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믹계 고체 전해질 시대 개척
-르노 등 완성차기업 기업 관심 급증
“화재를 원천 예방하려면 배터리 셀 내부 구성에서 문제가 되는 전해질을 고체로 바꾸면 됩니다.” 전고체 배터리 기업 에이에스이티(ASET) 박석정 대표(사진)의 말이다. 그런데 관심은 고체 전해질의 소재다. 그리고 대부분 배터리 기업은 황화물계를 주목한다. 하지만 에이에스이티의 선택은 달랐다. 아직 상용화가 멀리 떨어진 황화물계가 아니라 당장 사용 가능한 세라믹을 활용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기존 셀 생산 라인에 투입할 수 있다.
세라믹계 고체 전해질을 개발한 이유는 현실성 때문이다. 이른바 EV도 진화 단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EV 전환 단계는 ‘HEV-PHEV-EREV-BEV’ 순서다. 최근 국내 기업들이 BEV 제품을 보유했음에도 EREV(주행거리연장 전기차) 개발에 적극적인 것도 BEV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이 아직은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요소는 충전 인프라 부족과 화재 불안감이다.
둘 중 인프라는 시간이 해결한다. BEV 구매자가 많아질수록 충전기도 함께 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현재 배터리 셀 구조에서 화재를 막을 방법은 없다. 충전량을 제한하고 배터리 내부를 수시로 감시하는 기능을 넣는 게 전부다. 한 마디로 화재 발생 이후 피해 최소화 차원일 뿐 셀 내부 화재를 막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전기차 보유자에게 신속한 대처를 요구하는데 일종의 불안감 증폭이자 BEV 구매력을 낮추는 요소다.
에이에스이티(ASET)가 파고든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세라믹계 전고체 전해질로 화재를 원천 방지하되 당장 사용 가능한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여기서 가격 경쟁력은 크게 두 가지다. 고체 전해질 투입으로 기존 셀 제조사 생산 라인의 추가 투자가 없고, 화재가 원천 사라지는 만큼 배터리 셀 또는 팩 단위에서 화재 예방을 위한 냉각 재료 등이 배제된다. 만들 때 추가 비용이 들지 않되 고체 전해질 투입으로 불필요한 부품을 배제해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덕분에 이미 50억원이 넘는 초기 투자를 마무리하고 최근에는 공장 설립을 위한 추가 파트너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ASET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는 곳은 자동차기업이다. 자동차라는 소비재를 직접 판매하는 만큼 EV 화재는 치명적인 탓이다. 이 회사 박석정 대표는 “현재 르노 등을 비롯해 해외 여러 자동차기업이 협업 노크를 해오고 있다”며 “대부분 세라믹 고체 전해질의 공급 시점과 자신들이 제공받는 배터리 기업과 파트너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배터리 셀 제조사와 협업도 늘려가는 중이다.
고체 전해질 사용의 또 다른 장점은 에너지밀도 향상이다. 현재 셀 구조에서 전해질을 고체로 바꾸면 셀 내부의 공간이 남아 무게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ASET는 음극재인 흑연 대체용으로 매우 얇은 음극 시드도 이미 개발했다. 그러면 또다시 추가 공간이 생기는데 이때는 셀 제조사가 판단하면 된다. 공간을 제거하면 셀 무게가 줄고 활용하면 에너지밀도가 증가한다.
박 대표는 “고체 전해질 배터리도 단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ASET가 개발한 산화물계 고체 전해질이 하이브리드(HEV)라면 황화물 소재는 BEV”라며 “BEV로 완전히 넘어가려면 결국 HEV와 PHEV, 그리고 EREV 시대를 거쳐야 하는 만큼 산화물 고체 전해질이 바로 그런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글로벌에서도 산화물 고체 전해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무엇보다 가장 현실적인 BEV 화재 예방이기 때문이다. 최근 폭스바겐도 유사한 기술에 관심을 두는 중이고 화재로 곤혹을 치룬 벤츠도 황화물 전고체의 전 단계로 산화물을 주목한다. 그리고 EV 업계에선 고체 전해질 또한 두 가지가 역할을 분담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른바 하이엔드 BEV는 황화물, 보급형 BEV는 산화물 고체 전해질이 사용될 것으로 전망한다.
기술은 늘 발전하고 진보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재를 원천 예방하는 고체 전해질 기술도 이제 눈앞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한국이 고체 전해질 분야에서 뒤지지 않고 글로벌 기업과 경쟁한다는 점만으로도 내심 흐뭇해진다. 그것도 이제 발을 막 디딘 스타트업이 해낸다니 더욱 의미가 깊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