교통안전 확보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이다. 갑자기 속도를 낮춰야 되는 상황이 오면 당황스럽다는 것. 왕복 8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30㎞로 줄여야 하는 곳도 있는 등 볼평도 나오고 있다. 보다 체계적인 관리와 주변 상황을 고려해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⑦쌍용차 새 주인 찾기 난항
쌍용차가 또 다시 새 주인 찾기에 나섰다. 인수자는 국내 전기버스 제조업체 에디슨모터스다. 당찬 포부와 미래 제품 계획까지 발표했지만 막대한 자금 수급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 실제 쌍용차 인수를 위해 당장의 급한 필요 자금은 5,000억원 수준이다. 이에 지난 3월 에디슨모터스와 한국전기차협동조합 회원사들이 620억원, 평택시가 400억원, 그 밖에 980억원을 산업은행 등을 통해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외에 자기자본이 아닌 나머지 3,000억원은 증권사 등 재무적 투자자를 모집해 충당한다는 계획도 포함시켰다. 물론 이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져야 원활한 인수 및 운영이 가능하다. 그 사이 쌍용차는 19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금액은 1조원이 넘는다. 자본잠식률 역시 100%를 훌쩍 넘긴 상황. 매번 위기의 순간에서 도움을 준 산업은행 역시 이번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크다. 경영 정상화를 위한 쌍용차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⑧생산 올 스톱, 원자재 대란
하반기 자동차 업계의 그늘을 지게 한 사건이 있다. 바로 원자재 대란이다. 먼저 반도체 수급 지연 현상이 벌어졌다. 전동화 파워트레인이 주를 이루면서 디지털 요소 강화와 전장품 증가로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상황이지만 공급사는 한정적이어서 결국 신차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수 개월에서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차가 속출했고 생산을 못하니 판매는 물론 수익성도 크게 떨어졌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요소수도 문제였다. 중국이 핵심 원료인 요소의 수출을 막으면서 생산을 못해 부족 사태가 온 것. 특히 요소수를 넣어야 움직일 수 있는 디젤차, 트럭 등의 운행 차질에 따라 물류 대란이 점쳐지기도 했다. 다행히 중국의 수출 재개로 숨통이 트였지만 특정 국가에 대한 원료 공급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했다.
국제적으로는 자동차 뼈대에 들어가는 주요 소재인 마그네슘 부족도 고민이다. 하반기에 발생한 현상이어서 내년 신차 개발과 생산까지 먹구름이 낀 상황이다. 원자재 비축 및 자급자족으이 필요하지만 기반 시설을 국내로 돌리기에는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다각적인 외교 채널을 통해 공급망을 넓히는 위기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⑨19년만에 등장한 현대차 경차
광주형 일자리의 첫 결과물이자 19년만에 등장한 현대차 경차 캐스퍼가 올해 자동차 산업 이슈에 이름을 올렸다. 캐스퍼는 세그먼트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활용과 크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트렌드를 반영한 상품 구성이 어우러져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지갑을 열기에 충분했다. 사전 계약 첫날에만 1만8,940대를 기록해 연간 생산 목표를 넘어섰다.
인기 이유로는 독특한 외모가 한 몫 했다. 경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규격을 충족하면서도 지상고를 높이는 등 큰 차 이미지를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현대차도 캐스퍼를 "엔트리 SUV"로 명명하며 처음 선보이는 새로운 차급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차박, 차크닉 등 실내에서 머무는 일이 많아짐에 따라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모습과 각종 취미 액세서리를 마련해 주력 구매층인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온라인 구매 방식을 선택한 점도 호평을 얻었다. 나아가 비록 경차라도 자동차 구매능력이 상향 평준화된 추세에서 상품성만 좋다면 가격이 비싸도 구매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⑩새 이름으로 돌아온 서울모빌리티쇼
코로나19로 한동안 열리지 못했던 서울모터쇼가 2년 만에 부활했다. 더욱이 올해는 서울모빌리티쇼로 이름을 바꾸며 대대적인 변화와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 현대차 부스 중앙에는 자동차가 아닌 로봇이 전시돼 있었고 차 옆에는 모델 대신 로봇이 큐레이터로 있기도 했다.
또 드론을 비롯해 전기 화물차, 친환경 수소버스 등 다양한 모빌리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외에 다양한 신차들이 아시아 또는 코리아 프리미어로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반면 참가 업체 수 급감으로 반쪽 행사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고 코로나 판데믹 상황을 고려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볼거리 풍부한 자동차 축제가 되기를 바라는 모두의 마음처럼 내년에는 더 나은 환경에서 다양한 차와 기술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