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대형 전기 SUV 시장의 개척자, 기아 EV9

입력 2023년06월18일 00시00분 구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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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들이 기다려온 대형 전기 SUV
 -디자인·성능·상품성의 균형 인상적 

 대형 SUV의 전동화는 많은 소비자가 꿈꿔온 일이다. 큰 차체가 지닌 광활한 실내 공간과 이를 기반으로 한 다목적성, 여기에 전기차 특유의 고성능과 확장성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의 패밀리카"라 불러도 전혀 부족함 없는 조합이다. 기아가 선보인 EV9은 이러한 열망을 현실로 만든 차다. 패밀리 EV로서 실내공간과 성능, 주행가능거리까지 어느 하나 빼놓지 않은 이상적인 매력을 갖췄다. 덕분에 출시 전부터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EV9이 진정 소비자들의 모든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궁극의 전기차가 될 수 있을까? 경기 하남에서 충남 부여까지 약 200㎞를 달리며 EV9의 성공 가능성을 점쳐봤다.



 ▲"디자인의 기아"가 만든 대형 전기 SUV
 실제로 만나본 EV9는 차체 길이가 5m를 넘긴 큰 차였다. EV9은 길이 5,010㎜, 너비 1,980㎜, 높이 1,755㎜로 현대차 팰리세이드보다 길이 15㎜, 너비 5mm, 높이 5㎜가 더 크다. 그러나 실내 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의 차이가 크다. EV9은 휠베이스가 3,100㎜에 달해 2,900㎜의 팰리세이드보다 한 뼘 정도 길다. 최신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적용한 덕분이다.



 EV9은 큰 차임이 분명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전혀 비대하거나 둔해 보이지 않는다. 한눈에 봐도 미래지향적이고 날렵한 외관 디자인 때문이다. 전면부는 선으로 정리한 깔끔한 인상을 강조했다. 세로로 줄 지은 좌우의 스몰 큐브 프로젝션 LED 헤드램프를 사이로 기아 특유의 호랑이코 그릴을 아웃라인으로 표현했다. 그릴 자리는 디지털 패턴 라이팅으로 채웠다. 헤드램프와 그릴이 맞닿는 곳엔 LED 패턴이 들어가 독창적인 마스크를 완성한다. 라이팅 패턴은 기아 커넥트 스토어를 통해 다양한 패턴을 구매해 반영할 수도 있다. 후드는 높게 솟아있지만 앞쪽을 유선형으로 구부려 과거 쏘울부터 이어 온 기아의 디자인 특징을 연상케 한다.



 측면은 EV9 디자인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손색없다. 날렵하게 누운 전면 유리와 앞뒤 펜더에서 3개의 직선이 만나는 캐릭터라인, 오토 플러시 도어핸들은 전기차 특유의 미래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또 바퀴를 감싸는 유광의 크래딩을 두껍게 처리하고 철판의 비율을 줄여 차체가 얇고 날렵해 보이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윈도우 벨트라인에 위치한 크롬라인은 수평으로 이어지다 뒷바퀴 즈음에서 각도가 상승해 역동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바퀴 또한 예사롭지 않다. 시승차는 21인치의 하이퍼 실버 휠을 장착했다. 휠의 대부분의 면적을 가려 공기저항을 줄인 형태다. 휠의 블랙 하이그로시 부분은 커다란 사각형을 만들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4개의 환기구가 사각형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다. 휠캡은 팔각형으로 꾸며 우측면에 기아 로고를 멋스럽게 새겼다. 내연기관의 자동차 휠과 차별성을 부여하는 독창적인 휠 디자인이다.



 후면은 간결하게 정리한 모습이다. 측면 숄더라인의 캐릭터 라인이 후면까지 수평적으로 이어지며 이를 통해 차체가 보다 넓고 안정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LED 리어램프 디자인 역시 캐릭터 라인과 마찬가지로 3개의 선이 만나 사이버틱한 그래픽을 만들어냈다. 전반적으로 독창적인 선과 덩어리감이 살아있는 미래적인 디자인으로 대형 전기 SUV의 존재감을 극대화한다.

 ▲광활한 실내와 화려한 기술
 실내는 긴 휠베이스 덕에 만족스러운 공간을 누릴 수 있다. 바닥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이점을 살려 돌출부 없이 평평한 구조를 지녔다. 넓은 1~2열 공간과 달리 3열 좌석 공간은 성인에게 다소 좁을 수 있다. 적재 공간 확보를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3열 뒤 기본 트렁크도 짐을 싣기에 넉넉한 공간을 제공한다. 3열과 2열을 접으면 부피가 큰 짐도 무리 없이 실을 수 있다. 의전에 특화한 6인승 2열 릴렉션 시트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평탄화를 통해 편안한 차박 캠핑도 즐길 수 있다.








 EV9의 실내는 독창적이지만 담백함이 살아있는 디자인이다. 마치 미니멀리즘으로 안락한 환경을 조성하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떠오르게 한다. 슬라이딩 커버로 닫히는 1열 컵홀더와 2열 중앙부로 확장 가능한 센터콘솔도 그 중 하나다. 소재도 남다르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리사이클 플라스틱 등 지속가능한 10가지 필수 소재를 적용해 "친환경 전기 SUV"라는 EV9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차분한 분위기와 달리 각종 기능은 화려하다. 전면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는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5인치 공조 시스템,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합했다. 공조 시스템은 스티어링 휠에 패널 일부가 가려지지만 익숙해지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것 같다. 14개의 스피커와 외장앰프를 포함한 메리디안 사운드 시스템도 인상적이다.



 운전 중 가장 만족스러운 품목은 운전석의 에르고 모션 시트였다. 장거리 운전으로 허리가 뻐근해질 무렵, 기능을 작동시키자 척추 기립근부터 골반까지 시원한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안마의 강도 역시 훌륭한 수준이다. 6인승 릴렉션 시트를 선택하면 2열에서도 안마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에르고 모션 시트만큼 고급 기능을 넣진 않았지만 진동과 요추 두드림 기능을 통해 꽤 시원한 마사지를 지원한다. 

 ▲뛰어난 주행성능과 잘 조율된 승차감
 시승차는 시스템 최고출력 283㎾, 최대토크 600~700Nm의 4륜구동 어스 트림이다. 내연기관 방식으로 환산하면 최고 약 380마력, 최대 약 61.2~71.4㎏·m의 동력이다. 실제 시승에서 느껴지는 힘은 400마력 이상을 내는 V8 엔진을 연상케 한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풍부한 토크 때문이다. 여기에 최대토크가 초반부터 발생하는 전기차 특성 때문에 가속 페달의 응답성은 내연기관과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실제 EV9은 가속 시 2.6t에 가까운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산뜻한 가속력을 보여준다. 초고속 구간에선 안전을 위해 넘치는 가속 성능을 억제하는 느낌이다.

 스티어링 휠 하단에 위치한 드라이브 모드 버튼을 통해 스포츠 모드를 활성화시키자 가속성능은 더 빨라진다. 대형 SUV에서 고성능 스포츠카 이상의 동력성능을 경험하는 것이 즐거워 자꾸만 가속 페달에 발이 가게 된다. 하지만 동승자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급가속 시 하중이 많이 걸리는 뒷좌석에서는 즉각적이고도 강렬한 토크로 인해 어지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무지막지한 동력 성능 탓에 생기는 현상이자 모든 고성능 전기차들의 숙명이다. 언젠가 내연기관의 점진적인 토크 곡선을 흉내 낸 드라이브 모드도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승차감은 부드러움과 탄탄함의 균형을 갖춘 세팅이다. 높은 방지턱도 큰 충격 없이 유연하게 넘을 수 있을 정도다. 엔지니어 입장에서 육중한 대형 전기 SUV의 서스펜션 세팅은 그야말로 도전이었을 것이다. 차체 중량이 무거워질수록 승차감과 주행 성능을 모두 만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아는 이를 꽤나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고가의 에어 서스펜션을 넣지 않았음에도 무거운 하중을 견디기 위한 서스펜션 보강 및 튜닝을 통해 훌륭한 승차감을 만들어냈다. 가격적인 부분과 경량화, 유지보수에 있어서 해당 서스펜션 구조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EV9은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주행안정성을 확보했다. 보강된 서스펜션 구조와 바닥에 낮게 깔린 배터리, 횡풍 안전제어, 코너링 시 좌우 바퀴의 토크를 조절하는 다이내믹 토크 벡터링 기술까지 집약한 결과다. 실제 시승에서도 고속 코너에 진입할 때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점이 돋보였다. 물리의 법칙을 완전히 거스를 순 없지만 기술로 "무게"라는 전기차의 단점을 만회한 셈이다.


 주행가능거리도 훌륭하다. 가장 성능이 낮은 2WD 19인치 타이어 제품은 501㎞의 1회 충전 주행거리(복합 기준)를 확보했다. 시승한 4WD 21인치 타이어 제품은 454㎞의 주행가능거리를 인증을 받았다. 에너지 효율 역시 제품별로 복합 3.8~4.2㎞/㎾h의 수치를 인증 받았다. 시승에서도 주행 패턴과 회생 제동 기능을 통해 어렵지 않게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완성도 높은 대형 전기 SUV, 새 시대 열다
 시승을 통해 느껴본 기아 EV9은 완성도 높은 전기차였다. 디자인부터 공간, 성능, 상품성 무엇 하나 빠지거나 아쉬운 구석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제 막 시작된 전기차 시장에선 흔치 않은 높은 완성도다. 세계 시장에 내놔도 제품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대형 전기 SUV를 바라던 소비자들의 기대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격은 2WD 에어 7,671만원, 어스 8,181만원, 4WD 에어 8,041만원, 어스 8,551만원, GT-라인 8,781만원이다(환경친화적 자동차 세제혜택 전, 개별소비세 3.5% 기준).

정현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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