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는 주요 제품에 이탈리아의 지명을 가져와 명명한다. 마라넬로, 모데나, 피오라노, 포르토피노 등이 그랬다. 그래서 수도 "로마"의 이름을 가진 차가 과연 언제 등장할지 궁금했었다. 궁금증은 지난 2019년 풀렸다. GT 라인업을 계승하는 로마가 주인공이다.
로마는 "새로운 달콤한 인생(La Nuova Dolce Vita)" 콘셉트와 함께 페라리의 전성기를 알리는 요소를 가득 품고 있다. 조화와 균형이 가득한 프론트 미드십 엔진 구조와 1960년대 GT에서 영감을 얻은 스타일링은 보기만 해도 감동을 자아낸다. V8 엔진과 다양한 동역학 시스템의 움직임은 풍요로운 주행을 이루는 핵심이다. 페라리는 여기에 컨버터블을 더해 로마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1969년 365 GTS4 이후 54년 만에 선보인 프론트 엔진 소프트톱, 로마 스파이더를 지중해 한 가운데에서 만나봤다.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멋과 여성적인 아름다움은 양립하기 어렵다. 하지만 로마는 이 두 요소를 절묘하게 버무렸다. 날렵한 샤크 노즈 프론트 뷰와 과거 GT의 향수가 묻어 있는 실루엣, 전통적인 4구 테일램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외관 전면부는 기하학적 패턴을 반영한 그릴과 날카로운 모양의 헤드램프가 맵시 있는 인상을 풍긴다. 특히 헤드램프는 속눈썹 화장을 짙게 한 눈매를 떠올려 시선을 모은다.
측면은 로마의 킬링 포인트다. 길고 풍만하게 뻗은 프론트 펜더와 뒷바퀴의 강력한 힘을 암시하는 리어 펜더는 1960년대 페라리 GT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측창의 모양은 다른 페라리와 사뭇 다르다. 면적이 작고 A필러와 지붕이 만나는 곳에 각을 만들어 독특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소프트톱은 지붕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커 컨버터블의 묘미를 부각시킨다. 캐릭터 라인은 빛에 따라 다르게 반사되는 표면이 대신한다. 버튼식으로 눌러서 열 수 있는 도어 핸들은 실용적이면서도 주행 중 공기저항을 줄인다.
후면은 여느 페라리에서 볼 수 있는 브랜드 정체성으로 가득하다. 트렁크 리드와 테일램프를 이은 곡선, 4개의 배기 파이프와 대형 디퓨저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트렁크 상단에는 작은 가변식 스포일러를 준비해 공력 성능을 높인다. 지붕이 끝나는 부분은 최대한 높여 소프트톱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적재공간은 225ℓ로 컨버터블 중 큰 편이다.
실내는 2+ 시트 구조의 듀얼 콕핏 구성이 돋보인다. 뒷좌석을 마련하긴 했지만 탑승 공간이라고 하기엔 부족해 "2+2"라 부르지 않는다. 여기엔 로마 스파이더의 히든 카드가 있다. 바로 일체형 윈드 디플렉터다. 지붕을 열었을 때 뒤쪽에서 실내로 들이치는 공기를 차단하는 장치로, 뒷좌석 등받이에 격납돼 있다가 센터 콘솔의 버튼으로 펼 수 있다. 닫을 때는 손으로 직접 누르면 된다. 공기저항과 풍절음을 줄일 수 있어 "필링 오브 에어(Feeling of air)"를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지붕을 열고 달릴 때 실내로 들이치는 외부 소음과 와류가 적어 쾌적했다.
로마 스파이더의 하이라이트인 소프트탑은 5겹의 특수 패브릭으로 이뤄졌다. 까만 직물과 차체 색을 모사한 빨간 직물이 교차하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묘한 색감을 뿜어낸다. 물론,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다른 색을 반영할 수도 있다. 60㎞/h 이하의 속도에서도 13.5초 만에 여닫을 수 있으며 무게도 85㎏에 불과하다. 방음 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잠시 내린 빗방울을 맞이했을 때도 소프트톱만의 감성을 기분 좋게 경험할 수 있었다.
디지털화도 인상적이다. 16인치 디지털 계기판은 다양한 정보를 레이어 방식으로 표시해 첨단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8.4인치 메인 스크린과 8.8인치 동반석 디스플레이도 높은 해상도로 필요한 정보를 보여준다.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는 무선 연결이 가능하며 엔진 시동은 스티어링 휠을 통해 터치로 이뤄진다. 소재는 페라리답게 호화 그 자체다. 경량화를 위한 탄소 섬유 부품이 적지 않지만 가죽의 비중이 더 크다. 강조할 만한 부분은 금속 소재로 치장했다.
▲620마력으로 즐기는 쾌락
엔진은 V8 3.9ℓ 트윈터보를 탑재해 최고출력 620마력, 최대토크 77.5㎏·m를 발휘한다. GT 성향에 맞춰 엔진과 배기 소리는 비교적 얌전하게 조율했다. 그러나 가속 페달에 힘을 주면 폭발적인 가속과 함께 본색을 드러낸다. 엔진과 합을 맞추는 8단 DCT는 즉각적인 변속이 두드러진다. 패들 시프트 레버를 튕겨가며 기어를 조작하는 손맛이 일품이다.
스티어링 휠에 마련한 마네티노는 WET, 컴포트, 스포츠, 레이스 등의 주행 모드를 지원한다. 컴포트 모드는 무리하지 않으면서 여유롭게 햇살과 바람, 풍경을 만끽하며 달릴 수 있다. 역동적인 주행을 원한다면 스포츠나 레이스로 다이얼을 돌리면 된다. 몰입감 높은 속도와 소리를 즐기며 로마의 성능을 한층 더 뽑아 쓸 수 있다. 레이스의 경우 "이 차가 과연 GT가 맞나?" 싶을 정도의 과격함을 뽐낸다.
마네티노 가운데 버튼은 서스펜션의 감쇠력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범피 로드가 있다. 범피 로드는 지방도로의 거친 노면을 반듯하게 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로마와 가장 잘 어울리는 주행 모드를 꼽자면 스포츠 모드 + 범피 로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행 감각은 다양한 섀시 제어 시스템을 통해 GT의 이상향을 가리킨다. 특히 사이드 슬립 컨트롤(SSC) 6.0은 차가 미끄러지는 순간을 정밀하게 예측하고 제어해 안전한 범위에서의 즐거움을 허락한다. 조향 감각은 예리하면서도 부드럽고 가벼워 굽잇길에서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 쉽고 빠르게 운전자가 페라리에 입문할 수 있도록 돕는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낭만의 시대를 떠올리는 페라리
로마 스파이더는 페라리 라인업 중 가장 낭만적이라 할 수 있다. 볼 때와 탈 때 느낄 수 있는 매력의 정도가 이성을 훨씬 뛰어 넘는다. 특히 소프트톱이 선사하는 가치는 빠르기에 집중한 여느 페라리와는 전혀 다른 감성을 제시해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방증한다. 그래서 "로마의 휴일"은 영화 제목뿐만 아니라 이 차와 함께한 순간에 부여해도 적절한 비유일지 모른다. 시작 가격은 3억원 후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