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장애인이 한 번은 될 수 있어
-권력, 나이, 성별, 직업 가리지 않고 장애인 될 수도
축구 열기에 휩쓸려 조용히 지나갔지만 지난 3일은 1981년 UN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었다. 인류 모두가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와 보조 수단의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기념일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 매년 4월20일이 장애인의 날로 지정돼 있어 상대적으로 UN 기념일을 주목하지 않지만 세계 여러 국가에서 관련 메시지는 쏟아졌다.
그런데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그저 차별 없이 해달라는 것이다. 특히 일상 생활의 모든 기본 행위인 이동의 불편을 줄여 달라는 요청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경제적 활동이고 그러자면 반드시 이동이 필요한데 이동 문제로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호소다.
현실은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도 휠체어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예산을 반영해 달라는 요구다. 이를 위해 정부도 저상버스를 확대하고 지하철 탑승 시설 개선에 일부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문제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이동이 가능한 육상 전용 이동 수단, 즉 장애인전용택시 증차에서 비롯되고 있다. 법률에선 150명당 1대를 요구하지만 실질 운행 효율은 너무나 낮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흔히 거리에 보이는 장애인콜택시가 실제 휠체어 장애인을 탑승시키고 이동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4~5간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휠체어 장애인의 전용 콜택시 주력 이용 시간대는 오전 9~11시, 그리고 오후 12:00~18:00 사이다. 이외 시간은 이용자가 별로 없어 그저 한적한 곳에서 대기할 뿐이다. 법적으로 3명의 기사가 24시간 운행하는 게 원칙이지만 야간과 새벽 이동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1명이 운전을 전담한다. 이런 현실에서 특별교통수단의 운행 대수 확대는 소수(?)의 3~4시간 피크 타임 불편 해소를 위해 나머지 20시간의 낭비(?) 비용을 감수하자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서울시에 따르면 장애인콜택시 1대를 10년 동안 운영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차 값, 운전자 인건비, 연료비, 기타 관리비 등만 계산해도 4억8,000만원 가량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치단체도 한계는 분명하다. 소수의 이동이 집중되는 3~4시간을 위해 연간 5,000만원의 예산을 매년 지출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탓이다. 게다가 전용으로 개조된 차를 구입하는 예산의 절반은 중앙 정부가 부담하는데 일부에선 국가 예산이 국민의 최소 기본권 확대에 사용돼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하지만 여기서 근본 문제 제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 고령화로 장애인 숫자도 함께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2016년과 2021년 사이 전체 인구가 최초로 6만명 줄어들 때 교통약자는 80만명 증가하는 일을 경험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이른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운영 대수는 지금보다 훨씬 늘어야 하고 예산도 확충해야 한다.
그런데 특별교통수단이 확대될수록 대중교통의 이용율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1,000만명이 버스, 지하철, 택시, 자가용 등 여러 이동 수단을 이용하다 고령화 등으로 100만명이 특별교통수단을 원하면 대중교통 전체 예산의 일부가 특별교통수단 확대로 옮겨 가야 한다. 하지만 900만명은 줄어든 예산 만큼 대중교통 편성에 제약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왜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해야 하는지 따져 묻기 일쑤다. 의식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 배려에 동의하지만 "동의"가 이용자의 불편으로 돌아온다면 그때부터 "다수의 희생"으로 여기는 게 대부분이다.
비단 이런 문제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모두 겪었고 경험했고 나름의 해결책을 강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선의 해결 방안으로 찾은 것이 겸용 이동 수단이다. 민간 운송 사업자가 휠체어 장애인 탑승도 병행하고 이용자 이동 비용은 자치단체가 지원해 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겸용 이동 수단이 존재해야 하는데 한국은 애석하게도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영국에서 수입된 겸용 이동 수단, 일명 "블랙캡"이 존재하고 이미 두 대가 장애인들의 적극적인 호출(?)을 받는 중이다. 장애인 뿐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 그리고 유아차를 보유한 젊은 엄마들의 예약이 넘쳐난다.
그러자 최근 국회에서 국내 교통약자 이동권 확보를 위해선 택시 및 렌터카의 일정 비율은 장애인 및 비장애인 모두가 이용 가능한 겸용 이동 수단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6월 국회도서관이 발간한 최신 외국입법정보에 김민이 국회 법률정보실 국내법률정보과 전문 경력관이 작성한 "영국의 장애인에 대한 택시 및 개인임대차량(렌터카) 입법례(김민이)"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장애인의 택시 이용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동일한 차량을 택시로 이용할 때 오히려 장애인의 만족도가 비장애인보다 높다고 강조했다. 또한 장애인도 필요하면 차 렌탈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이때는 운전자도 알선할 수 있도록 한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장애인 이동권 문제의 해결 자체를 현실적 관점, 즉 민간 부문이 겸용 수단으로 접근하고 공공이 이를 지원하는 형태로 해결하자는 제안이다. 오로지 세금으로 해결하려니 너무나 비효율적인 방식인 만큼 민간 사업자가 겸용 이동 수단을 도입할 때 구매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휠체어 장애인들의 이동 또한 이들에게 일부 역할을 맡기자는 얘기다. 게다가 민간 운송 사업자는 주력 탑승객이 비장애인이어서 24시간 운행도 한다. 비장애인이 주력 탑승하는 이동 수단에 휠체어 장애인도 어렵지 않게 타고 이동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인구 구조가 달라질 때는 이동을 최대한 통합시키는 게 모두에게 이롭다는 정책적 시사점이 새삼 떠오르는 아침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