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역사적 가치의 산물, 벤츠 E-클래스(W114)

입력 2023년08월16일 00시00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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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초에 선보인 4세대 E-클래스
 -벤츠의 첫 번째 밀리언셀러 차종 등극
 -부드럽고 안정적인 승차감 인상적

 지난달 13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신형 E-클래스 미디어 시승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11세대 신형 외에도 역대 E-클래스를 한 자리에서 모아놓고 타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중에서 다양한 기록을 세운 4세대 E-클래스(W114)를 배정받아 직접 시승에 나섰다. 벤츠 세단이 주는 감각과 가치는 55년 전에도 한결 같았으며 자동차 브랜드에 있어서 헤리지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시간이었다.

 4세대 E-클래스는 1968년 등장했다. 코드네임 115와 114 시리즈 세단은 180만대 이상 판매되며 벤츠의 첫번째 밀리언셀러 차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15 시리즈는 4기통 차종인 200, 220, 200 D, 220 D 등이 있으며 114 시리즈 6기통 제품은 230과 250이 처음으로 선보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차종 표시법에 "/8"을 추가했는데 이는 출시 연도인 1968년을 나타내며 내부적으로는 이전과의 차별화를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결국 "스트로크/8(Stroke/8)"이라는 유명한 별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4세대부터는 처음으로 쿠페 버전이 나왔으며 1972년에는 280과 280 E이 최상위 버전으로 추가됐다. 이 외에 1974년에는 5기통 디젤 엔진을 탑재한 240 D 3.0을 처음 선보였다. 참고로 240 D 3.0은 세계 최초로 5기통 디젤 엔진을 얹은 양산차이며 최고 80마력의 출력을 발휘해 승용차 디젤 엔진의 잠재적 능력을 증명했다. 이후 4세대 E-클래스는 1976년을 끝으로 사라진다.

 시승차는 1970년에 생산한 250(W114)으로 준비돼 있었다. 외관은 현대적인 전환을 점쳐볼 수 있는 세련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3세대만 하더라도 둥근 팬더와 원형 램프 등 옛 영화에서 볼법한 클래식한 디자인이었다면 4세대는 각진 필러와 긴 보닛, 트렁크 등 요즘의 자동차 모습을 하고 있다. 

 앞은 세로형 사각 헤드램프와 커다란 크롬 그릴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고급차를 상징하는 돌출형 엠블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전통 중 하나다. 범퍼는 두께가 얇지만 두 줄로 처리해 안정감을 높인다. 옆은 중앙을 흐르는 굵은 장식이 인상적이다. 
 
 캐릭터 라인 역할도 하며 단번에 존재감을 키운다. 이와 함께 깔끔한 문 손잡이와 차체 컬러와 맞춘 커다란 로고가 박힌 휠 등이 멋을 더한다. 뒤는 크고 긴 트렁크와 함께 작은 테일램프가 위치한다. 차명과 자동변속을 나타내는 레터링이 가지런히 자리잡았고 짧고 간결한 범퍼와 배기구가 조화를 이룬다.

 실내는 림이 얇은 커다란 스티어링 휠을 제외하면 지금의 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세 개의 원형 계기판과 알만한 위치에 놓인 송풍구, 라디오 주파수를 조작할 수 있는 버튼, 자동변속기의 모습까지 많은 부분이 익숙하다. 차가 나왔을 50년 전을 생각하면 매우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차의 상태도 감탄사를 내지르게 만든다. 우드와 가죽은 물론 매트, 크롬 장식, 각종 패널까지 전부 새 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벤츠 클래식카 부서에서 특별 관리를 받았는데 전통을 향한 브랜드 의지에 저절로 박수가 나온다.

 특별한 경험은 시트에서 드러난다. 푹신한 스폰지 형식으로 안락한 소파에 앉은 듯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헤드레스트도 없다. 몸을 지지해주는 지금의 시트와는 완전히 다르다. 안전에 대한 기준을 비롯해 시트 제작 기술력이 높지 않았던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물론 이 또한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짓는다.

 보닛에는 6기통 2.5ℓ 가솔린 엔진이 들어있다. 최고출력 130마력을 발휘하며 5,400rpm에서부터 실력을 드러낸다. 최고속도는 180㎞/h다. 시동을 켜니 묵직한 엔진음과 배기음이 조화를 이루며 등장을 알린다. 스로틀 반응도 마찬가지다. 매우 차분하며 활짝 열어야 속도가 붙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번 탄력을 받은 뒤에는 제법 시원스럽게 달린다. 자동변속기의 변속 타이밍도 잘 맞고 엔진회전도 매끄럽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정직한 반응을 유도하며 고급스럽게 질주한다. 수십 년 전 차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우수한 상태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짓고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다. 

 기대 이상으로 놀라웠던 부분은 바로 승차감이다. 요즘 차들이 사용하는 전자 기술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지만 E-클래스 특유의 안정적인 승차감은 그대로다. 거친 오스트리아 돌길을 의연하게 통과하고 고속 구간에서는 스르륵 잠이 들 정도로 안락한 느낌을 전달한다. 감동의 연속이며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물론 그 이상의 역동적인 주행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티어링 휠은 무겁고 반응이 느렸다. 또 별다른 안전 제어 장치도 없기 때문에 코너를 빠르게 돌면 휘청하는 장면도 나왔다. 기술이 많지 않았던 당시 자동차 산업을 고려하면 전혀 단점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안정적인 파워트레인과 감각적인 승차감이 주는 여운이 더 짙어 만족스러운 시승을 할 수 있었다.

 올드 W114를 운전하며 11세대까지 이어진 벤츠 E-클래스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긴 시간이 흘렀어도 변함없는 자세로 명맥을 유지하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차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자동차 브랜드에게 헤리티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E-클래스는 역사를 답습하며 지금도 기준이 되서 혁신을 이뤄나가고 있다.

비엔나(오스트리아)=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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