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보다 운행 혜택 늘려야
국내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에 정비센터 숫자를 넣는 방안이 논란이다. 누구의 생각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 없지만 시작은 미국 정부의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배제 대응 차원으로 알려졌다. 한국산 전기차에 미국이 보조금을 주지 않는 만큼 한국 또한 미국산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지 말자는 차원이다. 그런데 국내의 경우 생산과 수입을 동시에 하는 한국지엠이 있다. 미국산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쉐보레 볼트 EV와 EUV를 미국에서 수입하는 한국지엠에 큰 타격이다. 같은 미국 땅에서 생산돼 한국에 들어오는 테슬라와 볼트 보조금을 차등 방안으로 떠올린 게 정비센터 숫자로 짐작된다. 테슬라를 겨냥한 핀셋 보조금 조건인 셈이다. 물론 이 경우 중국산 전기버스도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도 정비센터 숫자는 적은 탓이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는 목적이다. 명분은 이동 과정에서 공해 물질의 무배출이지만 이면에는 국내 전기차 산업 촉진도 포함돼 있다. 그 중 첫 번째인 환경적 명분에선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기 쉽지 않다. 수입이나 국산이나 한국 땅에서 운행되면 그만큼 국내 대기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전기차가 아니라 전기차를 운행하는 사람에게 지급하는 것이니 차별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만 지금처럼 가격 조건은 유지할 수 있다. 전기차 보조금 지급 명분에는 생계형 이용자의 에너지 비용 절감도 일부 함의돼 있어서다.
그러나 두 번째 산업 활성화는 여러 조건을 붙일 수 있다. 미국처럼 주요 부품의 생산 및 공급처를 국내로 한정할 수 있으며 배터리 셀 공급 지역도 제한하면 된다. 배터리 뿐 아니라 관련 전기 부품의 비율도 높일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원칙은 한국산 전기차의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곳으로부터 전기차가 수입될 때 적용돼야 한다. 무역은 어디까지나 공정이 원칙이니 말이다.
사실 지금의 전기차 보조금 전쟁(?)은 다가올 미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일종의 샅바 싸움이다. 오랜 시간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유지했던 미국은 전기차 또한 패권을 가져가려 한다. 여기에 맞서 중국은 배터리 공급망을 앞세워 미국의 자동차 주도권을 빼앗겠다는 욕망이 강하다. 동시에 유럽연합도 내연기관 기술 발상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이미 배터리 동맹을 결성한 상태다. 산업 초기에 가장 중요한 물량 전쟁이 시작됐고 이때는 인구가 많은 곳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대비책을 모색해야 한다. 각 나라가 전기차 시장을 보호하는 상황에서 "국내 생산-해외 수출"은 앞으로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럴 때 내수 규모가 뒷받침되면 생산이 유지되겠지만 한국은 인구가 많지 않은 데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미래 성장도 어둡다. 아울러 각 나라의 전기차 비중이 늘어날수록 내연기관 수출도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현재 사용 가능한 정책적 카드는 내수 시장의 전기차 촉진이다. 이를 위해 전기차 보급 정책은 달라져야 한다. 보조금에 의존한 시장 만들기는 한계가 분명한 탓이다. 보조금 대신 운행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내연기관의 운행 금지 지역을 확대하고 전기차의 버스전용차로 운행 허용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절감된 구매 보조금으로 충전 요금을 지원할 수도 있다. 구매 가격은 오르겠지만 운행 혜택에서 보조금 효과를 얻는다면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 산업 촉진도 기대할 수 있다. 줄어드는 수출 물량을 최대한 국내에서 소화시키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동 수단의 동력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의 핵심 가치는 기술력이다. 그러나 기술력을 통해 현실에 등장시킨 제품을 판매하려면 절대적으로 시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장이 초기임을 감안하면 연간 180만대의 국내 자동차 시장도 작지 않은 수준이다. 일부에선 수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자는 방안도 내놓지만 환경적 명분에서 공정하지 않다. 오히려 국내에서 최대한 보급되도록 보조금은 줄이되 운행 혜택을 늘리는 게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