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선택지 넓히는 고성능 왜건
-강력한 성능 갖춘 올 라운드 플레이어
순수 전기차(BEV)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충전 인프라와 보조금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친환경차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발맞춰 완성차 회사들도 속속 다양한 형태의 BEV를 국내 선보이고 있다. 효율에 집중한 소형차를 넘어 중형 세단과 SUV 등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포르쉐는 독보적인 위치에서 남다른 BEV 선택지를 제공해 주목을 끈다.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을 바탕으로 크기를 키운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가 주인공이다. 왜건 형태의 새 차는 합리적인 공간 활용성을 제공하며 아웃도어 라이프에 적합한 다목적성을 띄고 있다. 여기에 4, 4S, 터보 등 다양한 성능으로 세분화 돼 BEV 시장을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앞은 기존 타이칸과 큰 차이가 없다. 동글동글하면서도 볼륨감을 살린 모습과 직사각형 모양의 헤드램프, 양 끝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에어 덕트도 그대로다. 반대로 옆은 사뭇 새로운 느낌이다. 플라스틱 몰딩으로 감싼 휠하우스 커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험로 주행을 고려해 내구성을 강조한 모습이다. 여기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전용 휠과 PSCB 브레이크 시스템, 하얀색 캘리퍼가 시선을 끈다.
전체적인 높이도 껑충 올라갔다. 실제 크로스 투리스모는 일반 타이칸과 비교해 20㎜ 높아졌으며 모두 사륜구동 및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한 하이테크 섀시를 기본으로 탑재한다. 선택으로 제공되는 오프로드 디자인 패키지는 지상고를 최대 30㎜ 높여 까다로운 지형에서도 주행이 가능하다.
높게 솟아 오른 C필러와 수직으로 내려오는 지붕선을 보며 단번에 왜건임을 알게 한다. 뒤는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며 신선한 모습으로 가득하다. 듬직하면서도 다재다능한 매력을 기대하게 된다.
가로로 긴 테일램프와 타이칸 터보 필기체 레터링 등 기존 포르쉐 패밀리-룩은 빠짐없이 넣었다. 반면 범퍼는 험로 주행을 고려해 은색 가드를 바닥까지 깊게 둘렀고 옆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몰딩을 둘러 통일감을 줬다.
실내는 일반 타이칸 시리즈와 동일하다.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구성들로 가득하며 미래지향적인 터치로 탑승자를 반긴다. 특히 곡면으로 구성된 계기판이 무척 인상적이다. 깔끔한 그래픽으로 각종 정보를 간략하게 전달한다.
수평형 대시보드를 비롯해 와이드 모니터, 중앙에 위치한 크로노그래프는 여느 포르쉐와 같지만 센터 터널은 살짝 다르다. 공조 장치를 포함해 실내 기능을 다룰 수 있는 버튼은 전부 터치 패널로 만들었고 아래에는 깊은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변속 레버는 스티어링 휠 뒤쪽에 작게 마련했고 시동 버튼은 전통을 살려 왼쪽에 있지만 버튼 타입으로 바뀌었다. 소재 역시 혁신적인 재활용 재료로 실내를 꾸며 브랜드의 지속 가능한 미래도 엿볼 수 있다. 고급스러운 감각을 높이고 싶다면 개별 선택으로 소재 및 컬러를 바꾸는 걸 추천한다.
2열은 기대 이상이다. 긴 휠베이스를 바탕으로 여유로운 레그룸을 제공하며 47㎜ 더 늘어난 헤드룸은 성인이 앉아도 충분하다. 두툼한 가죽을 여러 겹으로 붙여 입체적인 형상을 지닌 독립식 개별 시트는 착좌감이 좋아 스포츠 드라이빙에 도움을 줄 듯하다. 이 외에 중앙에 놓인 디스플레이를 통해 온도와 바람 세기, 방향 등을 바꿀 수 있다.
전기차 특성상 트렁크는 앞뒤로 사용 가능하다. 특히 뒤는 넓은 리어 테일게이트를 통해 1,200ℓ의 용량을 적재할 수 있다. 웬만한 SUV보다 뛰어난 공간을 갖춘 셈이다. 또 평탄화가 잘 구성돼 차박이나 차크닉도 문제없다. 거대한 글라스 루프에서 느끼는 개방감과 감성 품질은 덤이다.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에는 최대 93.4㎾h 용량의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가 기본 탑재된다. 380마력의 타이칸 4 크로스 투리스모는 런치 컨트롤과 함께 최고 476마력의 오버부스트 출력을 낼 수 있다.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시간은 5.1초이며 최고속도는 220㎞/h다. 490마력을 내는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는 오버부스트 사용 시 최고 571마력까지 올라간다. 정지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데 4.1초, 최고속도 240㎞/h다.
시승차인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는 최고 625마력을 발휘하며 680마력의 오버부스트 출력으로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데 3.3초, 최고속도 250㎞/h를 뿜어낸다. 강한 성능은 혁신적인 800V 아키텍처 전기 구동 시스템과 맞물리며 사륜 구동 및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 등이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새로운 하이테크 섀시로 온오프로드에서도 흔들림 없는 역동성을 보장한다.
엄청난 숫자를 알기 전에는 사실 일반적인 BEV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노멀 모드에서는 부드럽고 차분한 성격이 더 드러난다. 고요하면서도 미끄러지듯이 나가는 감각이 일품이다. 페달 반응도 생각보다 예민하지 않다. 제원표 속 숫자를 감안하면 부담이 덜하고 페달을 깊게 밟아도 당황스럽지 않다.
차의 본능을 깨우기 위해서는 고속 영역으로 한 걸음 들어가면 된다. 가속 페달 양에 맞춰 일반 내연기관 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순식간에 전달한다. 몸이 뒤로 쏠리고 엄청난 몰입감을 주면서 맹렬히 질주한다. 이질감을 줄이고 자연스러운 가속을 유도하면서도 계기판 속 숫자는 예상보다 훨씬 높은 곳에 찍혀 있다.
스포츠 모드는 차의 모든 성격이 배로 증폭된다. 민감한 반응과 움직임, 속도는 물론 운전자의 흥분까지 전부 곱절로 높아진다. 분명이 조용하게 달리고 있지만 주변 사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같이 달리던 도로 위 차들은 사이드미러 한참 뒤에 있다. 특별하면서도 특이한 감정이 피어 오르며 입가에는 미소를 짓는다.
이 차의 진가를 알기 위해 굽이 치는 산길로 향했다. 주행 모드는 스포츠 플러스로 바꾸고 운전 즐거움을 높이는 각 기능은 전부 활성화 시켰다. 소리부터 달라진다. 르망 레이스에서 활약한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의 사운드를 내 차에서 경험할 수 있다.
천둥이 치거나 팝콘이 튀기는 소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스포츠 주행 감성을 자극하기에는 차고 넘친다. 공상과학 영화 속 우주선에 타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경주차의 소리가 사뭇 새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움직임은 비현실적이면서 놀라움의 연속이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 전자식 댐퍼 컨트롤과 함께 3챔버 에어서스펜션, 토크벡터링 플러스 등이 합을 맞춘 결과다. 어떤 조건에서도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시켜 주고 운전에 자신감을 불어 넣는다. 긴 차체와 묵직한 배터리를 품고 있어도 911과 비슷한 움직임을 가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다.
무엇보다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은 최대 횡가속 상황에서도 바디의 롤을 0도에 가깝게 제어가 가능하다. 오버스티어와 언더스티어 밸런스를 미세하게 조정해 차의 균형 잡힌 움직임을 도와준다. 빠르게 앞머리를 틀고 코너 안쪽으로 깊게 진입한 뒤 재빠르게 탈출해도 불안한 감각은 어디에도 없다. 코너링에서 횡가속도를 증가시키고 저속에서는 회전반경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다.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는 단순히 배터리가 아래에 있어 무게중심을 낮추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완벽한 드라이빙 퍼포먼스를 주기 위해 노력한 포르쉐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정확히 몸을 틀고 언제든지 우수한 실력으로 코너를 정복해 나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운전자가 경험하는 피드백과 믿음, 감동은 저절로 따라온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산길 끝에 위치한 오프로드에 진입했다. 터치스크린 한 켠에 위치한 "자갈(Gravel) 모드"를 선택하니 차체가 살짝 올라가며 거친 도로에 적합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높아진 지상고를 바탕으로 차분하고 여유롭게 비포장길을 달렸다. 좁은 구간에서는 정확도가 높은 360도 카메라를 적극 활용했다.
환경을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고성능 포르쉐와 함께 첩첩산중으로 들어왔다. 2열을 폴딩해 반듯한 실내 공간에 누워 통 유리로 보는 하늘은 환상적이다. 가능한 일인가 싶으면서도 볼수록 기특한 차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국내에서 인증 받은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 터보의 주행가능거리는 274㎞다. 하지만 100% 충전한 뒤 정속 주행을 이어나가면 300㎞ 중후반까지도 거뜬히 찍혀있다. 실제 서울 도심을 빠져 나와 약 200㎞를 달렸지만 주행가능 거리는 여전히 100㎞ 이상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의 출력과 역동적인 반응을 감안하면 수긍할만한 좋은 수치다.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 터보는 BEV 중 가장 빠르고 다재다능하며 어디든 자신의 무대로 만들 줄 아는 차다. 온로드에서는 전기 에너지를 한 가득 땅에 쏟으며 차가 주는 이름의 의미를 되새긴다. 실린더가 압축과 팽창을 거듭해 터지면서 질주하는 감각과는 완전히 다르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빨리 결승선에 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스릴과 짜릿한 질주 본능은 어떤 차보다도 우위에 선다.
오프로드에서는 성격을 살짝 바꿔 자연과 함께 동화된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운전자가 원하는 곳까지 안전하고 정확한 이동을 보장한다. 취미와 여가 활동을 지원하고 BEV가 주는 가치를 되짚어보며 브랜드의 색다른 매력에 빠질 수 있다. 전동화로 물들일 포르쉐의 무한변신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가격은 타이칸 4, 4S,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의 순으로 부가세 포함 각 1억3,800만원, 1억5,450만원, 2억60만원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