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범 폴스타 디자이너 인터뷰
-"최대한 덜어내고 남겨둔 요소에는 의미 담아"
-"잉엔라트 CEO, 디자인 보고 만족감 드러내"
폴스타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디자인이다. 볼보에서 떨어져 나온 브랜드지만 국적만 같을 뿐 점차 자신만의 색채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전환점은 폴스타4. 듀얼 블레이드 램프로 요약할 수 있는 새로운 라이트 시그니쳐와 뒷 유리를 생략한 과감한 스타일은 무엇과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놀라운건 폴스타의 이 같은 혁신을 주도한 인물이 한국인 디자이너 이수범 이라는 사실이다. 볼보자동차를 거쳐 폴스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그에게 폴스타4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폴스타4를 디자인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건 무엇인가.
"기존에는 폴스타만의 헤리티지를 만들어내고 공기역학적인 부분에 집중했다면 폴스타4의 디자인을 주도할 때에는 더 날렵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에 포커스를 맞췄다. 프리셉트에서 보여준 듀얼 블레이드 램프를 양산차에 처음 탑재한 게 대표적이고 이를 통해 폴스타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주고 싶었다."
-뒷 유리가 없는 디자인이 가장 독특하다.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었나.
"처음에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게 사실이다. 스포츠카에서라면 모를까 폴스타4 같은 차에서는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페형 SUV를 탑승해보면 후방 시야가 얼마나 협소한지에 착안해 디자인과 기능성을 모두 잡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 출신의 CEO(토마스 잉엔라트)의 지원 덕분에 많은 부분을 돌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 2열을 배려한 구성이 있다면
"레그룸과 헤드룸 중 하나를 포기한다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넓은 레그룸과 헤드룸을 만들어내기 위해 구조물을 뒤로 옮겼고 이 과정에서 뒷유리를 없애게 된 것이다. 구조물을 뒤로 넘겼기 때문에 리클라이닝 시 헤드룸 공간도 넉넉하게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듀얼 블레이드 램프 디자인은 향후 폴스타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을까.
"이미 공개된 차에서 봤듯 듀얼 블레이드 램프는 폴스타5와 폴스타6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향후 어떤 형태로 진화하고 발전할지 개인적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더 유심히 봐줬으면 하는 디자인이 있는지.
"글래스 배럴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자동차의 윈도우가 있는 부분인데 이 구간과 도어 빔, 힌지 등을 세밀하게 조정해 단단하면서 스포티한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집중했다. 차체는 크지만 굉장히 타이트하면서도 컴팩트하게 보이는 이유다. 차가 선회할 때 차의 면이 기울며 둔해보일 수 있는 부분들을 안쪽으로 감아넣는 등 미세하게 조정한 부분들도 많다. 여러 면에서 디자인을 스케치했을 때의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개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또 다른 부분들이 있을까.
"스플릿 라인을 사용해 기하학적인 표현을 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볼륨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 집중했다. 순수한 디자인을 지향하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요소는 과감하게 덜어내고 디테일을 위해 가미한 다양한 선에는 모두 의미를 부여했다. 풀어줄 건 풀어주되 강조할건 강조하고 힘을 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디자인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일까
"깊이감있으면서도 뚜렷한 디자인을 구현하기가 제일 힘들었다. 이를 위해 밀리미터(㎜) 단위로 면의 각도와 굴곡감을 조정했다. 엔지니어들과 설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시간과 비용 때문에 마주하는 문제점들이 더러 있었지만 CEO가 디자이너 출신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배려를 받았다."
-키 스케치를 했을 때와 양산차에서 달라진 부분들이 있다면.
"의도한 바의 90% 이상은 구현한 것 같다. 디지털화하고 3D 작업을 해 가면서 단단한 캐릭터와 스포티함, 로보틱한 느낌을 강조했는데 엔지니어링적으로 불가능했던 부분들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든 부분을 구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안전에 관련해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엔지니어와 제품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안전 요소를 디자인에 반드시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전면부에서는 펜더 라인, 후드의 높이, 프렁크 위 공간 등의 모든 요소가 세심하게 설계됐는데 이는 자동차 사고 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고안했다. 라운드 처리를 통해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어 충돌 시에도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설계했고 라인의 각도는 46~47도로 설계해 보행자 충돌 시 상해를 줄일 수 있도록 고려했다. 후드도 너무 단단하지 않게 설계되어, 충돌 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여유 공간을 두고 있다."
-폴스타4를 처음 마주한 잉엔라트 CEO의 반응은 어땠나.
"초기 디자인을 선정할 때 내 스케치를 가장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시밀리언 미소니(폴스타 디자인 총괄)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휴가 기간 중 디자인 센터에 들러 클레이로 만들어둔 폴스타4의 모습을 보고는 반드시 양산해야겠다고 할 정도로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다른 폴스타 디자인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다.
"폴스타2의 사이드미러 디자인에 참여했다. 폴스타3의 디자인을 마무리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전면부 스마트존(그릴)을 포함해 전반적인 콘셉트와 범퍼 디자인을 맡았다."
-폴스타를 맡기 전 다른 브랜드에서 근무한 이력도 있나.
"볼보에서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다. 약 4년 반 정도 근무한 것 같고 이 때 부터 폴스타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볼보에서는 XC60 부분변경에 대한 디자인을 맡았는데 XC60의 원형을 만들어낸 이정현 디자이너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작업물이 어떤지에 대한 반응도 듣는 등 활발하게 교류하고 의견을 나눈 기억이 있다."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업계에서 많이 활약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유가 있다고 보나.
"어떤 회사에 누가 근무하더라 하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그만큼 이제는 어떤 브랜드에서도 한국인 디자이너들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다. 이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건 우리나라 특유의 트렌디함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모던한 표현 등 많은 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세세한 부분들을 잘 보는 능력도 있다. 한국적인 요소들도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나 생각한다."
-평소 어떤 분야에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학생 때에는 오브제나 건축물, 디자인을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어떤 유형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된다. 평소 카페에서 혼자 스케치 하는걸 즐기는데,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다가 이런 풍경엔 이런 자동차가 지나갔으면 멋있겠다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항상 새로운것을 찾아야 하는 직업 특성상 다양한 경험과 주변 환경, 이를 통해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영감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본 자동차 디자인이 있다면 궁금하다.
"항상 어려운 질문이다. 자동차 명칭을 많이 알지 못하지만, 스웨덴 예테보리 클래식카 쇼에서 본 아담하고 조그마한 차가 기억에 남는다. 로터스 엘란이라는 차가 깔끔하고 예쁘다고 느꼈다. 처음부터 이 차가 너무 좋아서 이런 차를 디자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만,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에 따라서 기호가 변하기도 한다. 좋은 디자인하는 분들이 많아서 하나를 고르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