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운행 여건상 확연한 풀사이즈 픽업의 장·단점
-최상위 트림이지만 아쉬운 상품성
남자라면 "V8"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멋진 남자는 8기통 엔진의 자동차를 타야한다는 의미다. 물론 스포츠카, SUV, 세단에도 8기통이 있지만 여유로운 자의 손과 발이 되는 8기통 풀사이즈 픽업트럭은 자유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차다. 바로 그 차가 한국에 정식 판매 되면서 자유를 갈망하던 소비자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 GMC의 120여년 트럭 노하우가 담긴 풀사이즈 픽업, 시에라 드날리를 시승했다.
▲디자인&상품성
풀사이즈 픽업을 마주하면 미대륙 사람들의 스케일을 엿볼 수 있다. 시에라의 길이, 너비, 높이, 축거는 각각 5,890㎜, 2,065㎜, 1,950㎜, 3,745㎜다. 국내 승용화물로는 최대 크기에 속한다. 특히 휠베이스는 경차 한 대가 들어갈 정도다. 길이는 주차장의 주차칸에 못 들어가고 차체 일부가 칸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다. 일반적인 국내의 주차 인프라에서는 다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전면부는 GMC의 디자인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풀사이즈 픽업답게 웅장하다. 시승차는 드날리-X 트림으로, LED 블랙 GMC 엠블럼을 부착했다. 양옆으로 배치한 세로형 주간주행등과 헤드램프는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과 선이 잘 맞아 떨어진다. 하단부에는 견인고리와 크롬 몰딩, LED 안개등이 자리 잡았다. 지붕의 고정식 라디오 안테나는 미국차의 디자인 헤리티지를 계속 유지하는 요소다. 왠지 그 끝부분에는 앙증맞은 안테나볼을 하나 붙여야 할 것 같다.
측면은 픽업이지만 디자인 균형이 잘 맞아 떨어진다. 22인치 알로이 휠은 차체 크기를 감안하면 작아 보이기까지 한다. 펜더 상단에는 V8 6.2ℓ 배지를 붙였다. 터치타입 방식의 도어핸들을 적용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전형적인 1열 위주의 사용이 주된 목적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휠하우스에는 우레탄 크래들과 흙받이를 마련해 픽업의 용도에 맞게 디테일을 살렸다. 전동식 사이드 스텝(Three Position MultiPro Power Step)은 일반 전개 위치와 적재함 전개 위치로 전환이 가능해 편의성을 더했다. 2열 사이드 스텝의 끝부분에는 고무 커버를 두른 스텝 후측면 킥 버튼을 준비해 발로 버튼을 터치하면 원하는 위치로 움직일 수 있다.
후면부는 적재함 게이트를 중심으로 균형적인 디자인을 구현했다. 차명보다 트림명을 강조하다 보니 "DENALI" 글자가 차명보다 크다. 후미등은 전체 LED 방식이며 방향지시등은 브레이크등과 함께 사용되는 미국형이다. 범퍼 모서리는 발판으로 처리했고, 번호판 끝 부분엔 트레일러 히치 리시버와 커넥터를 배치했다. 트렁크는 LED 블랙 GMC 엠블럼을 부착했다. 테일 게이트는 6가지 방법으로 접고 펼치는 기능이 가능해 유용하고 편리하다. 내부에는 막대 손잡이가 있고 카고, 테일게이트 스텝, 히치 라이팅을 각각 채택했다. 국내형 제품에는 테일게이트 스텝 라이팅을 마련했다. 하지만 선택품목인 적재함 키커 멀티프로 오디오 시스템(MultiPro Audio System by Kicker)이 빠진 것은 아쉽다. 적어도 국내 드날리-X에는 챙겼어야 했던 품목이다.
실내는 과할 정도로 여유롭다. 국산차들에 있던 품목들은 모두 갖고 있다. 하지만 선루프는 빠졌다. 앞좌석은 드날리 로고를 새긴 8way 전동 시트와 4way 럼버 서포트, 자동 열선/통풍, 핸들 자동 열선, 센터콘솔과 추가 수납함, 조수석 상/하단 글로브박스 등이 있다. 상단 글로브박스는 내부 마감 처리가 됐지만 하단 글로브박스는 마감 처리가 없어 차 가격에 비해 고급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프리미엄 플로어매트와 도어실 플레이트에는 "GMC"와 "DENALI"를 각인해 이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앞 도어 트림에는 페트병 2개를 넣을 수 있는 공간과 기타 물건들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센터 터널은 기어노브 앞으로 핸드폰을 추가로 수납할 수 있고, 옆으로는 스마트키 등을 수납하는 공간과 컵홀더가 위치한다. 뒤로는 무선충전 패드가 자리잡고 있다. 거기에 센터콘솔 내부에도 고출력 400W 230V 파워아웃렛과 USB타입과 C타입 충전 포트를 준비해 여유로운 스마트기기의 사용이 가능하다.
뒷좌석은 꽤나 넓다. 키 큰 성인 3명도 거뜬히 앉을 수 있다. 시트백의 각도도 불편하지 않다. 픽업의 짜임새에 맞게 좌석 하단에 스토리지가 있고, 등받이에도 스토리지가 있다. 센터 팔걸이는 길이가 짧은 것 같지만 막상 사용하면 불편함이 없다. 텀블러를 놓을 수 있는 컵홀더는 팔걸이와 앞쪽 센터콘솔에 각각 2개를 배치해 음료를 편리하게 놓을 수 있다. 시트는 열선 기능을 지원하며 USB 타입과 C타입의 충전포트도 설치했다. 뒷좌석과 뒷유리창은 프라이버시 글래스를 반영해 미국차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 하지만 뒷유리창에 슬라이딩 도어가 없는 점은 옥에 티다.
적재함 베드는 스프레이 온 베드를 적용해 우레탄 베드라이너 같은 추가 품목이 필요 없다. 적재함 우측에는 400W 230V 파워아웃렛이 있고 좌측에는 베드에 올라가기 위한 막대 손잡이를 장착했다. 화물 고정 고리는 추가 장착이 가능하도록 자리를 미리 준비해 뒀다. 풀사이즈 픽업의 위엄을 보여주듯 베드의 용량도 상당하다.
인포테인먼트는 13.4인치의 컬러 터치스크린을 사용한다. 무선 폰 프로젝션이 가능해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를 무선으로 활용할 수 있고 4개의 USB 포트가 있어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차내에서 즐길 수 있다. 오디오 시스템은 보스의 제품을 넣었다. 미국 태생답게 리치베이스 우퍼를 채택해 왠지 저음이 강한 힙합이 어울릴 차다. 실제 저음이 강한 음원을 재생하면 스트레스를 날릴 정도로 속 시원하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전화기 연결은 1개만 가능해 일부 불편함은 있다.
▲성능
엔진룸의 V8 6.2ℓ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은 최고 426마력, 최대 63.6㎏·m를 발휘한다. 미국에서는 2.7ℓ 가솔린 터보와 3.0ℓ 듀라텍 디젤도 제공하지만 국내에서는 최상위 풀사이즈 픽업의 위엄을 강조하기 위해 대배기량 엔진을 가져왔다. 타호와 같은 엔진을 사용해 사후 서비스 부분에서 제조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시동을 걸면 직분사 V8 자연흡기 엔진의 부드러움이 고스란히 몸으로 전달된다. 미국에서는 가장 흔하고 평범한 V8이라 내구성과 정비성이 좋다. 이 엔진에는 다이나믹 퓨얼 매니지먼트(Dynamic Fuel Management)를 포함해 장거리 주행에서 효율 향상에 유리하다.
변속기는 하이드라매틱 10단 자동변속기(10L80)를 사용한다. GM과 포드가 공동개발해 스포츠카나 대형 차종에 많이 쓰이는 변속기다. 기존 GM의 8단 변속기에 비해 3단 이후의 기어비를 세분화시켜 중·고속에서의 변속감과 효율이 향상됐다. 10단 자동변속기는 최대토크를 4,100rpm에서 발휘하는 엔진과 맞물려 시속 100㎞이상의 항속에서도 낮은 엔진회전수를 유지하며 여유롭고 편안한 주행을 가능케 한다. 시에라의 4륜구동은 오토트랙 액티브 4X4시스템을 채택해 2WD, 4WD Hi, 4WD Lo, 자동의 4가지 모드를 제공한다. 특히 2WD는 순수 후륜구동이어서 평상 시 효율 개선에 도움을 준다.
시에라의 앞브레이크는 4피스톤 캘리퍼를 끼운 대용량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페달 답력이 일반 차보다 강해 밟을 때 힘을 더 줘야 한다. 차 무게를 감안한 설계로 판단된다. 하지만 제동성능은 페달을 밟는 만큼 믿음을 준다. 트레일러 스웨이 컨트롤 기능을 포함한 스테빌리트랙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과 트레일러 하중에 따른 브레이크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통합형 트레일러 브레이크 시스템은 견인을 마음껏 즐기도록 해준다.
시에라의 주행 성능은 여유와 편안함을 지향한다. 높은 토크와 자연흡기 V8에서 오는 힘, 그리고 부드러움은 미국 대륙의 여유를 세삼 느끼게 한다. 힘차게 달려 나가고 싶을 땐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으면 어느 순간 고속영역대로 접어든다. 승차감은 리얼타임 댐핑 어댑티브 서스펜션 덕분에 편안하다. 차체 하부에 있는 각종 부싱들은 프레임과 차체, 노면으로부터 오는 충격들을 기분 좋은 느낌으로 바꾼다. 전반적으로 안락한 장거리 순항을 위한 더없는 조합이다. 시에라의 연료 효율은 낮다. 연료 효율은 도심 6.0㎞/ℓ 고속도로 8.4㎞/ℓ다. 순수 도심운행에서는 ℓ당 3.9㎞까지도 낮아진다.
▲총평
시에라는 GMC의 풀사이즈 픽업의 가치를 온 몸으로 보여준다. 픽업은 미국에서 아주 대단한 차가 아닌 짐을 싣고 큰 덩치의 미국사람들이 편안하게 이동하기 위한 목적의 다용도 차다. 그만큼 북미에서는 평범한 차란 의미다. 하지만 국내로 들어오면서 가격과 크기에 "고급"이라는 단어가 붙어 버렸다. 럭셔리는 아니지만 프리미엄 픽업을 지향하기에는 충분한 상품성과 위엄이 있다. 국내 환경에서는 차 크기로 인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분명 풀사이즈 픽업의 여유로움에서 오는 편안함은 무시할 수 없다. 진정 모든 분야에서 자유로워지는 시점에 한번쯤 도전해 볼만한 그런 차인 셈이다.
시에라 드날리-X 트림 가격은 9,500만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