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비용 최소화 및 EV 능력 극대화
지난 2022년 5월,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수준에 도달했을 때 국내 휘발유 주유소 평균 판매 가격은 ℓ당 2,084원에 달했다(한국석공사 오피넷). 그에 앞서 서서히 기름값이 상승하자 정부는 선제적 차원에서 2011년 11월, 기름에 부과되는 세율을 낮춰 시중 판매 가격 안정을 유도했다. 그나마 2,000원이라는 가격도 유류세 인하 조치가 반영된 결과였고 이후 유류세율 인하는 올해 6월 말까지 4년째 유지되고 있다. 물론 인하 조치 연장 때마다 세율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현재 기름 값은 국제유가 안정과 유류세 인하가 겹쳐 만들어진 가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시사하고 나섰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70% 원유의 수송로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그러자 국제 유가가 출렁인다. 석유업계에선 가격이 배럴당 130달러에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국내 기름값은 휘발유 기준 ℓ당 최고 2,500원 수준을 예상하기도 한다. 만약 봉쇄가 길어진다면 국내 비축유를 방출해야 하는데 현재 기준으로 200일 정도다.
기름값이 가파르게 치솟으면 자동차 부문에서 두 가지 소비 트렌드가 형성된다. 첫째는 고효율 제품을 사려는 욕망이 강해진다. 대표적으로 디젤 수요가 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디젤 승용 시장이 위축됐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꼽히는 하이브리드 선호 현상이 증가한다. HEV의 경우 지금도 수요 대기가 길다는 점을 감안하면 HEV 전성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두 번째는 배터리 전기차(BEV)에 대한 관심 증가다. 상대적으로 에너지비용이 적게 소요돼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충전의 불편함을 유지비 절감으로 만족하려는 경향인데 이때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비싸면 마찬가지로 내연기관, 특히 HEV에 시선을 고정하기 마련이다.
이때 제조사들이 HEV 외에 BEV에 가까운 새로운 돌파구로 생각하는 게 EREV(Extend Range Electric Vehicle)다. PHEV의 연장선이지만 내연기관이 발전기 역할에 머물러 에너지 효율이 높다. 외부 충전과 자체 발전을 동시에 수행하는데 필요에 따라 전기와 기름을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면 된다. 기름값이 비싸면 외부 충전을 주로 이용하고 충전 전기요금이 비싸면 기름을 쓰되 이때 용도는 오로지 발전용이어서 동일 거리를 주행할 때 에너지 사용량이 적다. 그렇다고 배터리 전기 소모에 따른 ‘멈춤’ 걱정도 없다. EREV 등장 초창기는 굳이 엔진을 발전기로 써야 하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BEV에 가깝고, 화석연료 사용량은 최소화됐다는 장점이 부각되며 제조사마다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EREV 개발에 적극적인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제네시스는 물론 북미형 SUV 등에 EREV를 적용할 계획이다. KGM도 여러 파워트레인을 검토하다 최근 EREV 개발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EREV에서 중요한 것은 배터리 용량 선택이다. 외부 충전 전기를 통해 확보하려는 주행 거리는 제조사마다 제각각이인데 일반적으로 30㎾h 배터리를 탑재해 100㎞ 내외의 전기 주행 거리를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필요하면 배터리 용량을 키워 충전 전기 주행 거리를 늘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외부 전원 및 내부 발전을 통한 최장 주행거리 목표를 1,000㎞로 설정했다면 충전 전기와 발전 전기 주행 거리를 구분하고 그에 걸맞은 배터리 용량 및 소재 등을 선택한다.
EREV의 또 다른 장점은 발전기로 사용하는 엔진의 배기량이 작다는 사실이다. 대형 세단도 EREV 구동계를 적용하면 발전기(엔진) 배기량은 1,000㏄가 될 수 있다. 기름 소모로 동력을 얻는 게 아니라 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구동력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발전기로 만들어진 전기는 배터리를 통해 실제 구동력을 발휘하는 전기모터에 전달될 뿐이다. 더욱이 발전도 계속되는 게 아니라 최소 전력량이 배터리에 공급되면 멈춘다. 한 마디로 전기 사용량을 최대한 늘려 주행거리 확장 및 탄소 배출 저감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약 10년 전, 초창기 EREV가 등장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냥 BEV로 전환하면 되지 굳이 화석연료를 태워 전기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비관론이 득세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충전 인프라 문제가 대두됐고 빠른 전동화가 쉽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EREV는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고 BEV에 가까운 PHEV라는 점에서 요즘 글로벌 제조사들이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다. EREV에서 배터리 용량을 조금씩 늘리고 발전기 사용량을 줄이면 그게 곧 BEV가 되기 때문이다.
박재용(공학박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