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 높은 파워트레인 세팅 인상적
-강화된 디지털 요소 및 고급 감성 특징
자동차 업계에서 전동화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필수 요소가 됐다.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HEV와 PHEV 라인업을 빠르게 추가하고 100% 전기에너지로 움직이는 BEV는 미래 주력 먹거리로 부상 중이다. 이 외에 기존 내연기관을 활용한 방법으로는 48V 마일브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맞물려 효율과 환경에 도움을 주고 있다.
마세라티는 후자에 집중하며 전동화 시작을 알렸다. 브랜드 헤리티지인 스포츠 DNA를 바탕으로 전기에너지 역할을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이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변화의 첫 걸음으로 기블리 하이브리드가 등장했다. 마세라티 최초의 전동화 제품이 보여줄 기대와 가치를 확인해보기 위해 직접 시승에 나섰다.
▲성능
먼저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역할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이브리드처럼 전기 모터와 내연기관 두 가지 동력원을 함께 사용하지만 전기모터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하이브리드는 출발하거나 저속 주행시에 모터가 엔진을 대신하는 반면 모터가 엔진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문다.
장점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기본적인 설계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도 효율을 개선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이브리드보다 부품 수가 적고 구조가 간단해 다양한 차종에 탑재할 수 있으며 비용도 적게 든다. 한마디로 본격적인 BEV 전환에 앞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가성비가 좋은 전동화 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블리 하이브리드에는 4기통 2.0ℓ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과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조합으로 최고 330마력, 최대 45.9㎏·m를 발휘한다. 최고속도는 255㎞/h이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약 5.7초가 소요된다. 기존 기블리 V6 가솔린 및 디젤과 비교해도 동일한 수준의 성능을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그 결과 훌륭한 가속과 매끄러운 주행 감각을 제공한다. 막연히 하이브리드라는 단어만 보고 소극적인 움직임이나 차분한 가속을 생각했다는 큰 착각이다. 스로틀을 여는 순간부터 망설임 없이 출력이 뿜어져 나오고 쉽게 목표 영역에 도달한다. 마세라티 특유의 강한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입가에 퍼지는 미소와 감탄사는 덤이다.
48V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크게 BSG, 48V 배터리, e부스터, DC/DC 컨버터 등 총 4개의 주요 구성품이 있다. 그 중에서도 마세라티는 BSG와 e부스터에 많은 공을 들였다. 먼저 BSG (벨트 스타터 제너레이터)는 제동과 감속 시 에너지를 회수하는 역할이다. 이와 함께 엔진의 e부스터의 전원 공급용 배터리를 충전하는 역할을 한다. e부스터는 일반 터보차저를 도와주며 낮은 엔진회전(rpm)에서도 엔진 출력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둘의 조합으로 스포츠 모드에서 엔진이 최고 RPM에 도달했을 때 추가적인 부스트를 제공하며 강한 힘을 낸다. 반대로 노멀 모드에서는 연료 소모와 성능의 균형을 맞추며 안정적인 주행 경험을 제공한다. 여기에 각 에너지 흐름은 계기판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운전자가 기블리 하이브리드의 최신 전동화 기술을 운전 중 느끼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자연스러운 전개 과정이다. 정지 상태까지 속도를 줄이고 난 뒤 다시 출발하는 과정에서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일반 내연기관 차를 모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할 뿐이다. 가장 많은 연료가 소모되는 구간에서 전기 배터리가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고 차가 탄력을 받은 뒤에는 마세라티 특유의 스포츠 드라이빙으로 또 한번 만족을 준다.
이 외에 새 전동화 시스템은 기대 이상의 장점도 안겨다 줬다. 바로 차의 무게 배분이다. 6기통 엔진을 장착한 차와 다르게 이상적인 5:5 수준의 앞뒤 배분을 실현 한 것. 배기량을 줄여 앞쪽에 가해지는 부담을 낮췄고 48V 배터리를 뒤에 장착해 실현했다. 균형감이 좋아지니 이전보다 더욱 민첩하고 즐거움이 배가된 드라이빙이 가능해졌다.
마세라티 특유의 사운드는 여전하다. 구간을 나눠 새로운 음색을 들려주고 6000rpm이 넘어가면 천둥소리와 함께 주변을 압도한다. 클라이맥스로 다가가면 소리를 길게 끌다가 "뻥" 하고 터진다. 이후 단수를 한 단계 올리고 힘차게 나갈 재도약을 마련한다. 변속 과정에서 들리는 소리의 향연은 아름답고 중독성 강하다. 길고 두툼한 패들시프트에 손이 가는 이유다.
▲디자인&상품성
외관은 신형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기블리와 큰 차이가 없다. 날렵한 헤드램프와 커다란 그릴, 세로형 크롬 바, 마세라티 엠블럼까지 전부 동일하다. 시승차는 그란 루소 트림으로 한결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범퍼 디자인이 특징이다. 옆은 조각품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섬세한 캐릭터라인과 적당한 거리의 휠베이스, 각진 유리창 디자인까지 조화가 상당하다. 프레임 리스 도어의 특징을 살린 매끈한 블랙 B필러도 포인트다.
뒤는 부메랑 모양의 LED 테일램프가 시선을 끈다. 신형의 가장 큰 특징으로 3200 GT와 알피에리 컨셉트카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 넣었다. 가장자리는 블랙, 중앙에는 레드, 하단 섹션은 투명하게 구성되며 세 가지 색상의 렌즈로 유닛이 구성됐다. 모터스포츠 역사와 함께해 온 마세라티 DNA가 인상적으로 반영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블리 하이브리드는 전동화 상징인 블루 컬러로 곳곳에 입혀 정체성을 표현했다. 옆에 나란히 위치한 마세라티의 시그니처 에어 벤트와 C 필러의 세타 로고에는 파란색 띠를 둘러 멋을 냈다. 이와 함께 브렘보 브레이크 캘리퍼 역시 블루 컬러를 선택으로 넣을 수 있다.
실내는 세련미와 고유의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비행기 조종석에서 영감을 받은 독창적인 대시보드 형상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대칭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투톤 가죽을 감싸 밋밋함을 피했다. 또 스포츠 스티어링 휠의 알루미늄 기어 시프트 패들과 이녹스 스포츠 페달 등에서 마세라티 특유의 디테일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MIA(마세라티 인텔리전트 어시스턴트)로 불리는 새 멀티미디어 시스템은 가장 마음에 든다. 사용자 취향에 따라 화면 조절이나 아이콘 배열 등의 개인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에 안드로이드 기반의 오토모티브 시스템을 운영해 반응과 연동성이 높아졌다. HD 스크린 역시 4:3 비율의 8.4인치에서 16:10의 비율인 10.1인치까지 확대됐고 가장자리 베젤을 최소화해 높은 시인성을 갖췄다.
센터 콘솔에는 직관적인 기어 시프트 레버와 드라이빙 모드 버튼이 정리돼 있다. 다만 크기가 다소 작고 오디오 볼륨 및 조그셔틀이 회전식으로 붙어 있어 세심한 조작이 필요하다. 이 외에 콘솔에는 두 개의 컵 홀더, 12V 파워 소켓, SD 카드 리더 연결 장치, 휴대전화 거치 공간, USB 소켓 등 다양한 포트가 포함돼 있다.
소재는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 와 협업했다. 카시트, 도어 패널, 루프 라이닝, 선바이저, 천장 조명 등에 그레인 레더와 100% 천연 섬유 멀버리 실크 인서트를 결합하고 있다. 우드로 마감한 가죽 스티어링 휠을 선보이고 있다. 또 그란루소 트림은 전동 조절이 가능한 풋 페달과 스티어링 휠, 뒷좌석의 전동 선블라인드, 소프트 도어 클로즈 시스템, 전자식 잠금이 가능한 글로브 박스 등도 포함하고 있다.
2열은 차의 크기를 감안하면 적당하다. 헤드룸이나 레그룸은 실제로 앉았을 때 좁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벨트라인이나 가운데 턱 등이 높아 개방감은 부족하다. 때문에 심미적으로 공간이 작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질 좋은 가죽 시트는 2열에서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다. 안락한 감각을 내세워 장시간 이동해도 불편함이 없을 듯하다. 편의품목은 전용 송풍구와 열선시트 등 필요한 기능만 알차게 넣은 모습이다.
▲총평
마세라티식 전동화의 첫 걸음은 성공적이다. 기블리는 브랜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시대 흐름에 적절히 맞춘 결과 성능과 효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스포츠 세단으로 거듭났다. 여기에 우아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개선이 필요했던 디지털 요소를 크게 강화해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 낸다. 해를 거듭할수록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는 마감과 조립 품질, 고급 감성은 더 이상 흠결이 없다. 기블리 하이브리드는 브랜드 전동화의 기분 좋은 출발을 알리면서 앞으로의 희망까지 엿볼 수 있는 차다. 가격은 1억1,450만원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