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같은 편 안의 전쟁'..F1 팀 내 경쟁의 민낯

입력 2025년06월25일 16시49분 박홍준
트위터로 보내기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공유


 -경쟁력 끌어올리는 내부 구도, 때론 팀에 분란
 -'한 팀 두 사람'이 만든 비극..우리가 볼땐 씁쓸
 -전우를 쓰러트려야 오르는 포디움..이것이 F1식 경쟁

 

 전교 1등을 한 번이라도 이기고 싶다는 마음에 2등이 친구를 난간에서 밀어버리는 이야기. 너무 흔해서 진부하게 느껴지는 학교 괴담이지만 ‘둘’이라는 숫자는 위험하다는걸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이엔 늘 승패, 우열, 찬반, 참거짓, 흑백만 있을 뿐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각) 캐나다 그랑프리에서는 시즌 선두를 달리는 맥라렌의 두 레이스카가 접전 중 서로 충돌해 한 명이 리타이어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됐다. 전쟁 중 아군의 오발탄에 쓰러진 병사를 보는 듯한 상황이었다. 

 

 F1은 10개 팀이 혁신, 속도, 성적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스포츠다. 각 팀은 반드시 두 대의 레이스카를 운영해야 하고 따라서 두 명의 드라이버를 보유한다. 이들은 ‘팀메이트’라고 불리며 수백 명의 팀원이 만든 단 두 대의 레이스카로 나머지 열여덟 대의 적들과 싸운다. 이 두 사람은 이름처럼 친구(메이트)여야 마땅하지만 F1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드라마는 같은 팀,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는 동료들 사이에서 벌어진 경우가 많다.

 

 팀 경영진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팀의 성적 향상이고 드라이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부 경쟁’이다. 두 드라이버의 실력, 역량, 성적은 매 순간 비교된다. 각 드라이버는 전담 레이스 엔지니어링 팀의 지원을 받는데, 이들의 1차 목표는 자기가 맡은 드라이버가 팀메이트보다 빠르고, 안정적이며, 실수를 적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드라이버가 무전으로 듣는 피드백은 대개 “너는 팀메이트보다 이것이 부족하다”는 식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심리적 박탈감, 시기심, 배신감이 격돌하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팀 내 경쟁은 챔피언십 결과를 바꾸기도 하고 F1이라는 스포츠의 본질 자체를 재정의하기도 한다.

 

 F1은 분명 팀 스포츠지만 팀 내부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F1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팀 내 라이벌은 1980년대 후반 맥라렌에서 펼쳐진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의 대결이다. 세나의 거칠고 본능적인 드라이빙 스타일은 프로스트의 냉철하고 계산된 주행 방식과 항상 충돌했다. 

 

 1989년 일본 스즈카에서 벌어진 두 사람의 충돌은 세나의 실격과 프로스트의 챔피언 등극으로 이어졌고 프로스트가 페라리로 이적한 후에도 둘의 갈등은 계속됐다. 결국 1990년 스즈카에서 또 한 번의 충돌이 벌어지며 두 사람의 라이벌 구도는 전설로 남게 되었다.

 

 맥라렌은 2007년에도 또 하나의 뜨거운 내부 대결을 경험한다. 당시 팀에 입단한 더블 챔피언 페르난도 알론소는 신예 루이스 해밀턴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페르난도는 팀이 재능 있고 똘똘한 해밀턴을 노골적으로 편애한다 생각했고 자존심이 상한 알론소는 점점 불만을 드러냈다. 

 

 급기야 헝가리 그랑프리에서는 알론소가 해밀턴을 피트레인에서 막아서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두 드라이버는 시즌을 똑같은 포인트로 마쳤지만 키미 라이코넨이 단 1점 차로 챔피언에 오르며 팀 내 갈등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또 하나 유명한 사건은 '멀티-21' 파동이다. 2010년대 초반 F1은 레드불의 시대였다. 세바스찬 페텔과 마크 웨버는 그 전성기의 중심에 있었지만, 이들의 관계는 늘 불안정했다. 2010년 터키 그랑프리에서 두 사람은 직선 구간에서 서로 견제하다 추돌, 모두 리타이어했다.  

 

 2013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선 더욱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레드불은 ‘멀티-21’이라는 팀 오더를 내려 페텔이 웨버의 뒤를 따라가며 팀의 더블 포디움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승리에 눈이 먼 페텔은 이를 무시하고 웨버를 제치며 독자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충돌은 없었지만, 웨버는 분노에 찬 얼굴로 “멀티-21, 멀티-21”을 반복해 외쳤다. 이 사건은 팀 메이트 간 신뢰를 산산조각 냈고, 지금까지도 ‘팀메이트 배신’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이처럼 팀 내 라이벌 구도는 드라이버나 팀의 운명을 넘어 F1이라는 스포츠의 역동성과 서사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다. 영광과 좌절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이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이 같은 편 안에서 시작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유교 OS 가 탐재된 필자에게 붕우(朋友)의 배신은 참으로 불편하다.

 

 김남호 F1 동력학 엔지니어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