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 완전히 상반된 전략에 팬들 '당황'
-오랜 시간 쌓아온 유산, 버릴 리 없어
-지금은 큰 방향을 보여주는 단계, 더 지켜봐야
재규어는 자동차 브랜드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로 칭송받는 재규어 XK120과 E-타입은 독특한 곡선미로 다듬어진 차체와 우아한 디자인으로 클래식 스포츠카의 정점에 서있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걸맞는 강력한 성능을 보여준 XJ220은 또 어떤가.
최근까지의 재규어도 마찬가지다. 보수적이면서도 고결한 이미지, 그리고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재규어를 설명했다. XJ는 플래그십 세단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와는 궤가 달랐다. 재규어 스포츠카의 계보를 이어온 XK와 F-타입은 강력한 성능과 우아한 디자인을 넘어 재규어의 모든것을 응축한 '정수'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가 재규어에 열광한 건 이런 부분들 때문이었다. 그런 재규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 한다. 브랜드 재출범을 선언한 최근의 행보는 전통적인 재규어 팬들이 기대한 것과는 분명한 괴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V8 엔진 대신 전기차를, 도약하는 재규어의 형상 대신 2D 로고를 쓰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론칭 영상에서부터 팬들은 놀랐다. 자동차는 배제된 채 추상적인 이미지와 예술적 연출만을 담은 광고는 기존 팬들에게는 "내가 사랑했던 재규어가 맞나?"라는 의문을 남기기 충분했다. 익숙했던 ‘재규어다움’이 배제되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마저 "자동차 회사 맞나"라는 글을 X(구 트위터)에 남기기도 했다.
재규어의 새 브랜드 슬로건 'Copy Nothing'은 그들의 독창성과 차별화를 강조하려는 의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팬들의 혼란은 여전하다. 한때 재규어를 소유하거나 꿈꾸었던 이들에게는 귀족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 'Good to be Bad'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헐리웃 영화 속 '영국인 악당' 이미지를 강조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전기차로서의 전환이 필연일지 몰라도 이 과정에서 과거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은 혼란을 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재규어가 보여준 것은 큰 방향일 뿐 그 과정과 세부적인 실행은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점이다. 변화의 흐름은 때로 불편할 수 있지만 재규어가 그동안 쌓아온 헤리티지와 감각을 전부 버릴 리는 없다. 그들의 역사는 단순히 마케팅 전략으로 끝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다.
재규어는 지금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느꼈던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해석과 결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팬들의 낯선 반응과 당혹감은 재규어가 극복해야 할 도전이겠지만 그것이 곧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규어는 여전히 재규어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더라도, 재규어가 가진 유산과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그들의 중심에 있길 바란다. ‘Copy Nothing’이라는 메시지가 지금은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의도가 명확해지고, 새로운 형태의 ‘재규어다움’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지금 재규어는 무엇을 말하려는가? 지금 미래를 보는 재규어는 신발끈을 고쳐매며 과거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