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 주택을 마련하고 지낸 지 1년이 지났다. 과거 잠시 병원에 누워 있을 때 그렸던 꿈을 드디어 이뤘다. 사람을 더 사랑하며 자연을 더 자주 찾겠다는 2017년의 꿈을 이루기까지 6년이 걸렸다. 그 동안 전국의 자연 속 예쁜 집을 찾아 다녔다. 남해 바닷가부터 경북 산골과 지리산 둘레길의 그림 같은 집을 거쳐 강원도와 경기도 여주, 양평, 가평을 훑으며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고 골랐다. 3년에 걸친 고민의 끝은 양평이었다.
양평은 여러 얼굴을 가졌다. 서울과 가까워 도시적이면서도 조금만 서울에서 멀어지면 전원이 펼쳐진다. 예술가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있고 주말이면 서울 사람들이 나들이로 가장 많이 찾는 동네다. 양평에 근거를 두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양평은 북한강과 남한강을 모두 접해 있으면서 상수원 보호구역으로서 물이 맑고, 주변에 맛집과 카페가 즐비하다. 계절마다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잠시 머리를 식히기엔 양평 만한 곳이 없다.
양평을 선택한 것은 도시에서 가깝다는 것이 첫번째였다. 두번째는 자연이다. 두물머리와 용문면을 지나면 한적한 계곡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있다. 1년이 지나다 보니 양평이 점점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도 양평이 원조라 할 수 있는 국밥집이 두 곳 있다.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조양평신내서울해장국과 개군할머니토종순대국이다. 길기도 하고 넣을 건 다 넣은 이름, 웃음이 난다. 얼마나 비슷한 아류가 많고 흉내 내는 곳들이 많으면 이리도 구구절절 할까 싶다.
둘 중에서 원조양평신내서울해장국(이하, 신내해장국)을 찾았다. 양평군 개군면 신내길에 있어 양평신내해장국이다. 서울에서 보이는 신내해장국의 지명을 중랑구 신내동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56년이 됐으니 원조라고 할 만하다. 서울은 왜 넣었는지 알 수 없다. 양평해장국의 유래를 검색으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970년대에 양평 우시장에서 나는 소의 뼈와 내장을 푹 끓여 육수를 내고 선지와 내장고기, 콩나물, 시래기, 고추기름을 넣어 얼큰하게 만들어 먹은 게 시작이다. 할머니 한 명이 만든 해장국이 북한강에서 뗏목을 타고 다리 공사를 하던 인부들에게 인기를 끌며 양평해장국이 탄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양평은 예로부터 서울에 공급하는 소와 돼지를 많이 키웠다. 한강이 서울 수도권의 식수로 중요해지고 환경 보전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가축을 키우던 전통 농가들은 강원도 홍천과 횡성으로 밀려 났다. 어느 지역이나 국밥의 유래가 그렇듯 그 옛날 양평 우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소의 부속 고기들이 국밥 재료가 되었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남한강이라면 모를까 개군면과 북한강은 한참 떨어져 있다. 북한강 인근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즐기던 해장국이 개군면으로 내려와 정착했다가 맞을 것이다.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에 위치한 양평은 한강을 끼고 벌어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가 있었다. 서울에서 필요한 나무를 벌목하는 벌목공, 강 주변 마을을 오가던 행상, 마을과 마을을 잇는 다리 공사,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나는 다양한 농산물이 서울로 흘러가는 관문이었으니 시장도 생기고 농사와 축산이 성행했다. 그곳 서민들이 양평해장국의 유래를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신내해장국은 주말이면 교외 나들이를 나선 이들과 주변 원주민들이 뒤섞여 줄을 선다. 평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륜차를 타는 동호인들이 특히 많이 찾는 곳이다. 신내해장국을 먹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입천장이 벗겨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큼지막한 선지와 소의 내장 부위 고기가 가득하다. 콩나물, 대파, 시래기가 듬뿍 담겨 있다.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에 담겨진 해장국을 먹다 보면 뜨거운데도 자꾸 국물에 숟가락이 간다. 선지를 한 덩어리 떼어 입에 넣으면 구수한 맛이 난다. 거기에 양을 서너 개 한꺼번에 입에 넣고 씹다 보면 쫄깃한 식감을 더한다. 국물과 선지, 양 모두 뜨겁지만 한 번 맛을 보면 급하게 먹게 된다.
동의보감에서 양평해장국에 들어가는 소의 양은 비타민과 단백질이 풍부해 원기회복에 좋은 음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력과 기운을 돋게 해 주며 사람의 비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당뇨에도 좋고 알콜의 독성을 멈추게 해 피로회복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양평해장국을 먹을 때면 늘 양을 먹지 않았다. 물컹 거리는 식감을 싫어하는 탓이다. 하지만 신내해장국의 양은 쫄깃하게 씹히면서도 고기 맛이 제대로 느껴진다. 고소하면서도 냄새 없이 담백하고 탄력 있는 식감이 그만이다. 양이 많아 맛있게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지경이다.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손질이 까다로운 양을 신선하고 쫄깃하게 담아 내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신내해장국이 위치한 개군면은 특별할 게 없는 동네다. 해장국과 순대국을 잘 끓여 내시던 할머니들이 동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 맛이 서울 사람들에게 소문나면서 개군면은 국밥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옛날 보잘것없는 국밥 한 그릇에 최선을 다했던 어머니의 손 맛이 그리워지는 5월의 마지막이다.
글/사진=양승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