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떼는' 주행 보조 시스템
-북미서 이미 50만대 이상 보급..검증 마쳐
"운전대에서 손을 뗀다."
이 말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는 아니다. 제너럴모터스(GM)가 내놓은 슈퍼크루즈가 그 주인공이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수십만명이 체험한 이 기술이 곧 우리나라에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슈퍼크루즈는 고속도로 전용 핸즈프리 주행 보조 시스템이다. 카메라와 센서, GPS와 고정밀 지도를 조합해 차선을 인식하고 차체가 스스로 차선 중앙을 지키도록 한다. 동시에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통해 앞차와의 거리를 자동으로 맞추며 운전자가 방향지시등만 켜면 차가 알아서 차선을 바꾼다. 추월 후 원래 차선으로 자연스럽게 복귀하는 기능까지 담았다.
스티어링 휠 상단에 녹색 불빛이 켜지는 순간 운전자는 두 손을 내려놓고도 차가 스스로 주행을 이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일부 주행 보조 시스템이 스티어링 휠에 손을 올려 둬야 하는 전제 조건이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보다 한층 앞선 기술이다. 이를 통해 장거리 고속도로 주행에서 반복되는 조작의 피로를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슈퍼크루즈의 가장 큰 차별점은 운전자 모니터링이다. 카메라가 눈동자와 머리 방향을 추적해 운전자가 도로를 주시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시선이 흐트러지면 시각과 청각, 촉각을 동원한 경고가 이어지고 반응이 없으면 결국 시스템이 해제된다. 단순히 '손을 뗄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전제로 한 주행 보조라는 점이 강조된 대목이다.
현재 슈퍼크루즈는 미국과 캐나다 전역 75만 마일(약 120만㎞)의 도로망에서 작동한다. 2022년 40만 마일 수준에서 불과 몇 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GM은 캐딜락, 쉐보레, 뷰익, GMC 등 23개 차종에 이 기술을 적용해 매달 4,000만 마일 이상의 핸즈프리 주행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단순한 연구용 시범 기술이 아니라 실제 판매되는 차에 탑재돼 대규모 사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외부 평가도 뒤따른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는 2025년 베스트 테크 어워드에서 슈퍼크루즈를 운전자 보조 시스템 부문 최고 기술로 꼽았다. 단순히 가장 많은 도로에서 작동하거나 가장 복잡한 상황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장거리 운전에서 피로를 줄이면서도 안전성을 희생하지 않는 균형 잡힌 기술이라는 이유였다.
대시보드 아이콘, 스티어링 휠 조명 바, 일부 모델의 진동 시트 등 다양한 피드백 장치로 운전자에게 명확한 신호를 보내고, 비상 상황에서는 차량이 부드럽게 정지하는 장치까지 마련돼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됐다. 인사이드EVs 역시 슈퍼크루즈가 50만 대 이상의 차에 보급됐고, 실제 활성 사용자가 약 20만명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단순한 장착률이 아니라 실제 소비자들의 일상 속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성과는 GM의 전략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한때 로보택시 등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를 밀어붙이던 GM은 최근 개인용 차에 적용 가능한 실질적 주행 보조 기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슈퍼크루즈는 핸즈프리에서 출발해 궁극적으로는 아이즈프리(eyes-free, 시각적 자유) 주행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 설정됐다. 아직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있지만 이 조건이 해제되는 순간 GM은 자율주행 시대의 문턱을 넘게 된다.
국내 도입 전망도 본격화되고 있다. GM 한국사업장은 지난해 말 슈퍼크루즈 소개 세션을 열고 한국 도입을 위한 로컬라이징 작업에 착수했다. 지도 구축과 규제 대응 방안 등이 핵심 과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고속도로 인프라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으로 정비돼 있고 운전자들의 첨단 기술 수용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초기 반응은 빠를 것이라고 내다본다.
업계 안팎에서는 슈퍼크루즈의 국내 도입이 자율주행 기술 도입을 둘러싼 제도적 논의를 촉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도입 초기에는 한정된 차종과 고속도로 환경에 국한되겠지만 적용 범위가 점차 넓어질 경우 국내 교통 체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GM이 한국을 '우선 도입 국가'로 거론한 것도 이 같은 환경적 조건과 맞물린다.
기술적 완성도, 실제 사용자 기반, 그리고 제도와 인프라의 준비라는 세 요소가 맞물릴 때 슈퍼크루즈는 단순한 신기술이 아니라 운전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끄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운전자가 핸들과 페달에서 손과 발을 뗀 채 여유를 갖는 순간, 도로 위 풍경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GM이 쌓아온 방대한 주행 데이터와 해외 시장에서의 경험은 우리나라에서도 곧 재현될 예정이다. 핸즈프리에서 아이즈프리로, 다시 완전 자율주행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슈퍼크루즈는 GM이 내세운 가장 확실한 교두보다. 한국 도입이 현실화되는 순간, 국내 운전 문화도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게 될 지 지켜볼 일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