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상의 만듦새, 승차감 카니발 못지않아
-상용·승용 아우르는 다재다능함 갖춰
대한민국의 길 위에는 언제나 봉고가 있었다. 짐칸에는 참기름부터 양파 자루까지 없는 게 없었지만 때로는 친척과 이웃을 태워 나르는 승합차의 역할도 했다. 학생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성당이나 교회의 단체 나들이를 책임지며 삶의 무게뿐 아니라 웃음과 추억도 함께 실어 나른 차. 봉고는 단순한 상용차가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을 싣고 달린 진짜 국민차였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를 이어받을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기아 PV5. 단순한 전기 밴은 아니다. 상용차의 뿌리에 충실하면서도 변주 가능한 플랫폼을 바탕으로 레저·이동·물류까지 아우르는 가능성을 품었다. 짐도 싣고 사람도 싣는다는 점에서 PV5에서 봉고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디자인&상품성
외관은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이다. 전면부의 히든 타입 LED 헤드램프는 충돌 시 파손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안쪽으로 배치됐고 전면 범퍼는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어 교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보닛에는 무도장 복합재 성형 기술이 쓰여 도장 공정 없이도 매끈한 광택을 낸다. 상용차 운용에서 발생하기 쉬운 손상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곳곳에 담겨 있다.
실내는 기능 위주의 설계가 돋보인다. 크래시패드 상단 수납함, 도어 트레이, 시트 하부와 플로어 하부 수납공간은 장시간 운전 중 자주 쓰는 물건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게 했다. 인포테인먼트는 안드로이드 OS 기반 12.9인치 화면으로 태블릿 PC에 가까운 직관적 조작성을 제공한다. OTA 업데이트와 차 관제 시스템(FMS)도 갖춰져 있어 법인 운영자에게 특히 유용하다
PV5의 공간감은 패신저와 카고에서 뚜렷하게 성격이 갈린다. 카고는 전고와 적재 길이가 충분히 확보돼 리터급 대배기량 바이크 한 대쯤은 거뜬히 실을 수 있을 것 같은 여유가 있다. 낮은 적재고(419㎜)와 평탄화된 바닥 구조는 팔레트 적재는 물론, 부피가 큰 화물이나 장비를 다루기에도 좋다.
반면 패신저는 2열 거주성이 넉넉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높은 전고 덕분에 머리 공간이 남아돌고, 무릎 공간 역시 동급 미니밴과 비교해 부족함이 없다. 시트 포지션이 낮아 발을 자연스럽게 두기 좋고, 2열 슬라이딩 도어와 저상 플로어 덕분에 어린이나 고령자도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다. 다만 시트 자체는 편안함보다 실용성이 우선시된 구성이다. 카니발 하이리무진이나 스타리아 라운지 같은 고급감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고급 미니밴이라기보다는 사람이 편히 타고 내릴 수 있는 상용 기반 전기 밴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성능
PV5의 파워트레인은 71.2㎾h(롱레인지) 또는 51.5㎾h(스탠다드) 배터리와 전기 모터를 기반으로 최고출력 120㎾(163마력), 최대토크 25.5㎏∙m를 발휘한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카고 롱레인지가 377㎞, 카고 스탠다드가 280㎞이며 롱레인지가 기본인 패신저는 358㎞를 확보했다
PV5 카고는 전반적으로 도심 물류 환경에 최적화됐다는 느낌이 강하다. 좁은 길에서도 5.5m의 회전반경 덕분에 제법 민첩하게 움직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짐차’임에도 불구하고 공차 상태에서 승차감이 안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화물이 실려야 거동이 안정되는 화물차 특성과 달리 PV5 카고는 빈 차 상태에서도 덜컹거림이 적고 차분했다. 비선형 리어 스프링 설계와 하부 배터리 배치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전고가 높은 차 특성상 측풍에 다소 민감한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편안한 승차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저상 플로어와 2열 슬라이딩 도어 스텝 높이 399㎜, 개방 너비 775㎜로 어린이는 물론 고령자가 타고 내리기 쉽다. 승차감은 카고보다 한결 부드럽고 여유로워 과속방지턱이나 교차로에서도 앞뒤 피칭과 좌우 롤링이 잘 억제됐다.
다양한 상용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차라는 특성상 패신저의 승차감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주행에서 느낀 인상은 예상과 달랐다. 승차감은 카니발 못지 않았고 만약 충전 인프라 등 전기차를 운영하기 좋은 여건이 갖춰진다면 개인적으로는 카니발보다 PV5를 선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총평
카고부터 패신저, 택시, 캠핑카까지. 기아가 새롭게 내놓은 PBV PV5는 단순한 신차라기보다 ‘플랫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상용차 시장의 상징이었던 봉고가 일상 곳곳에서 사람과 짐을 나르며 국민차로 자리잡았다면 PV5는 그 역할을 전동화 시대에 맞게 계승하겠다는 야심을 담고 있다.
PV5는 아직 완성형은 아니다. 모듈 교체식 플랫폼과 서비스 생태계까지 감안해야 비로소 진가가 드러날 테다. 하지만 '모빌리티 플랫폼'으로서의 성격을 따지기 이전에 '자동차' 자체로서도 충분히 뛰어나다. 기아는 40여 년 전 봉고가 그랬듯 PV5를 통해 일상과 산업 전반에 스며드는 새로운 차의 상징을 만들려 한다. 과연 PV5가 전동화 시대의 ‘21세기형 봉고’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