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의 109년 역사 가운데 GT는 75년을 차지한다. 그만큼 GT는 마세라티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세라티 GT의 명맥을 이어 나갈 신형 그란 투리스모가 최근 이탈리아 로마에서 베일을 벗었다. 새 차는 16년 만에 세대교체를 이루며 다양한 분야의 개선을 이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세라티 GT의 정체성을 고이 간직한 채 브랜드와 제품의 지속가능한 가치를 제시한다.
▲흡입력 강한 디자인
신형 그란 투리스모의 외관은 한국인인 민병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주도했다. 클래식카의 곡선미 넘치는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핵심이다. 과거 브랜드를 대표했던 GT의 영광을 되살려보자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덕분에 양감이 강조되면서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특히 후드가 펜더 일부까지 덮은 마세라티의 새 디자인 요소 "코팡고(Cofango)"는 이런 스타일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전면부는 큼지막한 타원형 그릴과 세로형 헤드램프, 부풀어진 펜더 등이 마세라티의 일원임을 알린다. 굳이 삼지창 엠블럼이 없더라도 알 수 있다. 후드의 강한 굴곡은 범퍼와 구분되는 파팅라인과 함께 독특한 이음새를 보여준다. 그릴 내부엔 가변식 셔터를 장착해 공력성능을 높였다.
측면은 우아하고 역동적인 실루엣이 아름답게 눈에 비친다. 후륜구동 쿠페의 비례와 앞보다 큰 뒷바퀴가 보여주는 자태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GT"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세라티의 특징적 요소인 프론트 펜더에 나란히 뚫은 3개의 장식도 놓치지 않았다.
후면부는 딱 벌어진 펜더의 볼륨에서 힘이 느껴진다. LED로 가득 채운 날렵한 모양의 테일램프는 마치 비상하는 날개를 연상케 한다. 과감한 디퓨저와 배기구 디자인은 고성능을 암시한다. 반면 최고속도 302㎞/h의 성능을 낼 정도로 강력하지만 가변 스포일러 같은 장치는 없다. 원형으로도 충분한 다운포스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내는 GT만의 안락함을 바탕으로 디지털화를 적극 반영한 분위기다. 디지털 계기판과 디지털 시계는 운전자 취향에 따라 다양한 그래픽을 구현하며,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통해 전방에 시야를 집중시킬 수도 있다. 12.3인치 메인 디스플레이의 사용자 환경도 세련된 느낌이다. 여기에 포함된 안드로이드 오토 기반의 마세라티 인텔리전트 어시스턴트(MIA) 멀티미디어 시스템은 무선 연결을 포함한 다양한 기능을 지원한다. 최다 5명의 사용자 프로필을 저장할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또 다른 자랑거리인 새 음향 시스템은 마세라티와 같은 국적의 소너스파베르와 협업했다. 총 19개의 스피커는 그 주변의 소재와 공간감까지 조율한 결과 마세라티만의 매력적인 배기음에 걸맞은 음질을 제공한다. 그러나 배기음을 듣는 것만으로도 차를 즐기는 데 부족함이 없다.
엔진 시동 버튼과 주행모드 버튼은 스티어링 휠에 배치했다. 변속은 센터페시아 가운데에 버튼으로 조작 가능하다. 순수 스포츠카가 아닌 GT라서 가능한 구성이다. 세미 버킷 형태의 좌석은 다양한 탑승자 체형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다. 고속 코너링에서도 몸을 잡아주는 능력이 마음에 든다. 소재는 곳곳에 가죽과 탄소섬유, 알루미늄 등을 둘러 고급차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힘과 균형으로 무장한 성능
동력계는 마세라티의 새 주력 엔진인 네튜노를 채택했다. V6 3.0ℓ 트윈터보 형식이다. 시승차는 내연기관 최고성능 라인업인 "트로페오"로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66.3㎏·m를 발휘한다. 마세라티가 앞서 출시한 미드십 수퍼카 MC20과 같은 엔진이지만 시스템 일부를 온로드 주행에 최적화하기 위해 손봤다. 최고출력을 낮추고 엔진오일 윤활 방식을 Dry가 아닌 Wet으로 바꿨다. 여기에 이중 연소 기술, 실린더 비활성화 기능을 통해 효율을 높이기도 했다.
가속 페달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고 맹렬하다. 엔진음보다 두드러진 배기음은 6기통으로 낼 수 있는 가장 중독성 강한 주파수를 내뿜는다. ZF 8단 자동변속기는 이런 엔진과의 적절한 합을 이루며 변속이 이뤄지는 모든 순간마다 만족감을 준다. 회사가 밝힌 0→100㎞/h 가속 시간은 3.5초에 불과하다.
주행 모드는 컴포트, GT, 스포트, 코르사의 네 가지를 제공한다. 각각의 모드는 변속 시점과 배기음의 농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수백㎞를 달리는 시승에선 스포트 모드를 주로 사용했다. 안정적인 고속주행을 위한 최적의 선택이었다. 에어 서스펜션은 주행모드와 별도로 감쇄력을 조절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변화의 폭은 적다. 속도에 따라서는 자동으로 지상고를 제어하기도 한다.
그란 투리스모의 엔진은 차체 중앙에 가깝게 배치해 차체 움직임에 따른 하중 이동이 다른 차보다 유연하다. 덕분에 고속 코너링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쉽게 유지한다. 추운 날씨 탓에 윈터 타이어를 끼웠지만 구동력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많이 어색하지 않았다. 여기엔 섬세하게 구동력을 나누는 전자식 LSD도 거들었다.
GT를 표방하는 만큼 고속 주행 안정성도 상당하다. 불안한 기색 없이 속도를 거침없이 끌어올릴 수 있는 자신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파워트레인 뿐만 아니라 섀시와 제어 시스템의 완성도도 높게 다가온 이유다.
▲GT에 대한 마세라티의 접근법
마세라티는 새 그란 투리스모를 두고 역동성, 고급스러움, 쾌적함의 세 가지 요소를 버무렸다고 자부한다. 달리 말하면 주행성능과 감성품질, 승차감에 주력했다는 의미다. 이는 시승을 통해 차가 보여준 제품력에서 그대로 알 수 있었다. 차에 올랐을 때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이 빠르고 편하게 달릴 수 있는 "GT"의 특성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형 그란 투리스모는 "GT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