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방향 제시하는 V6 PHEV 슈퍼카
-다양한 상황에서 유연한 대처 가능해
평소 사람들은 수퍼카가 일상과 거리가 먼 차라고 생각한다. 낮은 차체와 강한 성능, 우렁찬 소리 등을 이유로 서킷에서만 타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수퍼카를 타는 소비자 중에서 서킷을 주기적으로 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동 수단의 역할을 최우선에 두고 다양한 상황에서 주행을 즐긴다.
현실적인 수퍼카를 찾는 사람들에게 페라리 296GTB는 좋은 선택지로 등장했다. 작은 차체와 다루기 쉬운 움직임, 첫 V6 엔진과 함께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어우러져 요즘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한다. 맹렬히 서킷을 질주하던 차의 능력을 넘어 낯설면서도 익숙한 장소인 도심 속, 교외 와인딩 구간을 함께 달리며 296GTB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했다.
출발에 앞서 차를 살펴봤다. 외관은 탄탄한 비율과 지금까지 페라리에서 볼 수 없던 독특한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길쭉하게 코가 나온 범퍼를 비롯해 날카로운 디자인의 헤드램프, 엣지를 살린 보닛의 형태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벨트라인 위쪽으로 뻗어있는 측면 흡기구와 둥글게 말아올린 지붕, 캐빈과 명확히 구분한 유연한 곡선의 엔진룸은 클래식한 느낌을 키운다. 1963년형 페라리 250 LM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결과물이다.
실내는 운전자 중심이다. 달리기 위한 차라는 걸 단번에 알게 한다. 대부분 조작은 스티어링 휠에서 한다. 터치와 물리 버튼을 적절히 섞은 매력적인 물건이다. 풀 디지털 계기판은 차의 모든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조수석 탑승자는 별도의 작은 디스플레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달리기에 집중하는 차의 성격을 감안하면 충분한 구성이다.
센터터널은 헤리티지 요소를 강조한다. 크롬으로 감싼 토글 방식의 변속레버는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돌출형 나사로 조여 클래식한 맛을 더한다. 소재는 뛰어나다. 질 좋은 가죽과 탄소섬유 패널을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에 덮었다. 천장에는 알칸타라로 도배를 했다. 패널이 맞물리는 부분에는 금속 소재를 사용해 화려함을 나타냈고 섬세한 스티치도 만족스럽다.
시승차는 아세토 피오라노 패키지를 채택했다. 상당한 중량 감소와 공기 역학적 요소로 인해 역동성을 키운다. 250 르망에서 영감을 받은 리버리(livery)를 겉에 둘렀고 앞 범퍼에는 10㎏의 추가 다운포스를 발생시키는 하이 다운포스 탄소 섬유를 넣었다. 경량화를 위해 유리의 두께도 줄였다. 중량을 15㎏까지 줄일 수 있는 초경량 리어 윈드스크린의 경우 렉산(Lexan)의 패널을 사용한다.
키를 건네 받고 시동을 걸었다. 화려한 계기판과 다르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은 차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주행도 마찬가지다. 시종일관 차분하게 숨을 죽이면서 속도를 올린다. 흐름에 맞춰서 달리면 여느 차들처럼 편안하고 여유롭게 이동의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에는 마네티노 반대편에 위치한 각각의 터치 모드가 큰 역할을 한다. 크게 네 가지로 나눠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H(하이브리드) 모드를 주로 사용한다. 엔진과 전기모터, 배터리를 최적의 상태로 분배해 출력과 충전, 회생 제동의 균형을 맞춘다.
바로 아래에는 eD(순수 전기)모드가 있다. 최장 25㎞를 기름 한 방울 사용하지 않고 달린다. 속도는 135㎞/h까지 가능해 언제든지 전기 에너지가 주는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체커기 표시의 퍼포먼스 모드는 모터 출력에 집중한다. 강력한 사운드가 가동되며 페라리의 기대치를 크게 높인다. 마지막은 퀄리파잉 모드다. 배터리와 모터 출력을 최대치까지 끌어내 극강의 실력을 발휘한다.
도심을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H 모드로 줄곧 달렸다. 스로틀이 예민하지 않고 움직임도 차분해 제법 여유로운 운전이 가능했다. 시트 포지션과 전방 시야만 낮을 뿐이지 대중적인 차를 다루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296GTB가 주는 아우라에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매너 있게 움직이며 섬세하게 반응하고 고급스러운 주행을 구현하다.
열심히 서울을 빠져 나와 교외 고속구간으로 진입했다. 여기서부터는 퍼포먼스로 모드를 바꿔 차의 실력을 확인했다. 296GTB는 강한 소리와 함께 야수의 심장을 꺼내기 시작했다. 새 V6 엔진은 최고 663마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7.45㎾h 배터리와 최고 167마력의 122㎾ 전기모터가 힘을 더해 시스템 총 출력은 무려 830마력에 이른다. F8 트리뷰토보다 110마력 강하고 단위 중량 당 출력은 SF90 스트라달레보다 높다. 기존 V8 3.9ℓ 엔진보다도 30㎏ 가볍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200㎞까지 가속 시간은 고작 7.3초에 불과하다.
동력 성능은 명불허전이다. 페라리다운 폭발적인 가속력을 앞세워 신세계로 인도한다. 짧은 순간에 차를 한계 영역으로 몰아 붙이는데 짜릿하고 서늘한 기분이 든다. 몸은 시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고 시선은 급격히 좁아진다. 몰입감이 절정에 다다르며 비현실적인 가속감에 헛웃음만 나온다. V6 엔진에서 이렇게 빠르고 강한 펀치력이 나오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V8이나 V12엔진으로 착각할 수 있겠다.
한적한 와인딩 로드에 진입한 뒤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전달한다. 짧은 휠베이스를 바탕으로 기술력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어서다. 깔끔하게 포물선을 그리고 우아하게 돌아나간다. 앞머리를 강하게 찔러 넣어도 흔들림이 없고 탈출 시 가속페달을 짓이겨도 차는 온전히 받아내며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6W-CDS 시스템은 차의 움직임을 빠르게 파악하고 최적의 구동을 구현한다. 회전 시 가속도와 속도를 모두 측정해 역학 제어 장치가 차에 개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능적인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그립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며 신속하게 코너를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 모든 과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다.
SF90에서 물려받은 8단 F1 DCT는 물건이다. 차의 모든 순간을 즐겁게 하는 핵심요소다. 빠르고 정확한 반응 덕분에 누구나 손 쉽게 운전을 할 수 있다. 굳이 패들시프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민첩하면 조금의 지체도 없이 즉각적으로 변속한다. 모터스포츠에서 다듬은 노하우가 온전히 차에 묻어 나는 순간이다.
296GTB와 행복한 춤을 추고 다시 서울 도심으로 들어왔다. 오는 길에는 퀄리파잉 모드를 통해 적극적으로 배터리를 충전했고 퇴근길 무렵 정체 구간에 도착해서는 순수 전기 모드로만 달렸다. 도로 위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디자인을 제외하면 다른 차들과 똑같이 편안하고 여유롭게 움직였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소리도 전혀 내지 않았다. 감각적인 이탈리아 신사처럼 아름다운 멋을 도로 위에 뿌렸다.
페라리 296GTB는 팔색조 매력을 가지고 다양한 운전 경험을 일깨워주는 수퍼카다. 상황에 맞춰서 고요하게 움직이거나 반대로 거친 울음을 토해내며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순간은 특별한 재미와 신선함으로 채워지고 차에 대한 믿음은 더욱 커진다. 매 순간 페라리와 함께하고 싶다면 296GTB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