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감 높은 주행 실력 갖춘 오픈카
-자연흡기 엔진 특징 고스란히 드러나
전동화 파워트레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내연기관차들의 위치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 자연흡기 엔진도 마찬가지다. 갈수록 강해지는 배출가스 규제와 성능대비 효율 등을 고려해 일부 스포츠카들의 전유물로만 남고 있다.
운전을 좋아하는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포르쉐는 입문형 제품인 박스터에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을 얹었다. 내연기관이 줄 수 있는 매력을 극대화해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하며 모든 순간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주행에 앞서 간단한 제원을 살펴봤다. 박스터 GTS는 6기통 4.0ℓ 자연흡기 엔진과 7단 PDK변속기 조합으로 최고출력 407마력, 최대토크 43.9㎏·m를 발휘한다. 정지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데 4초가 소요되고 최고속도는 288㎞/h다. 예전 4기통 2.5ℓ 터보를 보낸 결과 출력은 42마력, 토크는 0.1㎏·m 증가했다. 100㎞/h 가속은 0.3초나 줄었다. 여기에 어댑티브 실린더 컨트롤과 직접 연료 분사 방식의 피에조 인젝터, 가변식 인테이크 시스템을 통해 더 역동적인 주행 경험을 선사하며 효율까지 높였다.
자연흡기의 매력은 차를 깨우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속 시원한 사운드와 함께 등장을 알리며 높은 톤으로 숨 고르기를 마친다. 도심 속 일상 주행에서는 큰 불편함이 없다. 경쾌한 가속감을 바탕으로 차분하고 여유롭게 달린다. 스로틀 양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원하는 속도에 차를 올려 놓으며 그 과정이 매끄럽다. 출력이 높은 숫자를 잊을 정도로 쉽게 다룰 수 있으며 그만큼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적다.
차의 본능을 알기 위해서는 스티어링 휠에 붙은 드라이브 모드를 돌리면 된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엔진 회전수를 훌쩍 올리며 달릴 준비를 마친다. 이후 가속페달 양에 맞춰서 강력한 펀치력을 내세워 질주한다. 차는 순한맛에서 매운맛으로 성격을 고치고 화끈한 가속감을 제공한다. 기분이 좋아지고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를 짓는다. 박스터와 호흡을 맞추면서 누구보다 재미있게 도로를 달릴 수 있다.
조금 더 화끈함을 원한다면 스포츠 플러스가 있다. 엔진 회전수가 격하게 뛰면서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자세를 연출하고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내달린다. 몸이 흔들리고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다. 시야가 좁아지고 주변 사물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고성능 엔진 실력을 오롯이 경험하는 순간이다.
사운드는 흥분을 부추기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1,000~2,500rpm 부근에서는 대체로 조용하며 웅웅 거리는 소리만 약간씩 들릴 뿐이다. 다만 회전수를 3,000rpm 이상 올리면 사운드는 완전히 달라진다. 일정 구간을 나눠 음색이 천차만별로 변하며 7,500rpm을 넘긴 뒤 레드존으로 치닫을 때 퍼지는 클라이막스는 이성의 끈을 놓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심지어 중간에 퍼지는 깊은 공명음마저 아름답다. 자연흡기 엔진만 줄 수 있는 소프라노 톤의 밝은 소리가 온 종일 귓가를 울린다.
7단 PDK는 스포츠카 변속기의 표본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안정적이다. 절도 있게 단수를 오르내리고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는다. 엔진을 더 힘차게 돌릴 수 있도록 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자처한다. 요행을 부리지 않고 정확한 타이밍에 제 역할을 다한다. 매뉴얼 모드에서는 짜릿한 손맛과 함께 치명적인 유혹을 전달하기 때문에 좀처럼 얌전해지기 힘들다.
코너에서는 기본기가 빛을 발휘한다. 앞뒤 45:55로 나눈 이상적인 무게배분과 낮은 차체 덕분에 안정감이 뛰어나고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정직하게 코너를 정복할 수 있다. 또 자세제어장치를 모두 끄지 않는다면 위험한 상황은 쉽게 경험할 수 없다. 오버스티어 역시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깔끔한 코너링에는 포르쉐 첨단 기술을 집약한 결과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와 토크 백터링 시스템, 기계식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 포르쉐 스태빌리티 매니지먼트 등 역동적인 주행에 실시간으로 반응해 최상의 움직임을 만들어주는 다양한 기능을 대거 기본으로 넣었다. 빠른 응답성을 갖춘 다이내믹 댐퍼 컨트롤까지 어우러져 이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를 살펴봤다. 외관은 단번에 포르쉐 패밀리임을 알 수 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한껏 부풀린 펜더, 낮은 차체가 대표적이다. 엔진 바로 앞에는 운전석이 있으며 앞뒤바퀴 사이 거리인 휠베이스 정 중앙에 위치해 있다. 여러모로 벨런스가 훌륭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감성을 더하는 소프트톱까지 마련돼 있어 만인의 드림카로 손색없는 모습이다.
718 카이맨 GT4 등에 들어갔던 트윈 테일 파이프 스포츠 배기 시스템도 적용했다. 새들 타입 디자인의 배기 시스템은 GTS를 위해 특별히 개발한 리어 하단부 공간에 위치해 있다. 고성능 타이어(프런트 235/35 ZR 20인치/리어 265/35 ZR 20인치)와 살이 얇은 20인치 실버 휠, 레드 컬러 캘리퍼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실내는 오랜 시간 박스터에서 봤던 구성 그대로다. 세 개의 원형으로 꾸민 바늘 계기판과 작은 화면, 변속기 앞에 놓인 공조장치 버튼까지 이제는 제법 익숙한 모습이다. 세월의 흔적을 박스터도 피해갈 수 없다. 신형 911에서 봤던 화려한 그래픽과 편리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그리워진다.
수납공간도 살짝 부족하다. 작은 글러브 박스와 운전석 뒤쪽에 있는 아담한 센터콘솔이 전부다. 도어 안쪽에 마련한 작은 수납함은 반지갑 하나와 휴대폰을 넣으면 이미 꽉 찬다. 반면 트렁크는 전기차처럼 앞뒤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엔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중앙에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혜택을 봤다. 앞은 깊고 뒤는 옆으로 넓은 구조다..
몇 가지 아쉬움이 차의 가치를 떨어트리지는 않는다. 자연흡기 엔진과 완벽한 주행 실력 만으로도 구입할만한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디자인과 구성을 비롯해 각종 부품 등 개별 요소들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파워트레인과 협업해 정확한 움직임, 그리고 주행의 즐거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시대적 흐름을 생각하면 더 없이 소중하다. 포르쉐는 박스터의 후속으로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선택했다. 즉 자연흡기 박스터는 718이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구입해야 할 명분이 더욱 명확해졌고 시기도 앞당겨졌을 거라 생각한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박스터는 GTS 자동차 역사의 산물이자 내연기관의 찬란한 유산이다. 가격은 1억3,530만원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