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오프로드 장난감, 지프 글래디에이터

입력 2022년03월12일 00시00분 권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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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즐거운 조화
 - 때로는 불편함도 낭만  

 지프(Jeep) 글래디에이터는 역사가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71년 차명을 지프 픽업으로 붙이고 1988년까지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지프를 얘기할 때 랭글러 등의 4WD 승용만을 언급하지만 지프 픽업도 역사는 꽤 오래된 셈이다. 2004년 랭글러(JK) 기반의 픽업 글래디에이터 컨셉트가 소개됐고 양산으로 연결된 후 2020년 하반기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국내에서도 픽업트럭 시장의 확대와 다양한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솟구쳐 이뤄진 결정이다. 지프로선 미국에서 경쟁인 쉐보레 콜로라도의 인기를 염두에 둔 전략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포드 레인저까지 가세하며 미국산 중형 픽업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셋 가운데 글래디에이터의 느낌은 어떨까.

 ▲ 디자인
 전면을 보면 기존 랭글러와 유사하다. 트림마다 섬세함은 다를 수 있지만 루비콘 단일 트림만 보면 LED 주간주행등과 헤드램프, 안개등, 라디에이터 구성이 동일하다. 전면은 머드-터레인 타이어의 거친 면이 오프로더임을 강조한다. 또한 기존 엔진 후드와 1열, 2열 캐빈 공간도 랭글러 라인을 그대로 유지했다.  

 측면은 후드의 루비콘 라벨이 세부 트림을 알려준다. 전면부터 2열까지 랭글러 흐름을 이어 받았지만 2열 이후부터는 적재공간이 이어진다. 5,600㎜ 길이가 확연히 픽업이라는 것을 강조라도 하듯 길어 보인다. 타이어는 BF굿리치 머드-터레인이며 사이즈는 255/75/R17로 무난하다. 휠하우스 안쪽으로는 폭스(FOX)사 댐퍼가 오프로더들을 위해 자리를 잡고 있다. 타이어와 댐퍼가 오프로드에 최적화 됐다는 의미다.

 후면은 LED로 무장한 브레이크등과 방향지시등, 안개등이 지프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 참고로 글래디에이터의 모든 램프는 LED가 적극 활용됐다. 심지어 번호판 뿐 아니라 차폭등까지 일괄되게 LED로 처리됐다. 이외 붉은 색 견인 고리는 픽업트럭의 강인함을 한층 드러내며 적재 공간의 라이너는 스프레이-인-베드(spread in Bed) 타입이다. 스크래치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후처리가 들어간 점이 이채롭다. 여기에 라이너 램프와 230V 전원까지 사용할 수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모파(MOPAR) 순정 베드 커버가 장착된 것이다. 통상 악세서리로 구매하는 아이템인데 이번 글래디에이터에는 기본에 포함시켰다.  


 ▲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
 글래디에이터의 실내 구성은 랭글러와 동일하다. 루비콘 트림이 갖추어야 할 부분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운전석에 앉으면 아날로그 형태의 장비를 대신해 디지털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의 지프에서 변신한 지 오래지만 유독 이번 글래디에이터는 아날로그에 디지털 감성을 조화시킨 흔적이 역력하다. 계기반은 아날로그 방식과 7인치 디스플레이를 사용한 디지털 방식이 조화를 이루며 운전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실제 지프라면 운전석 도어에는 스위치가 없어야 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외부 미러 조절 스위치와 도어 잠금 스위치는 소비자와 최소한의 타협이다. 스티어링 휠에는 인포메이션 버튼과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버튼이 배치돼 사용이 편리하다. 

 1열 운전석과 동승석에 수납 공간은 많지 않다. 글로브 박스의 크기도 다른 차보다 작은 편이다. 이외 도어 트림의 수납공간은 그물망으로 구성된다. 센터페시아는 8.4인치 터치스크린에 유커넥트(Uconnect) 시스템이 장착됐고 하단으로 공조기 조절 패널과 윈도우 조절 버튼들이 배치됐다. 루비콘 트림이기에 락 트랙(Rock-Trac) 4X4 시스템이 적용돼 프론트/리어의 스웨이바 분리, 오프로드 플러스 모드와 4개의 옥스(Aux)가 제공된다.

 2열은 픽업임에도 공간에 다소 여유가 있다. 센터터널에 컵홀더와 충전 소켓 등이 있고 시트 아래 수납 공간에는 이동식 칸막이가 있어 공간 활용에 유리하다. 2열 시트 등받이 뒤 격벽에는 우퍼와 알파인(Apine)의 탈착식 블루투스 스피커가 제공된다. 이는 야외활동 시 다양한 음원을 즐길 수 있는 글래디에이터만의 여유다. 물론 알파인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은 기본이다. 이외 환기에도 적합한 뒷 유리창의 간이 창문은 아메리칸 지프 픽업의 작은 배려이다.

 ▲ 불편함을 즐거움으로 승화
 심장은 펜타스타 V6 3.6ℓ 가솔린 자연흡기다. 북미에서 가장 일반적이라 유지관리에 장점이 많은 엔진이다. 최고 284마력, 최대 36.0㎏·m의 토크는 일상에서 사용하기에 무난한 출력이다. 랭글러의 직렬 4기통 2.0ℓ 272마력 가솔린 터보엔진과 다른 자연흡기만의 매력이 있다. 일단 전고가 다소 높고 발 받침이 없어 운전석에 앉기까지 편하지는 않다. 또한 도어의 하네스(전원) 연결선이 왼쪽 다리에 걸리는 것은 적응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트 조절은 오래 유지해도 거의 고장이 없는 수동 조절식이다. 경차도 자동 조절 시트가 나오는 시대에 ‘수동’이 어색하겠지만 오프로더 성격이 강조됐다는 점에서 수동이 오히려 낭만(?)을 줄 수도 있다. 

 V6 자연흡기 엔진의 음색은 잔잔하다. 방음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성격임에도 실내가 제법 조용하다. 하지만 주행 때 BF굿리치 머드 타이어의 거친 회전소음은 제품의 성격을 유감 없이 입증한다. 울퉁불퉁함이 차체를 통해 몸으로 그대로 전달되며 핸들링은 유격이 다소 있는 지프 스타일 그대로다. 그래서 지프는 포장도로에서 시속 85~95㎞가 편안하다. 직선 도로에서 굳이 빠르게 달릴 이유가 없는 성격임을 충분히 감안해야 하는 차다. 효율은 ℓ당 5.5~10㎞를 나타낸데 고속도로에서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하면 꽤 좋은 편이다.

 그러나 오프로드에 들어가면 진가는 빛을 발한다. 임도 길가의 나뭇가지는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그저 가고 싶은 곳에 어떤 성격이든 도로만 있으면 갈 수 있다. 여기서 관심을 끌어당긴 항목은 폭스 댐퍼다. 온로드를 달릴 때 승차감을 포기해야 할 정도가 아닐까로 짐작했지만 노면 충격흡수의 단단함과 도로 주행의 부드러움이 잘 조화돼 있다. 오프로드에서도 충격 흡수의 단단함은 트림이 루비콘이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하드코어 오프로드를 즐기는 운전자에게는 기본기가 충분한 제품이다. 너무 극과 극을 달리기에 오히려 불편할 수 있지만 이 불편함이 누구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총평
 최근 많은 SUV가 국내에 판매되고 있다. 제조사 개발 컨셉에 따라 형태와 상품성도 다양하다. 이런 관점에서 지프 글래디에이터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재해석을 통해 상품성이 융합됐다. 비록 국내 판매 대수가 많지 않지만 글래디에이터를 기다렸던 소비자들은 망설임 없이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북미에서 가격이 6만3,000달러 정도 되는 것을 7,000만원의 국내 판매 가격은 경쟁력이 있는 수준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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