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차, 2차 세계대전 이후서야 본격 활용
-우리 군, 최신 차 도입하며 역량 강화시키고 있어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러나 기동성과 보급은 그 어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다.
병력과 탄약, 식량과 연료, 장비와 응급 구조에 이르기까지. 전장에서도 '이동'이라는건 우리의 도시생활만큼이나 가장 중요하고 그 핵심은 군용차다.
군용차의 시작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1886년 등장했다지만 전장에서 쓸 만큼 효율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자동차의 최고속도는 사람의 달리기 속도와 비슷했고 이렇다 보니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주요 수송 수단은 여전히 말이나 소가 끄는 수레였다.
더욱이 신뢰성도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도로라는 개념이 정확하지 않은 전쟁터인데 멀쩡한 도로도 간신히 달리던 최초의 자동차들이 진흙밭이나 모래 위를 이겨냈을리가 없다. 이렇다보니 자동차가 전장의 주역이 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군용차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끈건 2차 세계대전이다. 엔진 기술이 발달하고 타이어와 사륜구동 기술의 개념이 접목되며 험로 주행이 가능해졌다. 당시 등장한 윌리스 지프가 군용차의 상징이 됐고 각국이 자체적인 군용차를 대거 개발하며 병참 능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한 것도 이 때 부터다.
우리 군 역시 군용차의 발전과 함께 체계를 갖춰왔다. 현재 국군이 도입하고 있는 군용차는 크게 5종으로 분류된다. 소형 전술차, 1¼톤 트럭, 2½톤 트럭, 5톤 트럭, 10톤 대형 트럭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전술적 목적과 수송 능력에 따라 병력과 물자의 동시 이동을 가능케 하며 전술 유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른바 '레토나'로 불렸던 K-131은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퇴역하며 K-151에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기아 모하비를 기반으로 설계해 자동변속기, 내비게이션, 후방카메라 등 편의기능까지 갖췄으며 한층 넉넉해진 적재 능력으로 ‘닷지’로 불린 1¼톤의 역할까지 대체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 고기동 ATV(전술기동차) 역시 양산을 앞두고 있다.
그 다음 단계는 ‘두돈반’이라 불리는 2½톤 트럭(K-511)과 5톤 트럭(K-711). 각각 20명 내외의 병력과 최대 10톤에 달하는 물자를 수송할 수 있어 작전 지역 내 병참 기능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이들 역시 뿌리는 1950년대 미군이 운용한 M35, M809 트럭에 두고 있다. 설계 연한이 70년에 가까운 셈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노후 차를 대체할 차세대 군용차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기아가 개발을 주도하며 현대차의 준대형 트럭 ‘파비스’를 기반으로 제작한 새차다. 사륜구동(4×4)과 육륜구동(6×6) 기반의 주행 성능, -32℃에서도 시동이 가능한 혹한 대응 능력, 야지 전용 차축, 전자파 차폐 기술, 그리고 방탄 기능까지 갖췄다.
미래 모빌리티 기술도도 접목되고 있다. 공군 비행장 내 자율주행을 목적으로 한 무인수송차,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군용 수소차, 비상발전기 겸용 수소차 등의 개발이 논의 중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과시를 넘어 병참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략적 전환이다.
물론 모든 군용차가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지는 않는다. 최근 전쟁 양상이 전면전에서 국지전, 특수전 형태로 전환됨에 따라 군은 민수용 차를 군용으로 전환해 활용하는 비율도 점차 늘리고 있다. 이는 전용 군용차 개발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민간 정비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 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만한 부분도 있다. 군용차를 과연 중고로 구입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불가능하다. 군사적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지정학적 상황 때문이다. 일반적인 충돌 안전 규정이나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 아 일반 도로 주행에 부적합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결국 국내에서는 노후 군용차를 대부분 폐차하거나 부품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국가들은 퇴역 군용차를 민간에 매각하고 있다. 일반 도로보다는 건설 현장이나 레저용, 혹은 기념적 소장 가치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국가에선 퇴역 차량 매각을 통해 유지비를 줄이고 예산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순환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기술이 진화해도 군용차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험로를 달리고, 무거운 물자를 싣고, 총탄이 날아드는 전장 속에서도 병력과 보급을 끊임없이 이어주는 수단. 군용차는 눈에 띄진 않지만 전장을 지탱하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확실한 ‘무기’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