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앞장서는 마세라티 대표 SUV
-앙칼진 달리기 실력과 사운드 인상적
전동화 흐름에 맞춰 마세라티가 새 SUV를 선보였다. 지난해 서울모빌리티쇼를 통해 화려하게 등장한 르반떼 하이브리드가 주인공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모터, 배터리 조합으로 움직이는 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이브리드가 주는 인상이 강해 효율에만 집중하는 차가 아닐까 하는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모터스포츠 정신이 깊게 박혀있는 브랜드 입장에서는 편견을 지우고 새로운 경험을 안겨줘야 하는 숙제도 갖고 있다. 그만큼 마세라티는 르반떼 하이브리드에 전동화 철학과 브랜드 가치, 주행 완성도를 실현해 성능과 격조를 모두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들의 바람대로 새 차는 색다른 매력과 능력을 갖고 탑승자에게 만족을 이끌어낼 지 장거리 시승을 통해 직접 확인해봤다.
핵심은 단연 파워트레인이다. 르반떼 하이브리드는 4기통 2.0ℓ 바이터보 엔진과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조화를 이룬다. 최고 330마력, 최대 45.9㎏.m를 발휘하며 최고속도 245㎞/h, 0→100㎞/h 가속 시간 6초의 성능을 지원한다. 마세라티는 V6 엔진보다 연료 효율 개선과 성능이 높다고 밝혔다. 탄소 배출량은 WLTP 기준 가솔린보다 20%, 디젤보다 8% 낮아졌다.
다른 마세라티 차들에 비해 배기량이나 여러 수치가 작은 건 사실이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시동을 켜면 매콤한 사운드와 함께 등장을 알리고 스로틀을 열기가 무섭게 튀어나간다. 꽤 재미있고 즐거운 운전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시원스럽게 내달리고 조금의 망설임 없이 질주한다. 탄탄한 세팅이 빛을 내는 순간이다.
여기에는 8단 자동변속기의 역할이 컸다. 생각보다 변속 타이밍이 빠르고 절도 있게 단수를 오르내린다. 유럽차 중에서는 독일 다음으로 직결감이 좋을 정도다. 덕분에 스티어링 휠 뒤에 붙은 두툼한 통 알루미늄 패들시프트를 당기는 맛이 난다. 똑똑한 변속기는 엔진의 능력을 배로 끌어올려 주며 운전자에게 만족을 안겨준다.
매끄러운 회전질감과 함께 순간 가속에는 전기 에너지가 발군의 역할을 해낸다. 48V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BSG(벨트 스타터 제너레이터), 배터리, e부스터, 컨버터 등으로 구성했다. BSG는 제동이나 감속 시 에너지를 회수하고 엔진의 e부스터에 전원을 공급하는 배터리를 충전한다.
e부스터는 일반 터보차저 백업과 낮은 rpm에서도 엔진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배터리나 BSG를 통해 필요 시 언제나 e부스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궁극적으로 탄소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빠르고 즐거운 운전도 놓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외에 주행 완성에 도움을 주는 부분들은 평균 이상의 역할을 보여준다. 먼저 구동계는 전자식 제어 멀티 플레이트 클러치 기반의 마세라티 Q4 인텔리전트 AWD를 장착했다. 이 시스템은 평소 뒷바퀴에 100%의 토크를 전달하지만 노면이 미끄럽거나 구동력을 상실한 경우 앞바퀴에 필요한 구동력을 즉시 전달한다. 뒷바퀴 축엔 비대칭 구조의 차동제한장치를 탑재해 동력 가동 상태에서 락업 25%를, 동력 비가동 시에는 35%를 지원한다.
운전자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구동 배분을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지만 역동적인 주행이 필요한 순간에는 차의 움직임만으로 쉽게 파악 가능하다. 특히 코너를 탈출할 때 제법 인상적인 자세를 만들어낸다.
뒤를 흘리거나 버겁게 따라오는 기분을 느끼기 힘들고 앞머리 방향에 맞춰 깔끔한 결과를 보여준다. 시트포지션만 살짝 높을 뿐 이를 제외한 차의 거동은 다른 마세라티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크고 무거운 SUV의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부분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배기음이다. 물론 라이벌에는 없는 독특한 음색으로 탑승자를 유혹하지만 기존 마세라티 형제들과 비교하면 약하게 들린다. 레드존으로 향하는 순간에만 거칠고 강하게 실내에 울려 퍼지는데 일반적인 도로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다. 고속 주행을 하는 순간에 맞춰 일부러 사운드를 감상하는 것보다 저속에서도 특유의 공명음을 즐기는 쪽을 더 추천한다.
겉모습은 감각적인 캐릭터 라인과 균형감이 시선을 끈다. 길이 5,005㎜, 너비 1,970㎜, 높이 1,680㎜, 휠베이스 3,004㎜로 중형과 대형 사이 정도다. 독특한 비례감 덕분에 멀리서 보면 쿠페형 SUV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스포츠카처럼 매끈한 실루엣이 앞으로 길게 뻗어있어 역동적인 인상을 더한다. 실제 공기저항계수(Cd)가 0.31에 불과할 정도로 성능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다.
신형의 특징도 찾아볼 수 있는데 테일램프가 대표적이다. 회사는 모터스포츠와 컨셉트카에서 영감을 얻어 새롭게 표현했다고 밝혔다. 부메랑 모양의 LED 램프 디자인은 향후 패밀리-룩을 이룰 전망이다. 가장자리는 블랙, 중앙에는 레드, 하단 섹션은 투명하게 구성되며 세 가지 색상의 렌즈로 유닛이 구성됐다. 이 외에 듀얼 배기구와 필기체 레터링 등은 브랜드 정체성을 높이는 중요 요소다.
트림은 그란 루소를 바탕으로 한다. 앞 범퍼와 그릴은 기존 그란 루소와 마찬가지로 크롬 처리했으며 GT 배지는 사이드 에어 벤트 위에 위치한다. 또 사이드 에어 벤트, 브레이크 캘리퍼, C필러 로고 등 일부 디테일 요소는 하이브리드를 의미하는 코발트 블루로 마감했다.
실내는 스탠다드 레더 그레인과 블랙 피아노 트림으로 표현했는데 여전히 호화롭고 화려하다. 고급 가죽으로 마감한 대시보드와 도어 등은 손과 몸에 닿는 질감의 만족감도 극대화했다. 공조기, 주행 세팅, 라디오 등 대부분의 기능은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로 조작된다.
특히 안드로이드 오토 기반의 MIA 시스템과 해상도를 높인 8.4인치 중앙 스크린, 7인치 TFT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계기판 조합은 훌륭하다. 새 UI 기반으로 반응 속도나 메뉴 구성 등에 큰 불만이 없고 무선 애플 카플레이도 지원해 다루기 한결 편하다.
센터 콘솔에는 직관적인 기어 시프트 레버와 드라이빙 모드 버튼이 정리돼 있다. 다만 크기가 다소 작고 오디오 볼륨 및 조그셔틀이 회전식으로 붙어 있어 세심한 조작이 필요하다. 이 외에 콘솔에는 두 개의 컵 홀더, 12V 파워 소켓, SD 카드 리더 연결 장치, 휴대전화 거치 공간, USB 소켓 등 다양한 포트가 포함돼 있다.
오디오는 8 스피커, 180W를 기본 제공하며 하만카돈, 바워스&윌킨스를 고를 수 있다. 하만카돈 시스템은 14 스피커와 900W 앰프로 구성했다. 바워스&윌킨스는 17 스피커, 1,280W 앰프, 퀀텀로직 서라운드 등으로 이뤄졌다.
2열은 기대만큼 넉넉한 공간이 나온다. 세그먼트의 장점을 살려 무릎과 머리 윗 공간 전부 여유롭다. 다만 가운데 턱은 높은 편이어서 성인 세 명이 타고 장거리를 움직이는 건 한계를 보인다. 가죽은 다소 단단하지만 몸을 잡아주는 능력 만큼은 수준급이다 전용 공조장치와 송풍구, 리클라이닝 등 소비자가 원하는 편의기능은 빠짐없이 챙겼다. 참고로 뒷좌석은 6대4 비율로 접을 수 있으며 적재공간은 기본 580ℓ다.
르반떼 하이브리드는 세그먼트의 본분과 브랜드 정체성 사이를 잘 조율한 대담한 SUV다. 서로의 장점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운전자와 탑승자 모두에게 깊은 만족을 줬다. 평소 생각했던 하이브리드의 개념을 새로 정립할 수 있게 도와주고 제품의 가치를 한 차원 높여준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전동화 시대에 맞춰서 마세라티가 보여줄 수 있는 참신하고 건강한 변화의 결과물이 르반떼 하이브리드다. 가격은 1억1,800만원부터 시작한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