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2023년 다사다난했던 해로 남을 전망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연초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과 고금리, 고물가 등의 이유로 판매가 주춤했지만 하반기 들어 빠른 회복을 보였고 역대 최고 수출액을 기록하면서 긍정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또 다양한 형태의 크로스오버 등장 및 효율을 중요 시 하는 하이브리드 차가 강세를 보였고 충전 인프라, 비싼 가격 등을 이유로 전기차는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이 외에 국내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이 본격화됐고 일본차와 미국차는 희비가 엇갈리며 큰 격차를 보였다. 올 한해 자동차 산업을 뜨겁게 달궜던 내용가운데 핵심으로 꼽히는 소식 10가지를 정리했다.
1. 교차로 우회전 논란
1월22일부터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이륜차를 포함한 모든 자동차는 우회전 신호가 있는 곳에서 신호를 따라 우회전하고 신호가 없다면 일단정지 후 주변을 살피고 보행자가 없을 때 통과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승용차 6만원, 승합차 7만원, 이륜차 4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한다.
계도 기간을 포함한 시행 초기에는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사람이 없을 경우와 건너기 전 상태 등 다양한 상황에서 우회전 여부를 인지하지 못한 운전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이를 잘못 인식한 사람들이 블랙박스 등으로 신고를 하면서 정확한 개념 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 등 유관기관은 우회전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적극 홍보하는 모습도 펼쳐졌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동안 교차로 우회전 사고 건수는 8,423건으로 전년 동기(8,555건) 대비 1.6% 감소했다. 부상자는 1만872명으로 1.7% 줄었다. 정부는 우회전 개편 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으로 판단하고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전문가들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2. 쌍용차, KG로 이름을 바꾸다
지난 3월, 쌍용자동차가 KG모빌리티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1988년 동아자동차에서 쌍용차로 바뀐 지 35년 만의 사명 변경이다. KG모빌리티는 2022년 11월 기업회생절차 종결과 함께 KG그룹 가족사로 새 출발했다. 지난 3월엔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변화를 위해 사명을 변경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진행 중이다. 이어 4월엔 커스터마이징 용품과 특장차 개발 등 KG모빌리티와의 시너지를 위해 특장법인 KG S&C를 설립했으며 7월에는 에디슨모터스를 인수해 KGM커머셜로 변경했다.
하반기부터는 보다 적극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지난 10월 BYD와 전기차 배터리 팩 공장 설립 MOU 체결,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공동개발 협약 체결, 인증 중고차 시장 진출 계획 등의 사업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해외에선 베트남 푸타그룹과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사우디아라비아 SNAM사와 제품 라이선스 및 KD 공급 계약 체결을 통해 2024년 제품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최근 KG모빌리티는 새 브랜드명으로 영문 약자인 "KGM"을 채택했다. 이달 전국 전시장 간판과 제품에 반영하는 사명 레터링을 개선하고 24년부터 부품 및 서비스센터 등의 인프라도 새 간판을 도입할 예정이다.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한 KGM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3. 승용차 시장, 하이브리드 역대급 강세
고유가와 디젤 지양 흐름이 이어지면서 고효율 저탄소 배출의 하이브리드카 수요가 급증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등록된 국내 신차 가운데 하이브리드는 총 24만9,854대로, 전체 차종의 19.9%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보다 43.5%나 늘어난 수치다. 지금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사상 처음으로 디젤차를 추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미 수입차 시장에서는 하이브리드가 디젤차는 물론, 가솔린차까지 앞질렀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 중 하이브리드는 9,996대로 전체 차종 중 가장 많았다. 수입 하이브리드가 가솔린을 앞선 건 2006년 9월 수입 하이브리드가 상륙한 이후 처음이다.
4. 전기차 성장세 둔화
하이브리드 성장과는 반대로 국내 전기차 시장은 부진이 이어지면서 성장세에 적신호가 켜졌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11월 국내 전기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는 10만4,858대로 전년 동기(11만6,419대) 대비 9.9% 감소했다.
특히 시장 존재감이 큰 국산차가 급감했다. 현대차 아이오닉 5는 올해 1~11월 1만5,814대가 출고돼 전년 대비 40.7% 줄었다. 기아 EV6도 1만6,534대로 전년 대비 30% 떨어졌다.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은 61.6%, GV60은 42%, GV70 전동화 모델은 25.4% 하락했다.
반면 수입차는 다소 성장했는데 값을 크게 낮춘 중국산 테슬라의 영향이 컸다. 전년보다 7.4% 늘어난 1만5,439대를 판매한 것. 이와 함께 벤츠와 BMW도 각각 7,570대, 7,160대의 전기차를 내보내 신차 효과를 앞세워 70% 이상의 성장세를 이뤘다. 하지만 절대적인 판매를 차지하는 국산 전기차의 감소폭이 더 커 전체적인 하락을 나타냈다.
이 같은 전기차 성장 둔화 배경은 국산과 수입이 다르게 분석된다. 국산차는 비교적 가격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높은 가격이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여기에 충전 불편 등의 부정적인 사용 경험이 더해지면서 하이브리드로 수요가 이동했다는 평가다. 수입차의 경우 브랜드별 제품이 늘면서 선택지가 많아졌고 일부 제품이 가격 인하를 단행하면서 늘어났다.
5. 일본차 뜨고 미국차 졌다
반일 감정이 정리되면서 일본차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일본 브랜드의 수입차는 올해 1~10월 1만8,852대가 판매돼 전년 동기 대비 35.3% 증가했다.
특히 일본차에 고루 분포된 고효율 하이브리드가 인기를 끌면서 성장세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는 렉서스다. 같은 기간 1만1,007대가 등록돼 93% 늘었다. 토요타 역시 6,771대가 출고돼 26.3% 많아졌다. 혼다는 1,047대로 전년 대비 62.8% 감소했지만 파일럿, CR-V, 어코드 등의 신차를 연이어 출시하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반면 미국 브랜드는 2만469대가 출고돼 같은 기간 22.6% 감소했다. 테슬라가 1만1,876대 판매돼 실적을 이끌었지만 지프, 포드 등이 각각 4,000대에도 못 미쳤다. 가격 인상과 효율이 낮은 가솔린 제품이 주를 이루면서 시장 장악력을 잃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6. 대기업 인증 중고차 사업 개시
지난 2019년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배제된 중고차 매매업에 현대차와 기아가 진출했다. 그 동안 기존 중고차 업계의 반발이 거센 탓에 늦어지긴 했지만 상생안을 마련한 결과 올해 10월부터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상생안에 따라 현대차, 기아는 5년/10만㎞ 이내 자사 브랜드 중고차를 대상으로 자체 테스트를 통과한 인증 중고차만 취급한다. 판매는 100%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다.
사실 중고차시장이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레몬시장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판매자가 자동차의 주행거리나 성능, 상태 등의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판매자와 소비자간 정보의 비대칭이 상대적으로 심해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기업들은 만든 사람이 끝까지 케어 한다는 철학 아래 "투명"과 "신뢰"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를 통해 국내 중고차시장의 선진화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중고차 시장 점유율은 2024년 4월 각각 2.9%, 2.1%, 2025년 4월 4.1%, 2.9%로 유지할 예정이다. 이 외에 KG모빌리티도 향후 인증 중고차 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밝혔다.
7. 중국산 LFP 배터리 탑재 BEV 국내 대거 출시
높은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LFP 배터리를 탑재한 BEV가 잇따라 국내에 등장했다. 현대차, 기아가 중국산 리튬-이온 배터리를 도입한 적은 있었지만 LFP가 국산차에 얹히기 시작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KG모빌리티는 토레스 EVX에 BYD의 LFP 배터리를, 기아는 레이 EV에 CATL의 LFP 배터리를 장착해 원가를 줄였다.
시장 반응은 뜨겁다. 토레스 EVX는 출고를 본격화한 지난달 1,667대가 판매돼 내연기관 토레스(1,546대)를 넘어섰다. 레이 EV도 비교적 짧은 주행가능거리(205㎞)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10월부터 월 1,300여대가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업계에선 LFP 배터리가 에너지 밀도가 낮지만 전기차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LFP 배터리는 향후 캐스퍼 EV 등 출시 예정인 소형 전기차에도 채택될 것으로 알려졌다.
8. 다양한 크로스오버 신차 출시
올해는 유난히 세단과 SUV 스타일을 결합한 크로스오버 신차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푸조는 중형 세단이었던 408에, 토요타는 16세대를 맞이한 크라운에 크로스오버 스타일을 담았다. 쉐보레도 단종된 크루즈와 말리부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선보였다.
크로스오버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SUV의 다목적성과 세단의 안락함을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단거리 시내 주행, 주말에는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것. 특히 사라지고 있는 세단의 빈자리를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차종 생태계를 조성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9. 디젤 소형 트럭 단종
정부가 24년 1월1일부터 대기관리권역법 개정을 통해 디젤 엔진을 얹은 소형 화물차, 어린이 통학용 차의 신규 등록을 금지한다. 디젤 소형 트럭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국내 디젤 소형 트럭을 판매하던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포터, 봉고 디젤을 단종했다.
디젤 소형 트럭은 LPG와 전기가 대체하게 된다. 현대차는 LPG 2.5 터보 엔진을 탑재한 1톤 트럭 "2024 포터 2"를 출시했다. LPG 포터의 부활은 2003년 이후 20년만이다. 이어 기아도 터보 LPG 엔진을 탑재한 "봉고 3" 1톤 트럭을 시장에 내놨다. 기아는 LPG 제품이 생산되지 않았던 1.2톤 트럭도 LPG로 변경하고 자동변속기를 확대 적용했다. 1톤 트럭의 대표 차종인 포터와 봉고가 모두 기존 디젤 엔진 대신 LPG로 교체된 것이다.
새로 개발한 LPG 2.5 터보 엔진은 터보차저를 적용해 저속에서의 토크를 개선하고 디젤 엔진 대비 출력을 24마력 높여 최고 출력 159마력의 우수한 동력성능을 제공한다. 업계에서는 연간 약 15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1톤 트럭 주력차종이 LPG로 전환됨으로써 대기질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형 LPG 트럭은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대폭 줄여 정부로부터 친환경성을 인정받았다.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등 각종 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만족해야 하는 3종 저공해 자동차 인증을 획득했으며 북미의 엄격한 배출가스 규제인 SULEV30도 만족했다.
10. 세계적인 공급난 위기에도 한국차 성장
2023년 한국의 자동차 생산이 세계적인 공급난 속에서도 400만대를 돌파했다. 이는 2019년 이후 무려 5년 만의 성과이자 2017년 이후 최대 실적이다. 그동안 한국의 자동차 생산은 2016년 사상 최대인 422만대를 정점으로 2019년에는 395만대로 400만대 벽이 무너졌고 이후 2021년에는 346만대까지 하락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375만대로 반등에 성공했고 올해 다시 410만대로 400만대 벽을 넘어섰다.
내수는 반도체 등 부품 수급 상황이 개선되고 생산과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전년대비 3.3% 증가한 174만대에 달했다. 수출은 미국 및 유럽 등 주요 시장의 경기침체 우려에도 견조한 수요가 지속되며 전년대비 17.4% 증가한 270만대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전기차 수출은 전년도 미국 IRA법안 통과로 위축이 우려됐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통상협상과 제조사의 상업용 리스 및 렌트카 판매비중 확대로 전기차 수출이 전년대비 66.3% 증가했다.
덕분에 수출액도 최대 성과를 기록했다. 국내 자동차 최대 기업인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7월1일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총 310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239억 달러 대비 29.6% 증가한 금액이다. 기아의 수출액도 180억 달러에서 235억 달러로 30.7% 늘어났다.
이는 수출 물량에서 전기차 등 고부가가치 차종의 비중이 확대된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아이오닉5, EV6 등 전기차 모델이 글로벌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수출 증대에 기여했다. 실제로 현대차, 기아의 전기차 수출은 2020년 11만 9569대에서 지난해 21만 8241대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오토타임즈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