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마세라티 디자인 주역, 한국서 미래 찾아
흡사 팬미팅을 방불케 했다. 겨울 방학을 앞둔 학교 교정은 조용했지만 특강이 열린 글로벌센터만큼은 열기로 가득했다. 기대 이상의 많은 학생들이 ‘켄 오쿠야마(켄 오쿠야마 디자인 대표)’라는 이름에 이끌려 강의실을 찾았다.
이번 특강은 '마세라티 그레칼레 컬러즈 오브 서울'을 비롯해 켄 오쿠야마와 오랜 시간 다양한 협업을 진행해 온 마세라티코리아가 특별히 국내 자동차 디자인의 미래를 이끌어 갈 국민대 자동차 운송디자인학과 학생들을 위해 마련했다.
지난 3일 열린 강의에서 켄 오쿠야마 역시 감동한 듯 보였다. 마주 앉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그들과 비슷했을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시간의 흐름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쿠야마 대표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어할, 디자이너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롤 모델로 꿈꾸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이다. 그가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인한 엔초 페라리와 5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등은 여전히 희대의 역작으로 꼽힌다. 본인의 디자인 회사를 설립한 이후에는 자동차뿐 아니라 신칸센 등 열차와 안경, 안마의자 등 다양한 산업 디자인을 총망라하고 있다.
특강을 시작하며 켄 오쿠야마는 인정받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협업과 조율이 중요하며, 기본적으로 기계에 대한 이해도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는 예술, 기술, 엔지니어링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융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적어도 15년 이상의 경력은 있어야 한다.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율인데, 이를 위해서는 기계적 이해도가 어느정도 필요하다. 엔진과 변속기 등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 지 등 고려할 것이 많고 디자이너가 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맡기고 의뢰해준 '브랜드(클라이언트)'와 그 브랜드를 구매하는 '고객'까지 모두 고려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도 말했다. 오쿠야마 대표는 "디자이너는 브랜드와 긴밀하게 일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브랜드)는 막상 그들의 미래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클라이언트(브랜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시장을 정확히 연구하고, 미래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디자이너로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마세라티코리아와 협업한 '마세라티 그레칼레 컬러즈 오브 서울'을 사례로 들었다. 켄 오쿠야마는 "마세라티는 이탈리안 럭셔리카 브랜드이다. 마세라티 코리아와 작업을 위해 리서치를 해보니, 마세라티 고객들의 평균 연령이 일본보다 한국이 10살 더 젊었고, 서울 4개 중심지에서 판매가 두드러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컬러즈 오브 서울'에 적용된 마세라티 로고가 새겨진 데칼은 젊은 한국 여성들을 고려해 디자인했다. 색상은 한국 백자에서 영감을 얻어 매트한 펄 화이트를 선택했다. 여기에 한국에서 선호하는 밝은 파란색을 디테일 포인트로 뒀다. 일본이라면 달랐을 조합이다. 색 하나, 소재 하나만 바꿔도 차의 느낌이나 캐릭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AI 및 3D 등 디자인 업계에 다양한 기술이 도입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스케치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기본기 강화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스케치 작업은 상상력 그 이상을 만들어 내는 훌륭한 수단이다. 선을 그리다보면 생각지 못한 선이 발견해 내는 순간이 온다. 손은 뇌와 커뮤니케이션한다. 스케치는 현재 수장의 위치에서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스케칭 작업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 지 알게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 할 때까지 수없이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퀄리티도 따라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강연 이후에는 열띤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깊이 아는 것과 넓게 아는 것 중 디자이너에게 더욱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오쿠야마 대표는 "디자인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는 심층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지식에 깊이가 있으면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만 아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도 양산차와 관련한 지식이 깊다 보니 이제는 아이웨어, 열차, 슈즈까지 확장된 것"이라고 답했다.
약 한 시간여 동안 최선을 다해 열정을 쏟아낸 그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마디를 남기며 특강을 마쳤다. 바로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할 것을 생각하며 디자인하라. 대신 5년 뒤에 선물한다는 가정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라고 말하며 깊은 영감을 줬다.
한편, 이번 특강을 준비한 마세라티코리아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국민대와 긴밀하게 협업했으며 향후에도 뜻깊은 자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