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원산지와 브랜드 원산지 차이 나타나
1887년 영국 정부는 독일 및 기타 국가에서 만들어진 제품 판매를 줄이기 위해 영국 이외 지역에서 만들어진 제품에 원산지 표기를 의무화하는 법을 도입했다. 이때 만들어진 마케팅 개념이 ‘원산지 효과’다. 한 마디로 영국산은 우수하고, 영국 이외 국가의 제품은 영국산보다 품질이 낮다는 인식을 활용해 영국 제조업을 지원하는 차원의 입법이다. 실제 원산지 효과는 관심이 높은 제품일수록 높고 비교적 저렴한 제품일 때 효과가 떨어진다. 대표적으로 고가인 자동차는 원산지 효과를 많이 받지만 일회용 소모성 물품인 휴지 등은 원산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데 원산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2011년 미국 포드햄대학교 연구팀의 실험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테디베어 미국 매장에서 판매되는 ‘중국산’에 관한 소비자 인식이다. 구매자들은 원산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보다 테디베어 매장에 신뢰를 보냈고, 중국산의 부정적 인식은 상쇄됐다. 또한 브랜드 원산지가 제조 원산지의 부정적 인식을 감추는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자동차 부문의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산 쏘나타 택시다. 올해 9월까지 국내에 판매된 쏘나타는 모두 3만9,273대다(KAMA 통계월보). 그런데 쏘나타를 세부적으로 다시 구분하면 DT23 쏘나타가 1만2,199대로 비중이 만만치 않다. 이외는 대부분 8세대 쏘나타로 알려진 DN8이다. DT23과 DN8의 차이점은 생산지와 판매 목적이다. DT23은 현대차 중국 베이징 공장에서 생산되는 택시 전용 차종이다. 아산공장에서 만들던 DN7 택시 단종에 따른 대체재로 중국산 쏘나타 택시가 수입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왜 중국산 쏘나타를 한국에 들여와 판매할까? 표면적으로는 국산 쏘나타 택시 단종 이후 선택지가 줄어든 택시 업계의 강력한 요구다. 하지만 택시 업계는 중국산 쏘나타를 원한 게 아니라 국산 쏘나타 택시의 생산 재개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국내 생산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는 수익성이다. 택시는 팔아도 수익이 적거나 거의 없는 데다 영업용이어서 유지 관리에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운행이 많은 만큼 문제 발생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수익성 측면에서 현대차는 택시 업계에 쏘나타 대신 그랜저 또는 스타리아 LPG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셈이다.
그런데 한동안 택시 업계 요구를 외면하던 현대차가 LPG 쏘나타 택시 공급을 다시 결정한 이유는 중국 베이징현대차 공장의 가동율 저하 때문이다. 중국 생산 제품인 만큼 한국에 들어올 때 각종 세금 등을 고려하면 수익성이 낮지만 중국 공장 가동율이 너무 저조해 적자가 지속되자 고육지책 생산 차종으로 한국 수출용 쏘나타 LPG를 선택했다. 이때 쏘나타 택시 부활이라는 택시 업계의 요구는 그저 명분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택시 전용 차종의 투입이어서 국내 생산에도 영향이 없는 만큼 노조 또한 ‘해외 생산-국내 수입’을 수용했다.
주목할 점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쏘나타에 관한 소비자 인식이다. 택시 사업자의 대부분은 쏘나타 택시 제품을 ‘중국산’이 아니라 ‘현대차 쏘나타’로 받아들인다. 이는 제조 원산지보다 브랜드 원산지에 보다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다. 국내에 판매되는 테슬라 또한 대부분 제조 원산지가 중국이지만 브랜드 원산지는 미국이다. ‘중국산’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크다면 판매가 영향을 받았겠지만 브랜드 원산지가 제조 원산지의 불리함(?)을 극복해냈다.
이런 가운데 이제는 원산지 및 제조 모두 중국에 기반을 둔 전기차(BEV)가 한국 시장을 두드리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BYD 승용 부문은 원산지 및 브랜드 효과 측면에서 한국이 어려운 시장임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제조, 브랜드보다 ‘제품력’에 승부를 걸 태세다. 원산지 효과가 극복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이 곧 제품의 가치, 즉 제품력인 탓이다. 이미 쏘나타 택시를 포함해 국내 판매되는 여러 수입 차종도 브랜드 원산지만 중국산이기 때문이다. 과연 소비자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 결과가 궁금할 따름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