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전기차 개발 산실로 평가 받아
-현대차·기아 EV 저력의 비결 명확해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 EV6, EV9 등 현대차그룹 전기차가 최고의 상품성을 갖추기까지 끊임없는 담금질이 계속되는 곳, 바로 남양기술연구소다. 현대차·기아가 지난 27일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남양기술연구소의 전동화 차 개발 핵심 연구 시설을 공개했다.
전기차 바퀴에 회전축을 연결해 고속으로 구동계 부품을 작동시키고 신형 전기모터 개발과 테스트에 한창이다. 반도체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밀폐 공간에서는 연구원들이 배터리 분석에 여념이 없다. 이처럼 모두의 노력과 결실이 맺어지며 높은 상품성을 갖춘 전기차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라인업은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 영향력 있는 자동차 기관과 매체가 주관하는 시상식을 석권하며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E-GMP 기반의 전기차들이 세계 3대 올해의 차를 모두 휩쓰는 등 남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저력엔 국내 최대 전기차 핵심 기지인 남양연구소가 있다. 남양연구소는 1995년 출범한 종합기술연구소로 신차 및 신기술 개발은 물론 디자인, 설계, 시험, 평가 등 기반 연구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승용은 물론 상용 등 전 차종에 대한 연구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미래 BEV를 이끄는 심장,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
먼저 살펴본 곳은 전동화시험센터다.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체제 전환에 따라 기존 파워트레인 개발 조직이 전동화 조직으로 개편된 곳이다. 이곳에서는 신차가 양산에 이르기 전까지 충분한 성능 개발을 통해 EV 품질을 개선하고 확보하는 활동을 담당한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전동화시험센터 내에 있는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이다. EV 핵심 구동계인 모터와 인버터의 성능을 사전 개발하고 실차 효율을 평가해 전기차가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특히, 실도로에서 이뤄지는 주행 테스트와는 달리 실내 시험 공간 내에서 가혹한 테스트를 반복해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모사해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신속한 원인 파악과 개선으로 EV의 품질 제고 및 강건화를 가능하게 한다.
시험실에 들어서자 좌우에 위치한 여러 개의 시험실 유리창 너머로 "위이잉" 대는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총 3곳으로 이루어진 시험실 내부에는 모터와 인버터를 측정하는 커다란 장비들이, 그리고 한쪽에는 현대차 아이오닉 5 차량이 장비에 맞물려 있었다.
전동화구동시험3팀 곽호철 책임연구원은 "모터 단품 시험부터 차량 양산까지 종합적인 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3가지 동력계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동력계 장비의 개수에 따라 크게 1축과 2축, 그리고 4축 동력계 실험실로 나눠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1축 동력계 시험실은 모터와 인버터의 기본 특성에 대한 시험을 하는 곳으로 단품 시험이 이뤄지는 곳이다. 주로 차 개발 초기 단계에 이루어지는 시험으로 모터 시스템의 성능, 효율 개발을 목적으로 한다.
시험이 이루어지는 구동계에는 냉각과 윤활을 위한 오일펌프, 냉각수 쿨러와 배터리 시뮬레이터 등이 연결돼 있어 다양한 충전 상태(SOC, State Of Charge) 조건에 따른 평가와 개발이 가능하다.
연구원들은 모니터를 통해 방금 시험된 모터의 토크, 전력, 전류 맵, 구동 및 시험 효율 특성에 대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담당 연구원에 따르면 1축 동력계 시험실에서 국가별 모터, 인버터 기준 및 요구 조건에 대한 연구 시험도 수행하고 있어 글로벌 시장용 제품 개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했다.
2축 동력계 시험실은 모터와 인버터에 감속기, 구동축을 추가해 실제 차의 구동계를 모사한 환경이 구축돼 있다. 파워 일렉트릭(PE, Power Electric) 시스템 전체의 효율과 매핑, 냉각, 열해 시험으로 필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 검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기차 구동계 시스템이 작동되자 이와 연결된 구동축이 실제 주행하는 것처럼 빠르게 회전했다. 시험실 한쪽에는 구동계와 연결된 전자식 오일펌프(EOP)가 보였다. 이를 통해 고열로 인한 영향이나 냉각 성능을 더욱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으며 해당 시험 결과를 기반으로 최적화 매핑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아이오닉 5가 올라가 있는 4축 동력계 시험실은 실체 차를 직접 구동해 사륜구동(AWD) 포함 구동계 전체의 시험 평가가 가능한 곳이다. 배터리 시뮬레이터를 사용했던 1, 2축 시험실과 달리 전기차에 탑재되는 실제 배터리를 직접 활용하며 오너의 주행 환경과 동일한 조건에서 평가가 이뤄진다. 그만큼 모든 영역에서의 EV 성능을 가장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시험 항목으로 파워 일렉트릭 시스템 효율, 매핑 검증, 에너지 손실 분석, 냉각 및 열 관리 등이다. 전비 평가와 같은 인증 관련 시험도 이루어진다. 또 전기 모터가 과열되지 않게 출력을 제어하는 "부하경감(Derating) 현상" 최소화 연구와 함께 경쟁사 차 시험을 통해 PE 시스템 개발 방향을 분석하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운전석에 로봇이 기어, 액셀, 브레이크 등을 조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운전자의 역할을 대체하는 이 로봇은 가속과 제동을 위해 페달을 밟는 동작을 사람과 유사하게 따라 하고 심지어 자동으로 변속까지 할 수 있다.
연구원이 장비를 가동하자 실제 아이오닉 5 구동축에 연결된 장비가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속에 따른 토크, 모터 온도, NVH 파형 등이 그래프로 나타났다. 차 이용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운전 영역에 대한 효율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모습에서 차량 품질 확보를 향한 의지가 느껴졌다.
현대차·기아 전동화구동시험 담당 연구원들은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서 얻은 다양한 데이터를 공유하며 전기차 설계 및 개발 관련 부서들과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설계 측면에서 의도된 사양의 성능과 효율이 제대로 구현되는지 검증하고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부분은 시험 데이터를 분석해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형태다. 또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신차의 콘셉트나 기술 전략 수립에 도움을 주고 있다.
모터 단품부터 차량 양산까지 전기차 동력계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설을 직접 둘러보며 현대차·기아의 고성능 EV 차 개발 역량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EV 상품성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배터리 기술 내재화의 중심 "배터리 분석실"
이어서 방문한 기초소재연구센터 소속 "배터리 분석실"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분석해 세부 구성 물질을 연구하는 곳이다. 배터리 셀을 구성하는 소재에 대한 정밀 분석을 통해 셀의 성능, 내구성, 안정성 등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
배터리 분석실은 소재 연구 특성상 온/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드라이룸 환경 하에 운영되고 있었다. 재료분석팀 이재욱 팀장은 "전기차 배터리는 소재 특성상 수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일정 온도와 습도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드라이룸이라는 특수환경에서 셀을 해체하고 분석을 진행해야 신뢰성 있는 분석 결과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분석을 위해 배터리가 처음 옮겨지는 장소는 "셀 해체실"이다. 배터리 셀의 구조 파악과 구성 소재 분석을 위한 시료 채취 작업이 진행된다. 더욱이 혹시 모를 화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 벽면, 천장을 비롯해 테이블과 같은 기본 설비 모두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마감돼 있다. 또 해체실 한편에는 자동소화 설비가 적용된 흄후드와 각종 화재 차단 설비가 곳곳에 비치돼 있다.
재료분석팀 정이든 파트장은 "배터리 셀 해체 시 발생할 수 있는 화재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위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2023년 연구소 최초로 셀 해체 전용 공간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채취된 시료는 드라이룸의 "전처리실"로 옮겨진다. 이곳에서는 정밀 분석 장비에 시료가 장입될 수 있도록 글로브 박스 내에서 시료 절단 및 샘플링 작업이 이어진다. 이러한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배터리를 구성하는 일부 소재는 수분과 산소에 매우 민감하여 시료 샘플링 과정에서 해당 소재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샘플링 된 시료는 이후 "메인 분석실"로 이동한다. 이곳에서는 배터리 구성 소재에 대한 기본적인 재질 및 화학구조 분석 등 정밀 분석이 진행된다. 분석 장비 가운데 레이저 광원을 활용, 물질 간 결합을 분석하는 라만분광분석기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시료 표면에 레이저를 쬐어 나온 신호를 기반으로 물질 특성을 분석하는 장비다. 반도체 웨이퍼나 배터리 분리막 코팅 소재 등의 구조 분석에도 활용된다고 한다.
이 외에 배터리 분석실에서는 다양한 시험을 통해 배터리 설계 사양 및 내구성, 충·방전 조건에 따른 성능과 수명 평가 등을 확인하며 필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품질 문제에 대응한다. 또 현대차·기아가 자체 개발 중인 차세대 배터리에 적용될 신규 소재에 대한 분석도 진행하고 있다.
회사가 배터리 소재 기술을 집중 연구하는 것은 차세대 배터리 개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소재 단계에서 그 특성을 이해하고 개선하면 문제점을 미리 알고 예방할 수 있다. 또 최적의 소재 개발을 통한 전체적인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 전기차 혁신을 선도하기 위해 소재 단위까지 연구하는 모습처럼 미세한 격차를 만들기 위한 현대차·기아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남양(화성)=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