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7마력으로 뒷바퀴만 굴려, e-LSD로 주행 안정성 높여
-트랙과 가장 잘 어울리는 캐딜락 지향
올해 19주년을 맞이한 캐딜락의 고성능 브랜드 "V". 대배기량 엔진을 기반으로 아메리칸 럭셔리를 표방하던 캐딜락의 영역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여기에 "블랙 윙"이란 명칭의 최상위 등급을 매겨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이기도 했다. 캐딜락의 또 다른 상징으로 자리한 CT5-V 블랙 윙을 인제 스피디움에서 만나봤다.
▲양의 탈을 쓴 늑대, 그 자체
흔히 외유내강의 자동차를 두고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표현한다. CT5-V도 마찬가지다. 외관은 시원하게 뻗은 직선들을 중심으로 반듯한 캐딜락의 디자인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곳곳에 부착한 에어로파츠가 마치 제 모습을 숨기다가 만 늑대의 꼬리처럼 야성을 암시한다.
전면부는 방패형 그릴로 브랜드 정체성과 대담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좌우로 뻗은 가로형 헤드램프는 캐딜락 특유의 세로형 LED 주간주행등과 대조를 이룬다.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간 인상을 줘 제법 멋스럽다. 여기에 높게 솟은 후드가 큰 엔진을 꾹꾹 눌러 담은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범퍼 좌우의 흡기구는 공격적인 표정을 만듦과 동시에 앞바퀴 브레이크의 냉각을 돕는다.
측면은 날렵한 쿠페형 세단의 실루엣을 바탕으로 연출했다. 과거 캐딜락의 보수적인 세단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뒷트임을 한 눈매를 닮은 DLO(Day Light Opening)는 캐릭터라인과 함께 차를 더 길어 보이게 한다. 블랙 윙은 사이드 스커트와 전용 19인치 휠로 차별화했다.
뒷모습은 블랙 윙을 상징하는 듯한 대형 카본 파이버 립스포일러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가파르게 솟은 형태에서 초고속 주행에서도 묵직한 다운포스를 기대할 수 있다. 범퍼 아래엔 사각형 쿼드 머플러를 장착해 웅장한 배기음을 들려준다. 차체는 길이 4,945㎜, 너비 1,885㎜, 높이 1,440㎜, 휠베이스 2,947㎜로 준대형 세단 크기다.
실내는 레이싱카에 버금가는 구성이 돋보인다. 곳곳에는 카본 파이버 트림을 반영해 경량화를 강조했고 스티어링 휠 상단엔 중앙 지점을 운전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빨갛게 띠를 둘렀다. 시트는 스포츠 주행에 맞춰 완벽한 버킷 형태를 이룬다. 여기에 V 로고와 빨간색 안전벨트 등으로 고성능 감성을 키웠다. 그럼에도 앞좌석 마사지, 에어 이오나이저, 16 스피커 AKG 서라운드 오디오, 노이즈 캔슬링, 듀얼 패널 선루프, 무선 스마트폰 연결 및 충전 등의 품목을 통해 일상에서의 편의성도 놓치지 않았다.
디스플레이도 디지털화 흐름을 적극 따랐다. 12인치 디지털 계기판은 일반적인 정보 외에도 중력 가속도, 구동 시스템 상황, 브레이크 온도 등 트랙 주행에 필요한 내용도 표시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운전자의 전방 시야에 대한 집중력을 키운다. 센터페시아의 10인치 메인 스크린에는 평범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데이터 레코더(Performance Data Recorder)도 품고 있다. PDR은 자동차용 블랙박스처럼 전방 주행 녹화와 함께 속도, 엔진 회전수, 기어 단수, 조향 각도, 중력 가속도 등을 영상에 표기한다.
▲스포츠 세단의 가치
CT5-V는 최고출력 677마력, 최대토크 91.9㎏·m를 발휘하는 V8 6.2ℓ 수퍼차저 엔진을 얹어 내연기관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브랜드 역사상 최대 동력은 10단 자동변속기를 거쳐 뒷바퀴에만 내보낸다. 그러나 고출력을 접하는 데에는 그리 높은 운전 실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양한 동역학 시스템이 매 순간마다 차체를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물론, 주행 모드를 바꿔 야성적인 맛을 경험할 수도 있다.
주행 모드는 가장 편하게 탈 수 있는 투어와 스포츠, 스노우/아이스, 트랙, 마이 모드(My Mode), V-모드를 제공한다. 특히, 스티어링 휠 왼쪽의 버튼으로 활성화하는 V-모드는 스태빌리티 컨트롤 시스템과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4.0(MRC 4.0), 전자식 리미티드 슬립 디퍼런셜(eLSD)을 주행 환경과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르게 설정할 수 있어 트랙에서 최적의 설정값을 찾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역동적인 주행을 위해 태어난 만큼 론치 컨트롤도 가능하다.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엔진 회전수와 슬립 타겟을 직접 조절할 수 있다. 정지 상태에서 뒷바퀴를 따로 회전시켜 온도를 높일 수 있는 라인 록(Line Lock)도 지원한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엔진의 일부 실린더 작동을 쉬게 하는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 시스템도 있지만 서킷에선 통할 리 없다.
주행 만족도는 상당하다. V8 엔진의 부드럽고 강한 회전 질감과 두터운 사운드, 직분사 엔진 특유의 거친 숨결, 슈퍼차저의 과급 성능이 조화를 이루면서 가속을 부추긴다. 힘이 넘칠 법도 하지만 eLSD가 구동력을 효과적으로 개입하면서 동력 손실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차체의 거동도 걸러낸다. 마치 게임을 하다 치트 키를 쓰는 것처럼 흐트러짐 없는 주행을 약속한다.
변속기는 주행 상황에 따라 변속 시점을 최적화하는 다이내믹 퍼포먼스 모드(Dynamic Performance Mode)를 내장했다. 코너를 탈출할 때마다 가속을 쉽게 이어갈 수 있어 마치 차와 운전자가 합을 맞춘 듯한 느낌이 두드러진다. 오르막과 내리막에서도 각기 다른 변속 시점을 선사해 보다 빠른 달리기를 돕는다. 인제스피디움의 내리막 직선주로에선 240㎞/h에 가까운 속도도 가능했다.
민첩한 달리기는 하체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캐딜락 전매특허인 MRC 4.0은 아주 빠르고 유연하게 노면 충격에 대응해 역동성과 승차감을 양립한다. 덕분에 코너를 통과할 때나 연석을 밟았을 때의 느낌은 상쾌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의 제동력이다. 오랫동안 꾸준히 제 성능을 발휘해 감속하는 매 순간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만들어줬다. 하지만 타이어가 아쉬웠다.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S는 일반 도로에서 최적의 성능을 선사하지만 서킷에선 한계가 일찍 찾아와 랩을 거듭할수록 비명을 지르기 일쑤였다.
▲재미있는 캐딜락
CT5-V 블랙 윙은 최고성능을 통해 캐딜락도 재미있게 탈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한다. 원석 같은 고성능 파워트레인을 다양한 장치로 매만져 보석 같은 주행 감각으로 이끌었다. 누군가는 캐딜락 본연의 색깔을 잃었다고 말하겠지만 세상은 항상 새로운 매력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CT5-V 블랙 윙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캐딜락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준다. 가격은 1억4,000만원.
인제=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