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오락가락 미국 연비, 어느 장단에 맞추나

입력 2024년11월27일 07시50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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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 바뀔 때마다 기준 달라져

 

 오바마 정부 때 미국이 2030년을 기준으로 적용키로 한 승용차 효율 기준은 ℓ당 21.5㎞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자동차 업계 의견을 수렴해 16.5㎞로 기준을 낮췄다. 이때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강력 반대를 외쳤다. 규제의 힘으로 커져가는 BEV 확대 속도가 줄어드는 데다 배출 크레딧 판매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자 기준은 21.5㎞로 또 다시 상향 조정됐다. 더불어 BEV 보조금도 확대됐다. GM, 포드는 물론 현대차와 기아, 스텔란티스 등이 전기차에 적극 참여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트럼트 당선인이 또 다시 기준 완화를 제시했다. 쉽게 보면 16.5㎞로 회귀하겠다는 의미다. 나아가 보조금도 없애기로 했다. BEV에 대한 사업적 판단은 개별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테슬라가 아무 이견을 내지 않는다. 배출 크레딧 판매는 당연히 감소하고 BEV 판매도 기대만큼 오르지 않을 수 있지만 일단은 침묵할 뿐이다. 

 

 사실 테슬라의 속내는 따로 있다. 보조금이 사라지면 말 그대로 조건 없는 경쟁이 펼쳐진다. 이 경쟁에서 테슬라는 자신감을 갖는다. 특히 미국 시장의 주력 차종인 SUV 전동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반긴다. 사이버트럭이 있지만 아직 궤도에 오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GM, 포드, 현대차 등이 미국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SUV 부문의 전동화에 더욱 열심이다. 따라서 이들이 BEV 픽업 등을 확대하면 테슬라로선 오히려 불리하다. 그러니 보조금 삭제는 거대 ICE 기업의 BEV 추격 속도를 늦추는 것이어서 전략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고통도 뒤따른다. 연비 기준 완화로 테슬라의 배출 크레딧 판매는 줄어들 전망이다. 많게는 1조원 정도의 수익이 공중으로 날아갈 수 있다. 한때 테슬라 배출 크레딧을 많이 구입했던 스텔란티스의 경우 규제 완화로 내연기관 판매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오락가락 연비 기준이 제조사의 단기 미래 전략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그나마 변하지 않은 것은 BEV의 효율 환산이다. 한때 BEV의 미국 내 효율은 ℓ당 최장 150㎞까지 인정했지만 지금은 50㎞ 내외로 현실화시켰다. 하지만 이것마저 다시 환원되면 그야말로 ICE의 부활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미국의 연비 규제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한국의 가장 큰 완성차 수출 시장이 미국인 데다 빠르게 테슬라를 추격하려는 전략을 추구하는 탓이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에서 ICE와 BEV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하는데 BEV에 불리한 요소가 발생하니 빠른 추격에 제동이 걸리는 형국이다. 현대차가 아이오닉 9을 내놓고 기아가 EV9 등을 앞세워 주력 SUV 시장을 선점하려는 것에는 분명 찬물이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점은 미국 내 BEV의 낙관론이다. 관련해 미국 JD파워는 2030년까지 EV 판매가 미국 전체 소매 시장의 36%, 2035년까지 58%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회사 측은 단기적인 변화 동인에 따라 침체가 있겠지만 점진적 성장은 불가피하다며 제조사도 그에 맞춰 제품 전략을 짜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2기 정책이 EV 확장에 걸림돌이지만 그래도 EV 성장은 지속된다는 쪽에 무게를 실은 셈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EV 성장 패턴이 과거와 다르다는 사실이다. 지난 4~5년 가파르게 치솟던 성장 그래프의 기울기가 완만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성장 과열이 지나고 이제는 점진적 성장에 방점을 찍는다. 때맞춰 BEV 제품도 저가에서 초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지는 중이다. 단순한 경제적 접근이 아니라 이제는 각자의 이동 패턴에 따라 수송 에너지를 선택적으로 고르는 시대로 접어드는 셈이다. 오락가락하는 미국의 연비 규제에도 BEV 성장은 멈추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재용(공학박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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