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력보다 중요한 감각 잘 담아내
-'서민의 포르쉐'..진부해도 유효한 이유는...
핫해치의 전설, 서민의 포르쉐, 포켓 로켓까지. 골프 GTI를 수식하는 문장은 많다. 그리고 워낙 많이 들어와서 더 이상 기사에 표현하기에도 민망하다. 그런데 신형 GTI를 마주하고 운전대를 잡아보니 그 흔한 표현들이 왜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지를 이해했다. 여전히 운전 재미에 관한 본질을 아주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상품성
신차는 이른바 8.5세대라고 칭하는 8세대 부분변경이다. 전면 일루미네이티드 로고가 새롭게 더해졌고 새롭게 다듬어진 IQ.라이트 LED 매트릭스 헤드램프와 GTI 전용 안개등은 존재감을 뽐낸다. 여기에 허니컴 그릴과 붉은 라디에이터 스트립 등 GTI 특유의 강렬한 디자인 포인트로 특유의 정체성도 유지했다.
측면에는 블랙 루프와 새로운 19인치 휠이 포인트. GTI 사이드 로고 뱃지는 클래식한 감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했고 후면부는 다이내믹 턴 시그널과 애니메이션 효과가 더해진 3D LED 리어램프 덕분에 퇴근길 후면마저도 특별하다.
결정적으로, 요즘 보기 드문 노출형 듀얼 머플러가 마음에 쏙 든다. 많은 차들이 머플러를 숨기거나 가짜 디자인을 덧씌우는 것과 달리 골프 GTI는 ‘진짜’를 보여준다. 범퍼 하단 중앙을 중심으로 양쪽 끝단에 자리한 머플러 팁은 살짝 돌출된 형태로 리어 디퓨저 라인과 조화를 이루며 GTI만의 스포티한 아이덴티티를 완성한다.
실내는 기능과 감성이 고르게 배분돼 있다. 붉은 스티치가 들어간 멀티펑션 스티어링 휠과 비엔나 가죽 스포츠 시트는 '운전하고 싶어지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12.9인치 MIB4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새로운 UI와 함께 직관적인 조작, IDA 음성 인식 보조, 보이스 인핸서까지 갖춰졌다.
뿐만 아니다. 하만카돈 480W 사운드 시스템, 3존 에어컨, 파노라믹 선루프 등 편의 기능도 빠짐없다. 고성능차지만 ‘고급차 감성’도 놓치지 않았고 오직 달리기만을 위한 차가 아니라는걸 잘 보여준다. 여러모로 일상과 트랙을 아우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구성이다.
▲성능
시승차는 2.0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7단 DSG를 탑재해 최고출력 245마력. 최대토크 37.7㎏·m를 낸다.
숫자만 보면 평범해 보일 수도 있다. 요즘은 출력 500마력짜리 전기차도 흔한 시대 아닌가. 그렇기에 골프 GTI의 이 수치는 카탈로그 위에선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차의 진가는 ‘어떻게 달리는가’에 있다. 자료가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라 차가 내는 소리와 움직임이 운전자를 사로잡는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배기음이다. 중후하게 울리는 저음의 사운드는 작은 해치백과 어울리지 않게 깊고 웅장하다. 밟을수록 성질을 드러내고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머뭇거림 없이 터지는 팝콘 사운드가 뒤를 채운다. 전자적으로 만든 인위적인 효과가 아니라 엔진이 내는 물리적인 리듬이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페달을 더 깊게, 더 자주 밟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고회전으로 올라갈수록 엔진음의 또 다른 면이 드러난다. 단순히 볼륨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화음이 겹치는 듯한 독특한 공명이 실내를 채운다. 고속 영역에서는 마치 엔진이 스스로 합창을 하는 것처럼 두 개의 음색이 겹쳐 들린다. 이 현상이 NVH 설계의 결과인지 엔진 특성 때문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차는 의도적으로 소리를 설계한 차라는 점이다.
변속 타이밍은 놀랍도록 직관적이다. 7단 DSG는 운전자의 발끝보다 한 박자 빠르게 반응하고 다운시프트에서는 회전수를 예리하게 맞춰내며 변속 충격은 줄이되 감성은 남긴다. 스포티한 달리기란 이런 것이다.
핸들링은 날카롭기보다 정교하다. VDM 시스템과 VAQ 전자식 디퍼렌셜 락, DCC 어댑티브 댐퍼의 조합은 마치 노면과 차 사이에 자석이라도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와인딩 로드에서는 GTI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차체는 거친 요철을 타고 넘으면서도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감쇠력이 알맞게 조율되어 있어 출렁임 없이 단단하게 그러나 지나치게 딱딱하지 않게 움직인다. 스포츠 모드를 써도 되지만 커스텀 모드에서 GT 레이스카처럼 감쇠력을 더 단단하게 조일수도 랠리카처럼 느슨하게 조절할 수도 있다.
코너에 진입하면 스티어링을 따라 정확히 앞머리를 꽂아 넣고 뒷바퀴는 딜레이 없이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온다. 오버스티어도 언더스티어도 없이 뉴트럴한 상태에서 차체가 코너 안쪽으로 붙는 감각은 감탄을 자아낸다.
연속된 코너가 이어지는 구간에서도 페이스를 유지하며 리듬을 탈 수 있다. 페달에서 발을 떼고 있는 순간에도 차체는 안정적으로 중립을 유지한다. 결과적으로 감속, 조향, 탈출이라는 리듬이 끊기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밟아야 재밌는 차가 아니라 달리는 전 과정이 재미있는 차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작은 차체에서 오는 날렵함이다. 공차중량 1.4톤대에 2,631㎜의 짧은 휠베이스, 그리고 정밀하게 다듬어진 서스펜션은 마치 장난감 RC카를 조종하듯 반응한다. 한계 상황에서조차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선다. ‘이 다음은 어떻게 반응할까?’ 하고 운전자가 한 발 더 나아가 보게 되는 차다.
▲총평
이 시대에 245마력은 특별한 숫자가 아니다. 수치만 놓고 보자면, 전기차들은 이보다 두 배는 넘는 출력을 쏟아내고 소음 하나 없이 무섭게 달려나간다. 하지만 그런 차들이 결코 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운전자가 스스로 차를 조율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쏟아지는 감각적인 자극들이다. 그리고 골프 GTI는 여전히 그 ‘감각’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차다. 중후한 배기음, 회전수에 따라 음색이 중첩되는 엔진 사운드, 손끝으로 전해지는 스티어링 반응, 노면을 꽉 움켜쥔 채 코너를 빠져나가는 섀시의 느낌. 이 모든 요소들이 단순히 빠른 속도를 넘어서 ‘재미있는 주행’을 완성한다.
서민의 포르쉐, 고성능 핫해치의 아이콘 같은 말들이 이제는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골프 GTI는 그 진부한 찬사를 지금도 갱신하고 있다. 오래된 말이 오래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골프 GTI는 여전히 그 이유를 보여준다.
폭스바겐 골프 GTI의 가격은 5,175만원.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