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세련된 쇼퍼드리븐 역할 자처하는 기함
-플래그십 수준 높이는 승차감 기술 뛰어나
최근 플래그십 세단의 흐름은 극단적으로 양분화 되어 있다. 국산은 제네시스 G90이 독보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수입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로 나뉜다. 높은 점유율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저마다의 특장점을 내세운 매력적인 차들이 가득하다. 아우디 대표 기함인 A8도 그 중 하나다.
사실 A8에게도 전성기가 있었다. 강남 바닥을 주름잡으며 웬만한 플래그십 세단들도 쉽게 넘보지 못할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젊고 세련된 리더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없어서 못 파는 차가 A8 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선호하는 소비층의 흐름이 바뀌면서 다소 주춤한 모습이지만 A8은 여전히 플래그십으로서 명맥을 유지한다. 3일동안 접해본 A8 60 TFSI 콰트로는 과거의 영광을 누리기에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숨은 보석을 찾은 기분이며 시종일관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디자인&상품성
롱휠베이스가 기본인 60 TFSI 콰트로는 길이만 5.3m에 이르고 앞뒤바퀴 사이 거리를 뜻하는 휠베이스는 3.1m를 훌쩍 뛰어 넘는다. 너비와 높이 역시 각각 1.9m, 1.5m에 달하는 대형 세단이다. 크기를 넘어 차를 꾸미는 각 요소에서도 웅장함이 느껴진다. 앞은 거대한 싱글프레임 그릴이 시선을 끈다. 다각형 모습은 같지만 면적을 최대한 넓혔고 독특한 크롬 장식을 촘촘하게 넣어 화려하다. 아우디 및 콰트로 로고는 자연스럽게 동화되며 카메라를 비롯해 각종 레이더 및 라이다 센서는 안쪽에 숨겨 놓았다.
디지털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는 X형상과 파란색 LED 조명으로 시각화 된 아우디 레이저 라이트를 탑재해 새로운 아우디 디자인의 진보적이며 우아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쪽에만 130만개 마이크로미터 LED 픽셀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넓은 가시 범위를 밝힌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비롯해 주변 사물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한 뒤 최적의 시야를 확보하는 능력이 훌륭하다. 화려한 오프닝 및 클로징 세레머니는 덤이다.
옆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20인치 다이아몬드 컷팅 휠이 인상적이다. 아래쪽에는 길게 크롬 선을 추가했고 도어와 벨트라인 주변도 온통 반짝인다. 날렵한 아치형 윈도우와 굵직한 캐릭터라인 등이 고루한 플래그십의 편견을 지운다. 뒤는 폭을 강조한 선들로 가득하다. 와이드한 램프는 물론 중간을 장식하는 크롬도금, 범퍼에도 가로로 길다란 띠를 둘렀다. 여기에 번호판과 차의 성격을 나타내는 각종 배지까지 빼곡하게 채워 넣은 모습이다.
실내는 익숙하다. 여느 아우디에서 보던 모습과 같다. 풀 디지털 계기판과 두 단락으로 나뉜 센터페시아 모니터, 센터터널은 물론 각종 버튼류의 형상까지 눈에 익는다. 화면 속을 채우는 그래픽은 다소 밋밋하다.
소프트웨어 개선을 통해 UI 경험을 극대화한 라이벌과는 사뭇 다르다. 기능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화려한 볼거리나 눌러볼 게 적다는 건 아쉽다. 또 공조장치 터치 패널은 기능이 많고 단락을 촘촘히 구분해 놓아서 직관성이 다소 떨어진다. 이런 부분은 향후 개선이 필요할 듯하다.
소재는 플래그십다운 모습을 잘 보여준다. 질 좋은 가죽과 알칸타라를 활용해 차를 꾸몄고 각 패널은 유광 블랙과 금속 소재, 우드로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시동을 켜는 순간 스르륵 올라오는 뱅엔올룹슨 트위터와 한 바퀴 회전하는 송풍구도 마음을 훔친다. 20개가 넘는 스피커에서 울리는 3D 서러운드는 물론 자동 디퓨저 기능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 요소도 빠짐없이 넣었다.
2열은 A8의 가장 큰 장점이다. 큼직한 전동 시트를 비롯해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비행기 1등석 수준의 넓은 공간도 연출 가능하다. 개별 모니터는 물론 발 받침대도 전부 전동으로 조절 가능하다.
마사지 시트는 강하면서도 섬세하고 손에 닿는 부분은 거의 다 열선이 들어온다. 암레스트에는 별도 태블릿이 있으며 터치로 실내 기능을 전부 조작할 수 있다. 옆과 뒤의 햇빛가리개를 비롯해 전용 선루프, 조명, 공조장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을 빠짐없이 제공한다.
네 개의 송풍구와 휴대폰 무선충전 패드, USB-C타입 충전 포트 두 개, 시거잭, 230V 콘센트까지 마련해 여유롭고 편안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다. 심지어 천장에는 조명이 들어오는 거울이 있어 차에서 내릴 때 옷차림과 얼굴도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트렁크는 무난하다. 엄청나게 크고 광활하지는 않지만 골프백은 무리 없이 들어간다.
▲성능
60 TFSI 콰트로의 파워트레인은 4.0ℓ V8가솔린 직분사 터보차저 (TFSI) 엔진에 8단 팁트로닉 자동변속기 조합이다. 최고출력 460마력, 최대토크 67.3㎏·m를 발휘하며 네바퀴굴림을 기본으로 정지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 데 단 4.4초가 걸린다. 크고 묵직한 차의 성격을 감안하면 우수한 숫자들이다. 그만큼 부족함 없는 힘을 바탕으로 기대할만한 결과값을 보여준다.
시작은 고요하다. 거친 엔진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자세를 낮추며 내달린다. 담백하면서도 정교하게 스로틀 반응을 유도하고 부드러운 재 가속이 가능할 정도로 여유롭다. 플레그십 세단이라는 차의 성격을 감안하면 무척 이상적인 세팅이다.
가속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배기량 엔진이 주는 풍부한 힘을 바탕으로 차를 손 쉽게 고속 영역에 올려 놓는다. 과정이 스포티하거나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원하는 속도 이상을 보여준다. 그저 탑승자는 여유로운 이동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소리 없이 강하게 무리를 이끌고 도로 위 가장 앞 단에서 달린다.
쇼퍼드리븐 성격답게 장거리 크루징을 이어나갈 때 만족이 배로 커진다. 여기에는 획기적인 서스펜션 세팅과 승차감이 한 몫 한다. 전면부 카메라를 통해 노면을 미리 식별하고 전자 제어 섀시 플랫폼을 통해 서스펜션을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액티브 서스펜션이 주인공이다. 단순 댐핑컨트롤을 뛰어넘어 차체를 통으로 들어 올리고 낮춰 최적의 승차감을 만들어낸다.
구현 과정은 매우 빠르며 탑승자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모든 길이 잘 닦인 포장도로 같다는 것이다. 매우 불규칙한 국도의 B급 노면을 지나는 순간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심지어 과속방지턱은 눈에 보이는 높이보다 절반은 깎아놓은 뒤 통과하는 느낌이다. 라이벌의 지능화된 서스펜션 기술과 비교해도 손색 없으며 오히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났다.
아우디의 기술력을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콰트로 시스템이다. 사륜구동의 보편화를 알린 브랜드답게 노하우와 기술 완성도가 A8에서 정점을 찍는다. 고속 직진 안정성은 물론이고 추월 가속을 하거나 코너 탈출 시 재가속에 들어가도 차는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튀어나간다. 믿음이 저절로 커지며 운전에 자신감이 붙는다. 사륜구동은 험로 탈출 시에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며 빠르고 정확한 구현에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주행 보조 기술도 돋보였다. 무척 자연스럽고 능동적인 역할을 자처한 것. 실제로 아우디는 누구보다 먼저 레벨 3 자율주행 영역에 들어가 테스트했던 회사다. 이러한 도전과 체계적인 기술 데이터가 쌓여 양산차인 A8에서 빛을 발휘한다. 차선과 차간 거리를 맞추는 능력이 수준급이고 여러 변수에도 당황스럽지 않게 대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티어링 휠 뒤에 붙은 조작 레버만 바꾸면 완벽할 듯하다.
▲총평
A8은 아우디 기술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누구보다 지능화된 자세로 전진하는 플래그십 세단이다. 주행하는 순간마다 진보된 가치를 경험할 수 있으며 능동적인 반응을 앞세워 탑승자에게 편안함을 제공한다. 브랜드 특유의 세련된 디자인과 기함에 어울리는 고급 소재, 감성 품질도 정상을 향한다. 옛 전성기를 재현하기에도 손색없으며 획일화된 대형 세단 시장에서 재 평가가 필요한 차가 A8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