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을 잘 쓰는 방법, '작은 차'
-인프라 확장 안된다면 운송수단 전환이 해법
-마이크로모빌리티, 대안 될 수 있어
지난달 23일 베트남 남쪽 끝에 위치한 작은 농업도시 비탄(Vị Thanh)을 찾았다. 워낙 남쪽에 위치했다보니 위치상 호치민보다 캄보디아 국경이 더 가까울 정도다.
이곳에서 적잖이 놀랐다. 호치민 시내에서 불과 차로 4~5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도로 폭이 협소하고 아스팔트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차량 통행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조차 "도로를 깔아놓은 이후에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의 주력 교통수단은 '네 바퀴'와 거리가 멀다. 메콩강 하류에 인접한 메콩 델타 지역의 특성상 도로보다는 수로가 더 잘 발달해있다. 이렇다보니 배나 작은 보트가 핵심 교통 수단이며 수로 옆으로 난 도로는 모터사이클이이나 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베트남의 경제성장은 계속되고 자동차 보급 역시 증가 추세에 있다. 현지 교통 당국에 따르면, 2022년 신규 등록된 자동차(승용차 기준)는 전년 대비 약 30% 이상 증가했다. 대형차 중심의 교통으로 급격히 전환될 경우 도로가 제대로 확충되지 못한 외곽 지역에서 교통 혼잡과 안전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도로를 같이 넓히면 될 일이지만 베트남 정부가 당장 모든 지역의 도로를 즉각적으로 개선하는 건 어렵다. 호치민 같은 대도시에서는 고속도로와 도시철도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베트남 최대 도시에 이제 막 지하철이 들어온 상황에서 지방 농업 지역까지 빠른 개선을 기대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도로가 바뀌기 어렵다면 작은 차를 대안으로 삼아볼 수 있겠다. 마이크로모빌리티다. 도로를 크게 넓히지 않고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길과 골목길이 많은 베트남 농촌에서는 자동차를 몰기보다 이륜차를 활용해왔는데 이 문화가 전기 스쿠터나 초소형 전기차 형태로 전환될 수 있지 않을까.
베트남 교통부 통계(2022년 잠정 집계)에 따르면 베트남 내 오토바이(이륜차) 연간 판매량은 300만대를 넘고 이 중 전기스쿠터가 약 5~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5년 전만 해도 전기스쿠터 비중이 1% 미만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꽤 빠른 성장세다. 현지 업체인 빈패스트가 자동차를 넘어 전기스쿠터 시장에도 진출했고 중국·대만 등지의 저가형 브랜드가 진입하면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초소형 전기차는 대중화 되진 않았지만 일부 스타트업과 지방정부가 '도심 이동형 초소형 전기차' 시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 경차와 비슷한 크기의 빈패스트 VF3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은 감안하면 가능성 자체도 충분해 보인다.
이렇다보니 우리나라에서 주춤한 초소형 전기차가 베트남에서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초소형 전기차는 안전 문제와 규제 강화로 인해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 그러나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은 아직 관련 규제가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이륜차가 지배적인 교통 수단이었기 때문에 ‘작고 기동성 좋은 전기 이동수단’에 대한 심리적·제도적 장벽이 낮다.
물론 전기스쿠터나 초소형 전기차가 자리 잡으려면 충전 인프라, 배터리 성능, 습도와 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내구성이 선결 과제다. 하지만 ‘도로를 넓히는 대신 작은 차를 쓰자’고 생각한다면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는 베트남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옵션으로 떠오를 수 있다.
베트남의 대도시는 이미 자동차가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지방 소도시나 농촌은 경제 발전 속도가 느리지만, 언젠가는 ‘더 나은 도로’ 수요가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도로 확충이 더디거나 비용 부담이 크다면, 결국 현재의 협소한 도로에서도 효율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교통 수단을 찾아보자. 모두가 자동차를 타는 시대가 오기 전에 작은 차가 교통 문제의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베트남 비탄=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