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늘어나는 급발진 주장,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걸까?

입력 2024년07월05일 13시55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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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달 오조작,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확증편향이 오히려 사고 발생 부추겨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6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급발진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고가 난 뒤 정상적으로 차가 멈춰서는 영상과 이에 대한 목격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페달 오조작에 의한 사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시청역 인근 사고의 경우 주변 CCTV와 여러 목격자들을 통해 급발진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차가 빠른 속도로 인도를 향해 돌진 후 사람을 부딪친 뒤에 방향을 틀어 다시 도로로 나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얼마 못 가 온전히 차가 멈췄다. 평소 급발진으로 주장했던 차들의 움직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처럼 최근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가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사고 원인이 차의 결함이 아닌 페달 오조작 때문이었음을 증명하는 페달 블랙박스 영상 기반의 분석자료가 최초로 공개됐다. 이 분석 자료는 올 2월 유럽연합 유엔 경제 위원회(UNECE) 주관의 분과 회의에 참석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발표에 의해 공개됐지만 최근 뒤늦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해당 영상에는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반복해서 밟는 모습이 담겨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시 시내 주택가를 운행하는 전기택시가 담벼락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60대 택시 운전자는 차량 급발진을 주장했고 사고원인을 조사한 경찰은 페달 블랙박스 포함 총 4개 채널로 구성된 블랙박스 영상을 수거해 분석했다.

 

 택시 운전자는 골목에서 우회전한 뒤 3초간 30m를 달리는 상황에서 가속 페달을 6번이나 밟았다, 뗐다를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일곱 번째 가속 페달을 밟은 후에는 충돌할 때까지 계속 밟은 상태를 유지했으며 충돌 직전의 차 속도는 61km/h로 추정했다. 담벼락을 충돌하기 전까지 총 119m(약 7.9초)를 달리는 동안 택시 기사는 단 한 번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았다.

 

 페달 블랙박스 보급이 확대되고 있지만 급발진을 주장하는 차에서 페달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번 영상은 페달 오조작을 일으키고 있는 운전자의 특성을 정확히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의 의미가 크다.



 

 사실 관련 기관은 해당 영상을 확보하고 있으나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공익목적에서 공개 필요성이 대두됐고 사고의 당사자 역시 뜻을 함께해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차원에서 공개했다.

 

 이에 한 자동차 전문가는 "대부분 국민들이 급발진 영상을 접하게 되면 감정을 대입하는 경향이 커 과학적, 논리적으로 사건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며 "이번 영상 분석 공개를 통해 긴 시간 동안 운전자가 페달을 오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급발진 주장 현상은 대부분 운전자 본인이 작동시키고 있는 페달이 브레이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와 같이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여러 번 밟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차 결함에 의해 급발진이 종종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 확증편향이 오히려 사고 발생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미디어나 유튜버 등이 내놓는 자극적인 급발진 영상에 자주 노출됨에 따라 순간적으로 본인의 착각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페달 오조작에 따른 의도치 않은 가속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 가장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행동은 밟고 있는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브레이크 페달을 한 번에 힘껏 밟는 연습을 평소에 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전세계 주요 국가 사이에서 의도하지 않은 가속의 주요 원인이 페달 오조작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유엔 경제 위원회는 페달오조작 방지장치 (ACPE)에 대한 글로벌 평가 기준과 법규 제정을 위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ACPE를 오래전부터 상용화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ACPE 적용 차가 확대되면서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와 사상자 수는 최근 10년 간 절반으로 줄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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